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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07 19:28
MingPao weekly - No.1796
 글쓴이 : 12956
조회 : 7,897  
명보주간 1796기(2003년 4월 12일자)

당당이 哥哥를 위해 그의 주검에

채찍질을 가하지 말아달라고 언론에게 호소하다.




전화건너편에서 흘러나오는 Daffy(당학덕)은 차분한 목소리로, 「요 며칠간은 괜찮았다!」라고 내가 묻는 안부에 대답했다.

잠은 잘 자고 있는지? 「보통이다. 나와 그(哥哥)는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함께 있었는데, 원래대로 회복하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릴 거 같다.」

그는 좀 생각한 뒤에, 「사실 우린 뭘 얘기하고, 밝히고 싶지 않았다. 이전에 우리는 외부에서 떠들어대는 소문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행동으로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거나, 식사를 하는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더 이상 어떤 일도 밝힐 없게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나와 Leslie의 감정은 변한 적이 없다. 사람들이 쓴 키 큰 남자는 우리의 운전사이다. 그와 우리는 단지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일 뿐이다. 또, 우리 조수인 Kenneth를 부자집 자식이라고 칭하면서 맘대로 기사를 써서, 사람들로 하여금 추측을 하게끔 했다.」

「Leslie는 떠났다. 이미 어떠한 것도 증명할 수 없고, 증명할 것도 가지고 있지 않고, 공격할 힘도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글로서 그의 주검에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난 진심으로 언론들이 다시는 자기들 마음대로 글을 쓰지 않기를 바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모두들 哥哥가 이 예술계에 대한 열성과 열애를 appreciate해줘, Leslie가 평안하게 떠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또, 哥哥의 팬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들은 오랜 세월동안 그를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날 밤에 비를 맞으며, 줄을 서서 빈소에 들어와 조문을 드렸다. 난 정말 감동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묻자, Daffy는 조금은 막연하게 「아직은 아무런 계획이 없다.」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Daffy는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난 阿仔(Leslie)에게 이 두 마디 말만을 전할뿐이다. "天長地久有時盡, 此愛綿綿無絶期"」

哥哥장국영의 빈소가 마련된 그 날, 그의 사랑하는 친구 당학덕은 친척석의 맨 첫 줄 가장왼편에 앉아있었는데, 그의 얼굴에는 슬픔과 근심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조문을 하러 온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많은 여자 친구들이 울면서 그를 위로하며 안아줬는데, 그는 오히려 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 날에 당당은 다시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가 어려워, 그의 큰 키를 가누지 못하고, 운전사와 조수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걸어갔는데, 모두들 그의 아픈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금요일 저녁, 난 결국 그와의 통화에 성공했는데, 그의 목소리는 아주 차분했으며, 전화를 끊기 전에 그는「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난 阿仔(Leslie)에게 이 두 마디 말만을 전할뿐이다. "天長地久有時盡, 此愛綿綿無絶期"」 라고 말했다. 당당은 아직 안정을 되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많은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진숙분이 그를 대신해 보충해주었다.「哥哥의 장례식이 열리던 날, 장례식장안에는 哥哥의 동영상을 내보냈고, 지난 20년간 Daffy와 Leslie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배치해놓았다. 장례식은 TV를 통해 방영했다. 그의 외조카가 哥哥가 우리를 떠난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哥哥가 아픈 동안에 Daffy가 얼마나 세심하게 그를 보살폈는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哥哥의 가족들이 깊은 감동을 받고 사랑의 위대함을 느꼈고, Daffy에게 감격했다. 당일 장례식장에는 약 700여명의 친척과 친구들이 있었는데, 모두 그들의 증인이 되어줬다. 현재 나는 적당한 시기에 장례식의 모든 과정을 녹화한 테잎을 모든 언론과 팬들에게 공개해, 모두로 하여금 직접 증인이 되게끔 하려고 고려 중에 있다.하지만, 난 哥哥의 장례식 때 했던 것처럼, 哥哥생전에 그를 존중하지 않았던 언론들은 초대하지 않을 것이다.」

哥哥가 진숙분에게 약속했던 생일선물은 다시는 실행할 수가 없다.



장례식에서 哥哥 생전의 몇몇 친구들이 추도문을 낭독했는데, 哥哥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물씬 배어나왔다.

소시황은 哥哥의 프로필을 소개하며, 1999년 哥哥와 Suzi의 대화가 담긴 화면을 소개했다. 진숙분은 이에 대해, "자료수집, 편집, 제작에 도움을 준 서가, 태산, Helen, Wasabi, 록자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장학우는 연예계에 데뷔한지 18년이 되는 후배 가수와 배우의 신분으로 추도문을 읽어내려갔다. 사실, 그와 哥哥의 우정은 연예계선후배이상의 것이었는데, 哥哥가 아팠을 때, 그는 여러 번 그를 만나러 가 그의 마음을 달래줬다.

