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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1-05-22 01:50
Time 기사 "Forever Leslie" 전문 번역 입니다.
 글쓴이 : 조연희
조회 : 4,624  
***이해는 가는데, 막상 적당한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어려운 문장들이 꽤
있었습니다. 번역에 도움을 주신 김석란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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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ever Leslie

유혹과 거부, 둘 다의 매혹적인 스타일로 그의 관객을 애타게 하는, 영원한 장국영- 배우이자 가수이며 pop idol 인 - 은 홍콩의 위대한 phantom lover이다

왕가위의 1990년 영화 ‘아비정전’의 첫 순간,에서 장국영은 장만옥과 잡담을 시작한다. 그녀는 사랑스럽고 외롭다; 그는 우울해보이고, 아주 쿨(cool)하다.
불쑥 그는 자랑하듯이 매기(장만옥)에게 말한다. “오늘밤 당신은 꿈속에서 나를 볼꺼야”. 다음날 그는 다시 왔고 그녀는 그를 꿈에서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 물론 그렇겠지” 그는 확신한다는 듯 대답을 한다. “ 당신은 한숨도 못잤을 테니까.”

이것이 우리의 장국영이다.; 온화함과 강한 신념, 냉정함(그들은 그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가)과 슬픈 고독의 암시. 1970년대 후반 이래로 캔토팝스타이자 영화스타인 장국영은 캐나다 비평가 John Charles에 의해 “ 홍콩의 엘비스’로 불렸다. 그는 영화로 거액을 벌어들이고, 그의 새 CD Forever Leslie는 차트 상위로 올라가고 있으며, 세계 어디에서건 그의 컨서트는 아직도 관객들로 꽉찬다. 크리스마스 전야, 라스베가스의 시저 팰리스에서 열린 공연의 티켓은 $238까지 올라갔었다.

고향에서 그는 탐욕스런 파파라치들의 표적이다. “그들은 어디든지 나를 따라오죠.” 그가 말했다. “그들은 내 자동차번호를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만다린 호텔 커피숍에 있든, Propaganda (새로운 멋진 클럽 이랍니다)에 있든, 어디든지 나타납니다. 나는 집 밖에다 쓰레기도 버릴 수도 없어요. 사람들이 거기서 무엇인가를 찾아서 팔려고 하니까요.”

장국영은 만일 그가 아직도 최고의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그토록 멋지지 않더라도 팝계의 기념비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홍콩을 방문하는 어느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사람은 그곳 사람들로부터 이런 상투적인 말을 듣게 된다 . “ 그가 몇 살 일 것 같아요?” (마치 그가 다락에 썩어가는 자기의 초상화를 숨겨놓은 듯이). 장국영은 44세이다. 만일 그가 대중 속에서 자기의 반생동안 변화했다면, 자신의 매력의 아낌없는 발산과 절제 속에서 더 영리하게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유혹함과 동시에 돌아서며, 희롱함과 동시에 거부한다. 그는 아시아의 쇼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노련하고 도발적인 존재이다.


배우로서, 그는 빼어나게 재주가 많은데, 예술영화(패왕별희의 모순에 빠진 게이 오페라 스타) 액션 (영웅본색의 예민한 젊은 경찰), 팬터지 (백발마녀전에서 임청하의 산중 애인), 로맨스물 (야반가성의 유령같은 가수) 그리고 코미디(금지옥엽에서 음악계의 실력자) 등 에서 보듯 자유자재로 변신한다. 작년에 그는 ‘창왕’에서 사이코 킬러 역 까지 연기했다.
이 다양한 캐릭터들 속에 단순화할 수 없고, 불가해한 장국영이 있다. : 그의 마력에 빠져드는 사람들에게 그의 섹슈얼리티가 선물 이자 재앙이기도 한 아름다운 남자. 늘 그렇듯이, 그들은 그를 사랑하지만 그는 그들을 떠난다. 그는 영화속에서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이 "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라는 말을 했어야 했다.그러나 그는 단지 카메라에게만 최면을 거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전에 아주 미묘한 기적을 행한다. 완벽한 Cha Cha를 추는 동안, 그는 전신 사이즈 거울속에서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아비정전’의 한 장면을 매혹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근육의 움직임이 하나도 없이도 클로즈 업 샷에서 그는 감정의 온도를 바꿔간다. 당신은 홍조나 상처 처럼 그의 내면에서 감정들이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콘서트에서 그는 그의 충실한 팬들이 집단으로 무대 앞으로 몰려나와 춤을 추는 동안 그들에게 구애한다 그들의 순수한 황홀경(,ectasy)은. 그에게로 되돌아 향하고,사랑받기 위해 있는 그대로의 사랑으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다2 주전에 홍콩에서 종결된, 공연에서 그는 천사의 날개를 단 턱시도 에서부터 야한 스커트까지 총8벌의 Jean Paul Gaultier의 옷을 입었다.(그리고 긴 가발도). 토론토 콘서트에서 “사랑해요,레슬리”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는 “당신이 여자든 남자든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이것은 영화 ‘금지옥엽’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장국영의 양성적인 어필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우수에 차 있는 것 같으면서도 격정적이기도 하고,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와 뜨거운 눈물, 그는남-여성 모두이다.

