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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07 19:27
MingPao weekly - No.1795
 글쓴이 : 12956
조회 : 9,043  
명보 1795기(2003년 4월 5일자)

장국영의 마지막 암흑 같은 나날들



「Depression, 지난 일년동안 너무 힘들었다,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다, 唐에게 감사하고, 肥누님께 감사하고, 麥列菲菲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일생동안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

간략하게 유서를 쓴 哥哥장국영은 그가 애프터눈티를 즐겨했던 만다리오리엔탈호텔 24층에서 뛰어내렸다.

2003년 4월 1일 만우절, 오후 7시 5분, 이 일분은 哥哥에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1분이었다. 올해 마흔 여섯의 나이로 말이다.

「擊愛」를 잃은 당학덕(唐唐)은, 哥哥가 떠난 6시간 후, 흰색의 목욕가운을 걸치고, 두 눈은 붉게 충혈된 채, 초췌한 얼굴로, 문밖으로 이번이 哥哥가 처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끝내려고 한 게 아니라고 토로했다. 처음 시도는 작년 11월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哥哥는 죽음의 길을 고수했고, 당당은 아마도 우울증의 그의 생명을 앗아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哥哥의 인생 중에 마지막 2년간은, 암흑과 같은 나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딱 한번 자신의 친구에게 자신이 2년 전에 태국에서 누군가의 저주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 일이 있은 후에, "그것"으로 하여금 밤낮으로 방해를 받고, 밤마다 잠을 못자고 울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각종방법을 사용해봤지만, 결국 자살의 길을 선택했다.

장국영이 투신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를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간에 모두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욱이 그의 「擊愛」당학덕의 첫번째 반응은 멍하게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의 주변친구가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을 봤다고 한다. 이 시점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걱정스러운 사람은 그였기에, 모두들 哥哥의 집에 가, 이번 일에 관해 논했을뿐만 아니라, 교대로 그를 돌봤다.

일이 있기 전에 아무런 이상증세가 없었다.



당당은 비록 상처를 받았지만, 기자들이 哥哥의 죽음을 추측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일 새벽 3시 45분, 문 앞에서 기자들의 인터뷰를 받았다. 당당은 「우리들은 어떠한 감정상의 문제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哥哥를 사랑하나?)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영원히 그를 사랑한다!」당당은 최근 哥哥의 정신상에 문제가 있어서 우울증을 앓았고, 쭉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사실 작년 5월부터 영화《이도공간》에서 정신과의사역으로 분한 哥哥가 배역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배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소문이 흘러나왔었는데, 그 소문은 그가 귀신에 쓰였다는 소문으로까지 번졌었다.

하지만, 哥哥는 공개석상에서는 평소보다 더욱 쾌활한 모습으로 등장함으로써 이러한 소문들을 부인했고, 단지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잠을 잘 못 자 그런 것 뿐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哥哥와 당당이 함께 친구들과 있을 때에도, 다들 그에게 병이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우리들은 유서에 "麥列菲菲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라는 내용을 보고 그가 그의 정신과 의사라는걸 알았다. 우리들은 정말 그에게 정신질환이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哥哥는 몇 개월 전부터 이미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는 당시에 위산역류 때문에 그런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이 병의 치료를 위해, 친구들과 만나는 걸 줄이고, 술도 끊었다. 최근에 그의 기분은 아주 좋아져서, 친구들과 웃으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또 어떤 때는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또, 자기는 약 2달간을 조용히 지내고 나니 더 잘 생겨졌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서야 비로소 친구들과 웃으면서 실컷 마시고 즐겼다! 최근에 阿姐(왕명전)가 그에게 콘서트게스트로 출연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무슨 노래를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다면서 참석여부를 고려하고 있었다.」라고 哥哥의 친구가 말했다. 그는 또한 일이 있기 전날(3월 31일), 哥哥는 소시황, 진결영, 대모인 장옥린의 아들 Peter장제제 등과 함께 마작을 했는데, 哥哥는 마작을 하면서, 정부의 이번 SARS에 대한 관리가 너무 엉터리라며 불만을 토로했는데, 그런 그에게서 이상한 증세는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라마고스님과의 만남



그러나, 사적으로 哥哥가 줄곧 모든 고민을 털어놓았던 친구는 그가 자신이 귀신에 씌였다는 걸 인정하고, 그에게 그 사실을 토로했다고 한다. 약 2년 전에 태국에서 누군가의 저주를 받았는데, 그 이후로, 그는 항상 불안해하고, 밤마다 잠을 못자서, 哥哥는 친구에게 괴로움을 하소연했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그는 내 마음을 누르고, 날 잠도 못 자게 하는 걸까? 수면제를 먹으려 해도, 그는 나의 발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친구는 그에게 이사 갈 것을 제의했는데, 그가 이사를 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내가 외국에 가도, 그는 날 쫓아온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심하게 울었다고 한다.

