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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13 23:55
哥哥 지인들의 추모글과 인터뷰 1 - 매염방 편
 글쓴이 : 1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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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보주간 1796期(2003년 4월 12일)

매염방 "哥哥를 위해 제대로 된 기사를 써주세요."

20년 가까이 함께 해 온 남매의 정을 자세히 풀어놓다.


글 : 황려령





장국영이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방법으로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해, 그를 사랑하고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상심이 매우 크다. 哥哥를 추모하기 위해, 《명보주간》은 哥哥가 생전에 직접 고른 사진을 이번호의 표지로 정했다.

哥哥와 기쁨과 아픔을 함께 하며 근 20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매염방은, 哥哥가 세상을 떠난 아픔으로 인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에 잠겨있는 상태인데, 주위의 친구들이 그녀를 걱정하며 돌보고 있다. 哥哥를 보내고 돌아온 후, 阿梅(매염방)의 마음은 점점 평정을 되찾아, 지난 주 금요일 새벽에 《명보주간》과 단독인터뷰를 했다. 크나큰 상심에 빠져있는 그녀는 哥哥를 위해 화난 어투로, "제발 哥哥를 위해 제대로 된 기사를 써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매염방은 비통한 심정이지만, 또렷한 정신으로 《명보주간》의 인터뷰를 받았다. 哥哥를 대신해, 진심을 털어놓은 그녀는 "전 여러분들이 Leslie에게 공평하게 대해주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哥哥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남겨놓고 떠나갔지만, 제발 그에게 없는 말까지 지어내어서 글을 쓰지는 말아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만약 그에게 병이 없었다면, 이런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어요. 그는 유미(唯美)주의자였어요. 절대로 자신을 이렇게 버리지 않았을 거에요. 병이 그를 이렇게 만든 거에요. 그가 떠나기 전에는, 그가 이렇게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어요, 우리들은 그의 우울과 아픔을 분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가 죽은 지금 제발 이것저것 추측하지는 마세요. 입장을 바뀌어서 병에 걸린 사람이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실 우리들은 이 일을 정면으로 부딪혀야 돼요. 哥哥는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한가지 사실을 남겨줬어요. 바로 우리 주위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그는 우리에게 주위의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쏟고, 친구들을 더욱더 아껴야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줬어요."

哥哥는 자신의 능력을 200%발휘했다.



"哥哥는 생전에 일할 때는 자신의 능력을 200% 발휘했죠. 또, 이 사회를 위해서 많은 일들을 했어요. 그는 이미 연예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언론은 그를 잠시도 그냥 놔두질 않았어요. 그는 그것들을 신경 쓰고 있지 않는 듯이 행동했지만, 사실 그는 그런 것 들에 신경을 쓰고 있었어요."

"우울증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병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되어서 생기는 병이에요. 전 일부언론들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 그의 장례식에서는 그러한 언론사들의 기자들에게는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죠. 이건 哥哥 본인이 원한 일이기도 해요. 언론과 연예인은 떼어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왜 지금의 이런 상황에까지 오게 된 거죠? 哥哥가 살아 있을 때, 그들은 그를 가만두질 않았어요. 哥哥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그렇고 있죠. 그런 식으로 哥哥를 대한 사람들은 한밤중에 哥哥가 그들을 찾아올까봐 두렵지도 않은가 보죠? 전 이번 인터뷰에서 哥哥의 팬들에게 그러한 신문잡지를 절대로 사지도 보지도 말라고 호소합니다. 그러한 양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지 말고, 그 돈을 교육적이고 이익이 되는 것들을 읽는데 쓰세요."

"전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제가 여는 기자회견장에 그들이 나타나면, 전 그들에게 그 자리를 떠나달라고 할거에요. 저를 나쁘다고 욕하지 마세요. 전 이번 인터뷰에서 동료 연예인들에게도 그들에게 협조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합니다. 우리 연예인들의 도움 없이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그녀는 자신이 이번일로 인해 10년은 더 늙었다고 생각한다.



