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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11 04:10
<b>Esquire No.174 May.2003</b> - 추모기사
 글쓴이 : 1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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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quire No.174 May.2003 》

장국영과의 2번의 접촉



그 맑은 새벽에, 영결식장 앞에 있는 눈송이처럼 흰색의 난꽃이 땅으로 떨어질 때, 난 장국영에 관한 글을 써야지 하고 내 자신에게 말했다. 비록 당신은 지난 몇 주동안은, 아마도 이미 수많은 장국영을 추모하는 TV프로그램과 신문과 잡지의 특집을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마비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이, 우리가 그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둘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그를 우리들 마음속의 흰색의 난꽃처럼 영원히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존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생명의 씨앗 2개

지난 한 달동안, 많은 사람들이 장국영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심지어는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열렬한 팬이 아니었는데 불구하고, 이 일로 힘들어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또한, 그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 생명의 무상함을 깨우쳐, 지금과 같이 생명이 연약하게 느껴지는 시기에, 더욱더 우리들의 마음에 쉽게 다가왔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나 또한 장국영의 팬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Espuire"잡지 일로 인해, 지난 7년간 "Esquire" 잡지에서 일하는 동안, 2번이나 Leslie와 접촉했었다. 이 두번의 만남은 비록 마음속 깊이 새겨질 만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과정 중에 그가 했던 섬세한 동작들과 주의하지 않은 말들은, 원래부터 내 마음속에 아름다운 생명의 씨앗 2개를 남겨놓았었다.

열정으로 충만한 예술가

처음 촬영한 것은 1999년 11월호였는데, 그 호는 마침 우리들의 11주년 기념호였다. 촬영지는 완차이 修頓구장 맞은편에 있는 한 스튜디오에서였다. 그 때, 장국영은 정장, 가죽, 터틀넥 등 이미지가 비교적 쿨한 스타일의 옷을 입었는데, 찍은 사진들의 느낌 또한 아주 쿨한 흑백사진이었다(우리가 이번 호에 부록으로 첨부한 엽서세트가 바로 그 사진들이다.). 그때, 처음 Leslie와 접촉한 인상 또한 매우 쿨하다는 것이었는데,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만지는 동안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아서, 우리들로 하여금 걱정하게끔 만들었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촬영이 시작되고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바로 100% 진심으로 일을 해나갔다. 난 Leslie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형용사는 바로 "예술가"라는 것이다. 그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천성대로 행동하고, 주위의 사람들과 일에 대해 아주 민감하고, 또한 일에 대한 열정이 충만했다.

그 때, 촬영을 담당했던 小黑은 요구사항이 매우 까다로운 사진작가였는데, 장국영의 그러한 열정적인 업무태도는 사진작가에게도 최선을 다하게끔 영향을 줘, 결과적으로 힘이 넘치는 흑백사진을 찍어내게끔 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우리들은 엽서를 제작하기 위해 서로 자기일로 바빠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 사진작가와 다시 만났는데, 이전에 함께 했던 이 촬영장면이 떠올라, 그 사진작가 또한 슬픔을 안고 한숨을 지었다.

천성적으로 무대에 속하는 표연자(表演者)

장국영과의 두번째 만남은 2001년 4월호"Esquire"의 커버촬영을 위해서였다. 그날 그는 조금은 피곤한 상태로 우리와 만났는데, 아주 조용히 분장실에 앉아서 유유히 거울 속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로부터 약 2년이 지난 때였는데, 장국영의 얼굴은 그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준수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예전보다 조금 많은 우울함과 피곤이 배어있었다.

촬영당일에 촬영도구상의 문제가 발생해 촬영이 늦어졌지만, Leslie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않고, 오히려 아주 조용히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는데, 너무 조용해서 주위의 공기마저도 굳어지는 듯 했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조명과 배경 등 각 방면에서 모든 촬영준비가 끝난 후, 장국영이 카메라 앞에 나서자, 굳었던 공기가 한꺼번에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의해 풀어지고, 움직임을 재촉하고 있는듯했다는 것이다. 표지촬영을 위해 그는 두꺼운 주황색 Hermes 담요를 들고 펼치는 고난도의 포즈를 취해야 했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 포즈를 취해야 좋은 장면이 연출될까 고민하고 있을 때, Leslie는 담담하게 한마디 말을 던졌다. "내가 직접 한번 해보죠." 그 후에, 그는 그 담요가 자신의 신체일부분이라도 된 듯이 자유자재로 부드럽고 아름답게 춤을 추듯이 각종각양의 아름다운 포즈를 연출했다. 그 순간, 나는 그제서야 왜 사람들이 장국영은 태어날 때부터 무대와 스크린의 표연자에 속한다고 말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구름가장자리에서의 미소

지금, 홍콩에서 가장 재능이 있고 가장 차밍한 무대 표연자였던 이 사람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는 TV속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장국영의 죽음으로 인해 아주 힘들어하고 있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서, 나 역시도 한번이 아니라 재차 실망감과 우울함을 느꼈다. 더욱이 오우삼감독이 지금까지도 장국영을 "杰仔(영웅본색에서 장국영이 맡은 배역)"라고 부르면서, 장국영과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터뷰에서 이 터프한 남자는 눈물을 흘렸는데, 이 장면은 정말 감동스러웠다.

올해에 우리는 홍콩연예계에서 가장 차밍한 대스타라고 할 수 있는 라문과 장국영 이 두 사람을 잃었는데, 이건 우리에게 있어 정말로 크나큰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유감스러운 일이 우리에게 준 느낌이 있는데, 그건 모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잃어버린 후에야, 비로서 그 잃은 것이 자기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깨우친다는 것이다. 만일 장국영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번의 아픔속에서 자신주변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일을 아끼는 것을 배울 수 있게 된다면, Leslie는 천당의 구름가장자리에서 그를 위해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확연한 미소를 피우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