2년 동안, 그의 정서는 심각한 곤란을 겪었다. 날이 갈수록 야위어진 哥哥는 눈빛도 점점 흐릿해져갔는데, 이런 그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과학과 의학적인 관점에서 그가 스트레스가 많아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는 그에게 갱년기현상일수도 있다고까지 말했지만, 哥哥는 줄곧 「난 책도 읽어보고, 이유를 분석해서 이해도 해보고, 모든 분야의 의사들도 다 만나보고, 정신과의사까지도 만나보고, 건강검진도 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확실한 것은 哥哥가 병을 앓기 시작한 이후부터, 이미 유명한 정신과의사 麥列菲菲교수도 만나보고, 센트럴의 정신과 의사 빙순영에게도 진찰을 받아봤다는 것이다.

哥哥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해결책을 마련하려고 했다. 의사를 만나 상담을 받는 것외에도, 그의 친구는 그의 평안한 마음을 위해 그를 대신해 고승을 만나 저주를 풀어주려고 했다. 「고승은 건너편 방에 있어서, 나를 보지 못했지만, 내 친구에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말해주었다.」사실, 저주를 풀기 위해 哥哥는 라마교의 대스님을 찾아가기도 했고, 심지어 모순균은 哥哥에게 전도를 하려고 했었다. 한마디로, 단지 한줄기의 희망이 있으면, 哥哥는 다 해보고 싶어했다.

모순균은 哥哥의 일이 있기 전에 있었던 두 번의 만남 중에서, 기독교를 哥哥에게 전도해줄려고 했는데, 哥哥 또한 그녀를 따라 교회에 가겠다고 대답을 했었다. 「전 오랫동안 그에게 기독교에 관련된 일들을 알려줬어요.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제 말들을 경청했고, 하지만 그가 그걸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어요. 哥哥와 신만이 알겠죠.」

감정문제는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작년 5, 6월경 哥哥의 친구 중 한 명이 그를 데리고 그 저주를 풀어줄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그를 위해 몇 번의 법사를 한 후에, 哥哥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 법사를 한 후에도, 哥哥는 집에서 향을 태워 제사를 지내려고 했고, 哥哥가 미신을 너무 맹신하다 싶어, 그가 집에서 향을 피우는 것을 반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비록 哥哥가 친구들 몰래 집에서 그 일을 하려고 했으나, 결국에는 발각되었고, 이 일로 인해 크게 논쟁이 벌어져, 결국에 哥哥가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고, 그 사람을 만나게 해준 친구를 멀리한다는 약속으로 타협했다.

그의 가장 좋은 친구인 당당은, 그가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그의 환각이라 여겨, 두 사람 사이에는 자주 언쟁이 벌어졌지만, 이건 결코 두 사람 사이의 감정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아니다. 비록, 최근 몇 년간 그들은 각자의 방에 각자의 사생활공간을 남겨두었지만, 그와 그의 관계는 일찍부터 이미 한 가족과도 같았다. 哥哥는 여전히 당당의 말을 아주 잘 따라, 계속적으로 정신과에 가서 의사와 상담하고, 哥哥가 병원에 갈 때면 당당은 항상 哥哥옆에서 따라가주거나, 그를 대신해 약을 타오기도 했다.

하지만, 작년 7월부터 哥哥의 우울증이 점점 더 심해져, 그에게 의사가 처방해준 진정제는 점점 더 많아졌고, 그의 수전증도 더욱더 심해지기 시작했고,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자, 哥哥는 일에서조차도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고 한다.