哥哥의 죽음에 대해, 阿梅는 아주 힘겹게 "전 아주 후회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 전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아무 말도 할 수 가 없었어요. 그 사이에 한 10년은 늙은 것 같아요. 전 끊임없이 오늘이 며칠인지 물었죠.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죠? 지금까지도 제 머리 속은 많은 의문들로 가득 차 있어요. 제 친구들과 그의 친구들은 제가 이 일을 받아들이지 못 할까 봐 걱정해서, 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저에게 제발 정신차리라고 말했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로 저의 안부를 물어와서, 전 이번일로 인해 사람들의 정을 충분히 느꼈답니다."

阿梅가 이렇게 후회하고 있는 이유는, 그녀는 哥哥의 병이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 자신이 哥哥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지 못하고 있었다고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다.

"哥哥는 좋은 소식만 알려주고 나쁜 소식은 안 알려주는 사람이었어요. 유감스럽게도, 그의 눈에 전 단지 그의 여동생일 뿐이었어요. 그는 저를 어떻게 하지 못할까 걱정했고, 제가 걱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요. 그가 아프다는 것조차도 제가 알길 원하지 않았죠. 그는 저에게 단지 위산역류로 인해 몸이 좀 안 좋을 뿐이라고만 말했죠. 그 후에, 전 哥哥가 기분이 안 좋고,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었어요. 하지만, 전 정말로 그의 상태가 그렇게까지 심각한 줄은 몰랐어요. 전 다방면으로 그와 연락하려 했지만, 줄곧 그와 연락이 닿질 않았어요. 제가 전화를 해도 응답이 없었죠. 전 그에게 제가 하고싶은 말들을 적은 카드를 주었죠. 전 단지 그에게 제가 얼마나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작년에 전 홍콩에서 개인콘서트를 끝내고, 계속된 세계순회콘서트로 정신이 없었어요. 사실 그때 전 업무상의 일로 인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哥哥랑 상담하고 싶었어요. 당시에 전 그에게 조금 화가 나 있었어요, 왜냐하면, 전 단지 그와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는 저에게 전혀 신경 써주질 않았거든요. 이제서야 좀 알겠어요. 그가 왜 그랬는지. 그의 마음이 그렇게 아팠던 거에요. 그는 내가 상처 받을까봐,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던거에요. 만약 제가 적극적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제가 다 부족한 탓이에요."

그는 나서서 그녀에게 진정제을 주었다.



阿梅에게는 哥哥에게 직접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기회가 없었던 두 마디가 있다고 한다. 바로 "너무 감사해요!(多謝!)이다. "제가 데뷔20주년 기념콘서트를 준비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그는 자기가 먼저 콘서트 마지막날에는 꼭 게스트로 참석하겠다고 말했어요. 저를 위해 특별게스트가 되어 주겠다는 그의 그 한 마디말은 정말 저에게 큰 힘이 되었죠. 지난번 콘서트는 정말 고생스러웠어요. 제 스스로 콘서트에 대한 기대가 커서 스트레스를 받았죠. 마지막 날에 전 정말 그와 함께 콘서트를 즐기고 싶었어요. 그날 그는 콘서트장에 도착해서는 위통때문에 몸이 안 좋다고 했죠. 하지만, 무대 위에서 팬들은 그가 아픈지 전혀 눈치채질 못했어요. 그의 무대가 끝난 후에, 그는 먼저 그 자리를 떠나서, 전 그에게 고맙다고 말할 기회를 놓쳤어요."

哥哥는 阿梅를 아꼈는데, 주위의 사람들조차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난 85년 그의 첫번째 콘서트에서 첫번째 게스트가 매염방이었다는것을 기억한다. 그때당시 그는 나에게 매염방이 그의 첫번째 게스트로 참석한 것은 회사(화성음반사)에서 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저와 매염방은 아주 좋은 친구에요. 그녀도 곧 자신의 콘서트를 열 수 있을 거에요. 전 그녀에게 관중들의 반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그건 가수에게 있어서, 일종의 진정제같은 역할이죠. 그날 제가 관중들이 阿梅에게 보내준 환호성을 들었을 때, 마음속으로 阿梅, 네가 해냈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했었다.