학우는 「아마도 우리는 정말 哥哥가 얼마나 큰 아픔을 받아, 이런 결정을 했는지는 완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우리들에게 있어 이런 그의 결정은 중대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손실인건만은 확실합니다.」

「哥哥는 수려한 외모와, 풍류와 소탈한 성격, 노래와 춤에 뛰어난 재능, 조예가 깊은 연기력을 갖춘 예술인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직접 느낀 그는 용감히 사랑하고 용감히 인정하고 용감히 말하지만 결코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죠! 선배를 존경하고, 후배를 이끌어주며, 사랑에 한결같았으며, 일에는 전문적이고, 생활에는 열심이었고, 가정에는 책임감이 있었으며, 친구를 위해서 모든 걸 다했고, 심성이 고왔으며, 일에서이든 친구와의 약속에서든 절대로 늦는 법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哥哥가 들을 수 있다면, 지난번에 당신이 저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묻고 싶군요. 당신은 저에게 "학우야, 우리 언제 같이 Musical를 하지?"라고 물었죠. 전 이말을 하고 싶어요. "전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어요. 哥哥. 시나리오도 완성되었어요. 비록 언제가 될지,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세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전 당신과 함께 할게요. 이건 저에게 영광이니깐요!」

학우가 직접 뮤지컬시나리오를 쓰다.



학우의 이 추도문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진숙분은 울기 시작했다. 「2001년, 내 생일날 哥哥와 학우는 함께 내 생일을 축하해줬는데, 생일파티석상에서 哥哥는 학우와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고 했고, 이건 그들이 나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라고 말했다. 내 남편도 이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다. 학우는 작년에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해서 哥哥에게 보여줬다. 그는 哥哥에게 믿음을 주고 싶어했고, 학우는 아직 대본수정 중에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 뮤지컬을 같이 할 기회는 다시는 없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다.



겉모습이 차갑게 느껴지는 서극 감독이 장례식장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의 부인인 시남생조차도 본적이 없는 아주 격앙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그는 우리로 하여금, 이 크나큰 세계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자신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생활 속에서 완벽을 추구할 수 있으며, 중국과 외국의 문화를 두루 배울 수 있으며, 끊임없이 예술인의 수양과 내면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끔 해주었다. 사업상으로 그는 예술을 충분히 사랑했으며, 수없이 많은 뛰어난 영화작품에 참여했으며, 세상의 눈초리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시도에 도전했고, 새로운 것들을 깊이 연구했으며, 스크린에서 논쟁이 될 수 있는 배역을 시도했으며, 끊임없이 영화계을 지지해왔다. 」
「일부 언론들이 끊임없이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왜곡시키고, 그들 입맛대로 연예들에게 해를 가할 때도, 그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숭고한 인격을 유지하고, 수양과 풍채를 유지하고, 자신에게 충실하고, 자기의 추구하는 바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러한 저속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다투는 현실의 시장 속에서 그는 여전히 진심으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 주었다.」

그의 또 다른 친구 황첨도 눈물을 흘리며 「만약 나에게 이 세상에서, 그 누가 문인의 펜대위에서 속세의 아름다운 귀공자라고 칭송되어질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알려줄 것이다. 바로 Leslie가 그런 사람이라고.」라고 말했다.

완벽한 장례식을 위해 200명이 동원되다.



진숙분 : 속세의 시시비비는 Leslie와 멀리 떨어지기만을 바란다.



비록 모두들 많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哥哥장국영은 우리 곁을 멀리 떠나갔다. 생전에 일을 함에 있어 완벽함을 추구했던 그는 사후에도 마찬가지로 완벽한 장례식을 치루게 되었다. 그를 사랑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그를 위한 마지막 일을 하는데 협력했고, 그는 하늘에서 기쁨과 위안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 그에게 상처를 준 시시비비가 여전히 주위를 맴돌고 떠나지 않으니, 그의 가족들은 이로 인해 더욱 가슴 아파하고, 분노를 느끼고 있다. 그의 전매니저이자 친구인 진숙분이 다시 한번 본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가족을 대신해 哥哥의 세계각지의 팬들에게 호소했다. 「그런 부도덕한 간행물은 사지도 말고 보지도 마세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들은 듣지도 마세요.」

진숙분은 「하지만, 속세의 시시비비가 이번엔 Leslie곁을 떠나, 그가 편안히 쉬길 바란다. 그의 팬들은 사실의 진상을 알지 못한다. 더욱이 그의 외국 팬들은 근본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고, 이미 그의 이별을 받아들이길 너무 힘들어 한다. 우리들은 정말 그들이 다시는 그런 부도덕한 언론들의 속임수에 놀아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들은 장례식장에서 찍은 화면을 방송국에 보내 방영하게 할 것이며, 그에게 조문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진짜상황을 보고, 그의 가족들이 그가 떠나간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게 해 줄 것이다.」
「외부에서 다시는 이전에 哥哥에게 주었던 스트레스를 Daffy에게 주지 않기 만을 바랄뿐이다. Leslie는 이미 다시는 직접 자신을 위해 그 어떤 것도 해명할 수가 없다. 다시는 그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달라.」

4월 7일에 빈소를 마련하고, 8일에 장례식을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哥哥의 장례식이 있던 이틀동안, 전 홍콩에 있는 흰색의 꽃들은 전부 다 팔려, 빈의관 안과 밖, 그의 집 앞, 그가 마지막에 있었던 호텔문앞을 장식했다고 한다.