哥哥의 정신과 몸의 상태가 날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그는 10월에 영화 《미려상해》에 출연하기로 했다가 갑자기 취소했다. 그리고, 그가 쭉 중시해오던 그의 감독작품이 투자자의 문제로 인해 결국 무산되자, 그의 정서상태는 극도로 저조해졌다. 11월에 哥哥는 집에서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했으나, 다행히 일찍 발견되었다. 당당 또한 직접 증명했는데, 「哥哥는 작년 11월에 이미 자살을 시도했었다. 그 후에, 그는 계속 정신과 상담을 받아왔다.」

哥哥 주변의 친구들은 그의 정서상태가 불안정한데다가, 오래 기간 잠을 제대로 못자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시간을 내 그를 보살폈으며, 그의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를 바랬다. 당당은 집에서 그를 보살피는 것 외에도, 작년 12월경에는 哥哥와 상해에 가 고궁박물전시회를 관람했는데, 그 때 상해에서 며칠 간 머물면서 친구들도 만났다. 등광영의 부인은 그의 집에 자주 방문하여 그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시남생과 임청하는 외출을 할 때뿐만 아니라, 체육관에 가서 배드민턴도 치거나, 식사와 애프터눈티를 할 때마다, 哥哥와 함께 했다. 하지만, 최근에 임청하는 哥哥와 배드민턴을 친 후에, 그가 정말 평소와 같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는 다른 친구에게 「그에게 정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게다가 심각한거 같으니깐, 모두들 그를 잘 지켜보자!」라고 까지 했다.

아쉽게도, 친구들은 그를 돕질 못했다. 哥哥는 만우절이라는 날을 선택해, 자신의 생명을 끝냄으로서, 모두가 가장 듣고 싶지 않아 했던 소식을 전했다.

哥哥의 마지막 날



哥哥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서, 사람들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비록 그의 일이 있기 전에 당당은 아무런 조짐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진숙분(哥哥의 전 매니저)은 그날 당일에 갑작스레 哥哥의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그에서 전화를 걸어 만날약속을 했지만, 아쉽게도 모든 것이 한발짝 늦은 격이 되버리고 말았다.

일이 발생되기 하루전날, 哥哥는 예전처럼 진결영등과 같이 집에서 새벽까지 마작을 했다. 이튿날 일어나서, 그는 당당과 저녁에 같이 배드민턴을 치러가기로 약속을 하고, 오전 11시경 외출을 하겠다고 했고, 당당이 운전사가 필요하냐고 묻자, 哥哥는 직접 운전을 하고 나가서 바람도 쐬고 친구도 만나겠다며, 저녁 늦게 보자고 했다.

그 와중에, 당당은 오늘만큼은 哥哥를 곁에서 계속 돌봐주라는 진숙분의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는데, 때는 이미 哥哥가 집을 떠난 뒤였다. 사실, 당당은 그날 하루종일 哥哥와 전화연락을 해, 언제쯤 집에 돌아올 건지, 직접 배드민턴장으로 갈 건지, 그를 대신해 운동장비를 챙겨갈 것인지 등을 물었다. 그때, 哥哥는 그를 데리러 집으로 갈 테니, 집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정서적 문제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혼자 차를 몰고 나간 哥哥는 약 오후 4시 30분 경에 만다린 오리엔탈호텔에 도착했는데, 24층의 개인룸에서 음료수를 주문하고, 항구의 경치가 내다보이는 베란다쪽 자리로 이동해 진풍(향화강의 부인)과 전화통화를 했지만, 그의 정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 후에 진숙분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6시경에 호텔 안에서 만날 약속을 했다. 얼마 후, 그는 종업원에게 종이와 펜을 달라고 한 뒤, 뭔가를 썼는데, 그 편지가 哥哥의 유서인지는 아무도 확신할 순 없다.

진숙분은 호텔지하에 있는 커피숍에 도착해 약 30분가량을 기다렸지만, 그가 나타나지 않자 그에게 전화를 해 재촉했다. 哥哥는 전화에서 「5분 후에 문밖으로 나오세요, 거기에서 절 볼 수 있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숙분이 호텔 문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굉음을 들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호텔직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냐구 물었는데, 직원은 누군가가 뛰어내렸다고 얘기했고, 그녀는 이미 불길한 예감이 느꼈다. 멀리서 시신을 바라본 그녀는 감히 앞으로 나아가 보질 못하고, 단지 「나에게 이런 모습을 보라고 한거야?」라고 반문했다. 정신을 차린 후에, 그녀는 울면서 직접 당당에게 전화를 걸어, 이 불행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이 부고를 전해들은 후, 당당은 슬픔을 참지 못했다.

哥哥의 시신은 마리병원으로 옮겨진 후 응급처치를 했으나, 저녁 7시 6분에 병원측은 哥哥의 사망을 선고했고, 당당, 장국영의 누나부부와 그의 정신과 의사 麥列菲菲가 병원으로 급히 와 상황을 파악했다.