나의 추억어린 회상들을 듣고, 阿梅는 "저와 그는 정말 좋은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였어요. 20년 전에 우리는 화성에서 연예계생활의 첫 장을 시작했죠. 전 그만 제 곁에 있으면 안심이 되었어요. 그 곁에 제가 있으면, 그 또한 안심을 했고요. 그가 처음 콘서트를 개최했을 때, 전 무척 걱정이 되었지만, 저에게 게스트로 나오라고 해서 기뻤죠."

"저희는 손을 꼭 잡고, 많은 어려움을 함께 견뎌냈어요. 저에게 안 좋은 일이 있어서, 방안에서 울고 있 을때, 그는 저를 달래주었고, 전 곧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괜찮아졌어요. 그에게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저도 그의 손을 꼭 잡고 서로 위로했어요."

남자 친구도 그에게 먼저 선보였다.



막 데뷔했을 무렵, 그와 그녀가 함께 외국에 나간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그들의 비행기 좌석은 이코노미석이었다. "우리들은 좌석의 마지막 줄에 앉아있었죠, 의자에 있는 팔걸이를 올려놓고, 누워서 잠을 잤는데, 그는 의자에서 자고, 전 의자 밑에서 잤죠, 그런 날들을 지내는 동안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관심을 쏟았어요. 그래서인지, 고생을 해도 피곤하지가 않았어요."

"우리가 호텔에 묵을 때, 서로의 방문은 통해있었어요. 한번은 뉴욕에 갔었는데, 우리는 비교적 치안이 좋지 않은 흑인거주지역에 묵었었죠. 한밤중에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한 흑인이 제 방안에 들어온 거에요. 전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哥哥가 바로 달려나와 절 보호해줬죠. 우리는 함께 침대를 쓰기도 했는데, 날이 샐 때까지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가 터프하다고 생각하는데, 오직 哥哥앞에서만큼은 전 제 자신 그대로 여자아이로 돌아갈 수가 있었죠. 강한척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가 절 보호해줬기 때문이죠. 그는 정말 제 친오빠 같았어요." 阿梅는 갑자기 일찍이 세상을 떠나간 진백강을 떠올리며, "대니(진백강)는 제 남동생과도 같았죠. 제가 보호해줘야했거든요."

다시 그녀와 哥哥사이의 감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우리들은 가족과의 관계도 비슷했어요. 무슨 좋은 일이든, 나쁜일이든간에 우린 둘 다 엄마와 얘기했죠. 그는 저의 가족보다도 더 잘 이해했어요. 전 뭐든지 그에게 말을 했고, 남자친구도 그에게 먼저 보여줬어요. 그가 그 남자친구에 대해 괜찮다고 하면 전 그제서야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죠. 하지만, 만약 그가 그저 그런거 같은데라고 말하면, 전 그의 말을 듣고 그 남자친구에 대한 관심을 접었어요."

그녀는 그가 갑자기 그녀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후에, 哥哥는 화성음반사를 떠났고, 일이 너무 바빠서 몇 년동안 阿梅와 제대로 연락을 하지 못했다. "전 그가 갑자기 저를 잊었다고 생각했어요. 전 상처를 받았죠. 그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나서, 그 동안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제서야 그가 어디에 있던 그의 마음속에 항상 제가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저도 마찬가지구요. 그는 영원한 저의 오빠에요. 우리들의 관계는 정말..… 친밀했어요." 阿梅는 적당한 형용사를 생각해내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네요. 그는 제 마음속에 낙인을 찍어놨어요."

阿梅는 哥哥가 떠난 충격으로 인해, 다시 자신의 생활로 돌아오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거처럼 보였다. "전 그가 제가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길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그는 걱정하고 있을 거에요. 만약에 그가 너무 많은 걱정거리를 안고 있으면, 이 속세를 떠나지 못해서, 윤회하지 못할 거에요. 그가 평안히 쉴 수 있도록, 전 강해질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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