장국영은 대담한 역할놀이를 즐긴다: 그의 최근의 뮤직 비디오는 2인무(일본의 남자 발레댄서와) 로 구성되어 있는데, 너무나 섹시해서 홍콩의 탑 채널인 TVB에서 방송금지당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것들이, 그가 비록 공식적으로 자신의 성취향을 선언한 적이 없음에도 관객들에게 그가 게이라는 의구심 또는 경이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 나는 양성적이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비교적 적합할 것이다*라고 그가 언급했다. “ 나는 여자친구들이 있었다. 22살 때인가, 나는 내 여자친구 모순균(당시 그와함께 TV 시리즈에 자주 출연하던)에게 구혼을 했었다.”
지난달, 모순균의 케이블 TV쇼에 손님으로 출연했던 장국영이 농담을 했다
“ 당신이 그때 내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장국영은 홍콩에서 재단사 -윌리엄 홀든과 히치콕의 옷을 만들었던- 와 그의 아내사이의 10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내 어린시절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말다툼, 싸움의 연속이었고 그리고 우리는 함께 살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보내졌다” 그의 가장 가까운 형제도 무려 8살이나 위 였다.
장국영은 말하기를 그는 “제일 어리고, 제일 외로웠다. 형들은 여자들과 데이트를 했고 나는 구석에 혼자 남겨져서 병정이나 바비인형을 갖고 놀았다. 이것은 정말 끔찍했다. 나의 아버지는 나와 나의 어머니에 대해감정을 조절할 줄 몰랐다. 나는 늘 ‘이것이 소위결혼이라는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12살에 그는 영국 노포크의 Norwich School로 보내졌다. “그곳엔 인종적 문제와 차별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친구도 사귀고 주말에는 친척이 경영하는 레스토랑이 있는 Southend -On-Sea에 그들을 보러 갔다. “ 그때 그는 영어이름을 선택했다. “ 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레슬리 하워드(애쉴리 윌크스역을 했던 배우)도. 그 이름은 여자이름도 될 수 있고, 남자이름도 될 수 있다. 매우 중성적이고 그래서 나는 그 이름이 좋다.

Leed 대학에서 1년간 직물학 수업을 한 뒤 장국영은 홍콩으로 돌아왔고 ATV의 Asian Music Contest에서 2등을 했다(American Pie를 불러서). 그의 영화데뷔는 1978년 ‘홍루춘상춘’ 인데, 그의 엉덩이 노출 이외에는 주목할 만한 것이 없는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스타로서의 그의 출현포착했다. 즉 아름답고, 부드럽고, 위험한. 그는 아직 그것들을 간직하고 있으며 더 향상되었다. 그는 불안정성의 의미에서의 제임스 딘 이거나 더욱 몰입하는 조니 뎁 이다.

장국영은 ‘천녀유혼’과 ‘인지구’에서 사람을 현혹시키는 두 유령의 연인이었다. 그리고 후에 챈 카이거의 ‘패왕별희’ - 그의 가장 완벽하고 위대한 연기-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대형 스크린에서 내면의 레슬리를 조명한사람은 왕가위 이다. ‘아비정전’에서 그를 60년대의 아비(무기력한 청춘) - 자기를 버린 어머니에 대한 보복으로 여자들을 학대하는 - 로 만들었다. 이 영화로 장국영은 홍콩 영화상(금상장)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동사서독’에서는 악한무인으로서 그는 최고의 중국스타들과 비주얼의 위업에 훌륭히 안착했다. 그리고 이른바 게이영화가 아닌 춘광사설에서는 양조위에게 배우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를 가르쳤다.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의 섹스신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러브신을 찍어야했을 때 토니(조위)는 정말 충격을 받았죠." 장국영이 회상한다. "그는 그것을 거부했어요. 이틀동안 그는 정말 불쌍하게도 자기침대에 누워만 있었어요. 그래서 난 그에게 가서 말했죠. "이봐, 토니. 난 수많은 장면에서 키스를 하고 여자들을 애무하고 가슴을 만지기도 했어. 너는 내가 그런 것들을 정말 좋아서했다고 생각해? 이걸 단지 일로 생각해봐. 보통의 러브신으로. 나는 너하고 사랑에 빠지지도 않을것 이고, 네가 나와 진짜 섹스를 하는것도 원하지 않아, 너는 내가 좋아하는 타잎이 아니야.” 그래서 그는 그 장면을 찍는데 동의했어요.”.
바꿔 말하면: “토니, 못할 게 뭐있어?

장국영이 한시간 분량의 뮤직 드라마와 올스타 캐스팅의 금연영화를 감독하기는 했지만, 그는 연기를 계속 한다. 그는 곧 매염방, 막문위와 함께 관금붕의 영화에 참여하며, 또 장예모, 와호장룡의 스타 장지이와 같이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원히 젊은 레슬리는 97 홍콩 이후의 자기 위치에 대하여 중년의 의구심을 갖고 있다. “나는 20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그가 열정적으로말했다. “나는 무일푼이었고, 생존을 위해 열심히 일해서 지금은 적당한 크기의 단독주택에서 살 수 있게 되었어요. 나는 아직 일본과 한국에서는 커다란 인기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러나 홍콩에서는 전성기는 좀 지났을 지도 모르죠.. 홍콩은 낭비가 심하고, 저속하면서, 비싼 곳이죠. 난 홍콩에서 살기엔 너무 약한 것(독하지가 못한 것) 같아요. 난 언제나 나 자신을 그들중의 하나에 포함하지 않아요.”

레슬리, Dear boy, 왜 거울속의 당신 자신을 바라보며 우아한 Cha Cha를 추지 않나요? 당신은 당신이 어떤 존재였고 아직도 여전히 그러한 존재임을 그 속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Phantom lover, Concubine, Sweet Prince



モンクレ?ル ダ… 12-11-2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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はじめまして。突然のコメント。失?しまし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