당당은 성공적으로 병원을 지키고 있던 기자들의 눈을 피해, 哥哥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당당은 자신은 哥哥 시신의 일부분만 봤다고 얘기했는데, 원래 그는 그를 오랫동안 보고 그의 곁에서 오랫동안 있고 싶었지만, 의사가 그에게 보지 않는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哥哥의 얼굴은 손상되지 않았지만, 손과 다리는 모두 절단되었다고 한다. 哥哥의 시신이 검시소로 운반된 후에, 당당은 슬픔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섯째 형은 그를 위해 날을 정해 적당한 곳을 정했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哥哥는 이 세상을 떠났고, 비록 가족과 친구들에게 슬픔과 탄식을 안겨줬지만, 모두들 哥哥의 시신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누나 장록평과 매형 맥법성은 진숙분과 연락하여 4월 2일 아침에 동구법원에 가서 법원에 시신해부금지 허가를 성공적으로 얻어냈다. 원래 哥哥의 시신은 법의관의 검시를 통한 후에 홍콩빈의관으로 옮겨질 예정이었다.

哥哥의 장례식은 4월 7일에 빈소를 설치하고, 8일에 장례식을 거행할 예정인데, 가족들은 哥哥 생전의 뜻을 따라 그의 시신을 화장하기로 했다. 이번 일을 다 처리한 후에, 풍수지리사인 哥哥의 다섯째 형 장발형은, 자신의 동생을 위해 택일을 정해 장례식을 하는 것 외에도, 그의 유해를 안장할 적당한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 불교신도이자, 홍콩불광협회분구 대표을 맡고 있는 그는 매일 동생을 위해 불경을 외고 있다.

비록 哥哥와 장발영 사이는 그다지 좋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哥哥가 은퇴를 하던 그 해에 기자들이 哥哥가 은퇴를 선언한 것은 그 형인 장발영의 예언을 맹신해서라고 보도한것과 연관이 있다. 그때 나왔던 이러한 기사들은 哥哥로 하여금 다섯째 형이 자신을 형이 하는 일을 홍보하는데 이용하려고 일부러 자신과 관련된 일을 외부로 이야기했다고 생각하게 해, 두 사람의 관계가 악화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형제의 정은 물보다 진한 법, 哥哥의 사후에 모든 원망과 오해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장발영과 연락을 해보니,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쉬었으며, 말투에는 슬픔이 배어나왔다. 그는 현재 哥哥의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전 현재 집안 일을 처리하느라 바쁩니다. Leslie의 죽음으로 전 이미 칼로 가슴을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모두가 저와 저의 가족들을 방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희들은 인터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습니다.」

연초에 운이 상승하기를 빌었지만, 결실이 없었다.



비록 당당은 풍수지리 같은 것을 믿지 않고, 또한 哥哥를 미신을 맹신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哥哥는 줄곧 센트럴의 제공묘의 단골이었다. 哥哥는 10년 전부터 이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렸는데, 매년 절 안에 1년 향을 걸어 당당과의 사이가 변함이 없기를 기원했다. 어쩌면, 哥哥는 당당의 불만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매번 제공묘에 갈 때는 그와 동행하지 않고, 대부분 여러 남자여자친구들과 함께 가 기원했다고 한다.

원래 哥哥가 절에 걸어놓았던 향은 작년 11월에 그 기간이 끝났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후에 哥哥는 절에 가지 않았고, 절묘하게도 哥哥는 작년 11월에 이미 한차례 자살시도를 했었다. 올해 연초에 그는 다시 공제묘에 나타났는데, 그는 당시에 40세 가령의 한 여자친구와 같이 왔었다고 한다. 이번에 그는 향을 걸지 않고, 단지 그를 위해 "운을 상승시키는" 주문을 해달라며, 앞으로의 운을 바꿔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절측에서 그를 위해 점을 보니 양의 해에 그의 운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나왔다. 절측에서는 당시 그에게 마음이 무겁고 어두워보인다고 했는데, 그는 "운을 상승시키는" 주문을 끝낸 후에 절을 떠났다.

이전에 한 잡지에 哥哥가 절 안에 걸어둔 향 사이에 붉은 색 줄을 연결시켜놓은 것은 당당과의 감정을 개선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고 쓴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는데, 절측에서는 그건 잘못된 기사라고 밝혔다. 왜냐하면, 哥哥는 한번도 향 사이에 붉은 색 줄을 연결시켜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으며, 이 절에도 그런 주문은 없다고 했다. 사실 그 줄은 哥哥의 일본팬이 붉은색줄로서 哥哥와 당당과의 감정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를 위해 묶어놓은 것이었다.