哥哥의 완벽한 장례식에 대해, 진숙분은 「이건 哥哥의 복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한 이 마지막 일을 위해 온 마음을 다 쏟았다. 이번 장례식에 동원된 인원만 해도 약 200여명인데, 친구들 대부분은 도움을 자청했고, 어떤 친구들은 전화를 받자마자 자신의 일은 내버려두고 도와주러 왔다. 조문하러 온 친구들이 늦게 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혼란을 막고, 사람들이 마음대로 장례식장에 들어오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나와 시남생은 Daffy와 哥哥의 가족을 대표해 哥哥 생전의 친구와 연예계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홍콩전영공작자총회, 연예인협회, 도연회, 전영제작행정인원협회, 동작특기연원공회등은 60여명의 회원을 파견했고, 이동승, 유천란, 유위강, Sunny, 동위등이 나서, 哥哥의 가족대표인 Gilbert와 연락해, 진자강, 진결영, 상산시눌, 연염휘, Millie, 황보주, 잠건훈, Jessie, Debbie, Catherine, 패화, Vani, Karen, Terasa, Anite, Chris, 주자 등등과 같은 연예계의 몇몇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동원된 사람들은 몇개의 조로 나눴는데, 각 조에는 6~12명의 사람으로 접대, 교통, 화환접수, 등록, 보안, 카드 발급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Judy Wong은 장례식장내의 꽃 장식을 책임졌으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구급요원들이 장례식장 전체에 걸쳐 대기하고 있었으며, 다들 진심으로 일에 협조해주었다. 더욱이 장례식장바깥의 질서유지에 도움을 주신 홍콩경찰측에 너무 감사드린다.」

24시간 哥哥의 시신을 지키다.



장례식장의 전문보안은 스탠리보안회사에서 담당했다. "스탠리는 우리들이 제일 믿는 보안회사이다. 哥哥의 예전콘서트의 모든 보안은 다 그 회사에서 담당했었다. 그의 세계순회콘서트에는 스탠리 본인이 직접 따라 나섰었다."
스탠리는 40여명의 보안요원을 파견했는데, 그 중 2명은 24시간 哥哥의 시신을 지키는데 투입되었다. 게다가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해놓고 24시간 감시했다. 哥哥의 가족들과 진숙분은 스탠리의 보안이 아주 적절했다고 인정했고 매우 감격했다. 「스탠리는 그들이 한 경호에 따른 보수를 받지 않았는데, 그는 이것을 자신이 哥哥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성의라고 했다.」

진숙분은 또한 哥哥의 가족을 대표해 장례식장내의 촬영을 담당한 好合拍회사의 사장 소조순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했다. 「그는 직접 모든 과정에 다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哥哥와 함께 일했던 감독 Kevin, Bill등 여러 명을 보내 도와줬다. 또한, 촬영을 담당한 하영강, 유위교, 양명건은 쭉 뜨거운 눈물을 머금은 채, 묵묵히 맡은 일을 했다. 또, 시간이 없는데도 자기에게 맡겨진 모든 일 때문에, 급하게 기념책 제작을 도와준 장숙평과 임석도 있다. 그는 기념책에 哥哥생전의 찬란한 무대인생과 심경, 그의 이별에 대한 우리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적어놓았다.」哥哥의 시신이 담긴 관이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 , 장례식장내에는 哥哥가 무대에서 보여준 풍채와 생전의 영화와 콘서트장면을 편집한 영상이 흘러나왔는데, 그 곳에는 哥哥와 친구들간에 찍은 사진과 당당과 지난 20여년간 함께 찍은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이러한 영상은 곡덕소, 아전, 아침이 3일 밤을 새워가며 완성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숙분은 哥哥의 팬들에게 몇 마디 말을 남기고 싶어했다.
「여러분들은 정말 교양 있는 분들이에요, 여러분들은 비통해하고, 가슴아파하면서도 침착하고 인내심 있게 줄을 서서 장례식장으로 들어가 조문을 했어요. 그때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도...」진숙분은 목이 메이는 가운데도,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우상을 위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라고 전했다.

진숙분이 哥哥에게 남긴 마지막 말



To My Dearest Sweet Leslie

이 생에서 당신과 같은 친구이자 파트너를 만나서 너무 영광스러웠어요. 만약에 정말로 내세가 있다면, 이러한 특별한 영예를 다시 한번 누릴 수 있기를 빌게요. 당신은 영원히 제 마음속에 있을 거에요.

당신을 그리워하는 Florence



* 비록 어설픈 번역이지만, 이 글은 이곳에서만 감상해주세요. 운영자의 동의없이 다른곳에 올리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