비록 哥哥와 당당의 향은 이미 다 타버리고 재가 되었지만, 제공묘의 외당에는 또한 많은 향이 걸려져 있었다. 그곳에는 양수성과 주정의 향도 걸려져 있었다. 사실, 제공묘에 향을 걸어놓는 비용은 별로 비싸지 않는데, 매월 360달러만 지불하면 되고, 보통 1년의 평온함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1년간 향을 걸어놓는다.

장국영의 연애사



장국영은 홍콩연예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양성연애자경향이 있다고 인정한 연예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부른 《좌우수》가 그의 성취향이 바뀐 마음을 묘사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의 일생 중 가장 인상 깊은 사랑은, 그와 당당간의 20년동안 쌓아온 감정이라고 믿는다. 장국영에게는 당당과 함께 하기 이전에, 모순균, 설리, 예시배, 양낙사 등과 사귄 적이 있으며, 매염방, 옹정정, 하초경 등과 열애설이 나기도 했다. 그는 이전에 모순균이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면, 그의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고 답했었다.

당학덕

그와 당당은 장옥련부인이 두 사람의 대모가 되면서부터 알게 되었고, 85년 두 사람이 사귄다는 소문이 전해진 후에, 그 두 사람은 줄곧 부인해왔다. 97년, 장국영은 개인연창회에서 공개적으로 그가 어머님을 제외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공개했다. 98년 장국영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당당은 가족신분으로 장례식의 모든 절차에 관여했다.

모순균

얼마 전 장국영이 인터뷰 중에서 당시 20살이었던 그와 17살이었던 모순균이 사귄지 얼마되지 않아 자신이 그녀에게 청혼을 해 그녀를 놀라게 했다고 밝혔다. 더욱이 만약 그 때 모순균이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더라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 후에 모순균은 2번의 결혼을 했으며, 지금의 남편은 구정평으로, 사이에 2명의 딸을 두고 있다.

양낙사

양낙사는 9살 때부터 장국영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성장한 후에, 아버지 양수성의 소개로 두 사람은 알게 되었고, 1년 정도 사귀었다. 후에, 양낙사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장국영은 연예계활동으로 바빠지게 되자,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예시배

RTV에 있을 당시, 드라마《對對糊》를 찍으면서 모델출신인 예시배와 알게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

설리

미설의 여동생인 설리는 79년 디스코장에서 알게 되었고, 후에 자선농구대회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서로간의 감정이 발전하게 되었다. 뒤에는 성격차이로 헤어졌다.

작년에 아버지를 잃고 올해는 격애를 잃다



이번 주 목요일, 당학덕은 「격우」신분으로 哥哥의 부고문에 「夜lan靜, 問有誰共鳴」 라는 글을 실었는데, 그 글귀는 哥哥의 노래가사인데, 글귀에서 전해지는 처량함과 구슬픔이 당선생이 일생 중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아픔과 상처를 표현하고 있다.

사실, 이성간의 관계도 20년 동안 유지하기란 쉬 운일이 아닌데, 장과 당은 외부로 공개된 후에, 서로 2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수많은 스트레스를 감수하면서도 외부에는 이를 알리지 않았다. 哥哥의 자살소식이 전해진 후에, 그동안 장국영의 배후에서 묵묵히 그를 20년간이나 지지했던 당선생은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哥哥의 자살소식이 전해진 그날 새벽4시경에 눈이 붉게 충혈된 상태에서 「우리는 십몇년동안 쭉 사이가 좋았다. 제3자의 출현이라는 건 없다. 그에 대한 내 마음은 변한적이 없다.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난 여전히 이렇게 그를 사랑한다.」라고 밝혔다. 그가 언론에게 이렇게 거듭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 것은, 「擊愛」장국영에게 결백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외부에서는 줄곧 장국영의 격애가 당학덕이라는 사실과 친구들이 그를 당선생 또는 그의 영문이름인 Daffy라고 부르는 것만 알았지, 그의 기타배경에 관해서는 몰랐다. 당학덕은 현재 44세로 부유한 상해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4명의 형과, 2명의 누나 1명의 여동생이 있는데, 그는 집에서 7째이다. 筌灣의 유명학교 聖芳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낸 학생이었는데, 반장을 한 것외에도 학교 농구부 대표선수였다. 당선생의 부모와 기타가족들은 이미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갔으며, 부친은 작년에 미국에서 별세했고, 그만이 홍콩에 남아 哥哥와 함께 살았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사실, 哥哥와 당선생은 둘이 함께 장옥련부인의 양자가 된 후에 알게 되었는데, 서로 알게 된지는 20년이 넘었다. 처음에 두 사람의 관계는 줄곧 비공개적이었는데, 95년 장과 당의 관계과 언론에 의해 외부에 공개된 후, 모든 것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우선 97년 哥哥는 콘서트에서 당선생이 자신의 어머니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그 후 98년 10월에 당선생은 가족신분으로 哥哥를 대신해 어머니의 장례식에 관여했다. 2000년 哥哥의 마지막 콘서트 때에는 당선생도 공개적으로 자신의 격애를 지지했으며, 두 사람은 동거관계공개여부에 상관 없는듯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작년 6월에는 해피밸리에서 함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찍혔었다.

20여년간, 감정상이든 경제상이든 당학덕은 哥哥의 뒤에서 묵묵히 그를 지지했는데, 97년에 哥哥는 「10여년 전 내가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 때, 이 친구는 몇 개월의 월급에 해당되는 돈을 나에게 빌려줘 내가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당시에, 힘든 상황에 처해있던 哥哥는 딱 한번 당선생과 싸운 적이 있는데, 그때 집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다 집어던져서 부서버렸다고 한다. 哥哥가 당선생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밖에도 시티은행과 스탠더드챠터드은행의 간부급 투자컨설턴트였던 당선생은 哥哥를 위해 투자자문을 해줬다. 92년부터 98년 사이에 당선생과 哥哥는 3곳의 회사를 합자해서 열었는데, 건물매매로 5천만홍콩달러상당의 이문을 남겼다. 哥哥는 「그는 나에게 많은 의견을 주고, 나를 도와 재산관리를 해준다. 난 돈을 벌 줄만 알지, 재테크같은건 모른다. 당선생이 그 쪽 방면을 잘 알고 있어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다.」라고 이야기 했었다. 哥哥 생전에 당학덕은 혼자서 페닌슐라호텔에서 친구을 만나 哥哥가 어디있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농담조로「그는 나 때문에 돈을 벌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두 사람의 친밀함은 재산상에도 구분이 없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태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당선생은 몇 년전에 이미 은행의 고위관리직을 사직하고 哥哥와 함께 반은퇴생활을 했다. 배드민턴을 치고, 마작을 하는 것 외에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태국에서 가, 방콕의 오리엔탈호텔에 묵으며 휴가를 보내는 것이었다. 이 호텔은 방콕에서 최고급호텔에 속할 뿐만 아니라, 홍콩사람이 적어서 사람들의 방해를 피할 수가 있는 곳이다. 장과 당 두 사람을 잘 알고 있는 친구는 두 사람이 태국에서 지낼 때는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哥哥와 당선생은 호텔에서 인생을 즐기는 것을 좋아했죠. 외출은 거의 안 했어요. 아침에 함께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哥哥는 Gym에 운동을 하러 가고, 당선생은 수영장에 가서 수영을 했죠. 그 후에 같이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 가서 애프터눈티를 즐겼죠.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이야기를 나누는 거였죠. 쇼핑을 가거나 밤에 디스코장에 가는 건 아주 가끔 있는 일이었어요. 哥哥에 의하면, 밖에 나가면 사진을 찍힌다.라는 거였죠, 그들은 항상 일찍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죠. 사실, 그들은 외부에서 떠들어대는 소문들을 아주 싫어했어요.」

친구의 눈에 哥哥와 당은 좋은 본보기였다.「그들이 20년을 함께 지낸 것은 사실 아주 힘든 일이었어요. 그들은 함께 몇 년을 보냈는데, 외부에서 그들의 관계를 모를 때에도 사람들이 알까봐 걱정했었죠. 哥哥는 공인이라서 스트레스가 아주 컸었요. 하지만, 20여년동안 정말로 제3자의 출연이라는 건 없었어요. 이건 정말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간에 깊은 정이 있을 때 만이 가능한 일이죠.」

그런 여유에서인지, 당선생은 哥哥가 자살한 그날 밤에,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난 당신(언론)들이 독자들에게 나와 哥哥의 감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알려주길 바란다. 당신들이 북경의 부유한 집 자식이라고 써대고 있는 조수 Kennith와 그 사이에 무슨 연애감정이 있었다고 떠들어대지 말아달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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哥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