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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16 23:09
1984년 홍콩 RTHK방송 Interview (1)
 글쓴이 : 12956
조회 : 6,970  
84년 RTHK라디오 인터뷰

RTHK《把歌談心(노래로 마음을 털어놔요)》

방송 일시 : 1984년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 방송듣기



1984년 6월 27일 방송분

진행자 : 등애림
초대손님 : 哥哥

등애림 : 오늘의 초대손님은 저의 친구 - 장국영입니다.

등애림 : 장국영과 알고 지낸지가 어느덧 7~8년이나 흘렀네요. 처음 Leslie를 알게 됐을 때, 그한테서 받은 느낌은 아주 활발하고 장난끼가 많은 남자아이였다는 거였죠. 그는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큰소리로 웃고, 소리지르고, 오버액션을 취했죠. 하지만, 그는 몇 년동안 못 본 사이에 색다른 모습의 장국영이 되어 있네요. 지금의 Leslie는 조금은 온화하고 성숙된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하고, 신분에 맞게끔 이전처럼 오버액션을 하진 않네요. 정말로 그가 많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Leslie가 많이 변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등애림 : 장국영을 아는 많은 홍콩친구들은 당신이 그 해 RTV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게, 아주...

哥哥 : 아주가창대회였죠.

등애림 : 맞아요. 아주가창대회.

哥哥 : 빨간색 신발을 신고, 방방 뛰면서 American Pie를 불렀죠.

등애림 : 가창대회에 참가한게 된 계기가 뭐였지요?

哥哥 : 그때 막 영국에서 공부를 마쳤어요. 사실 공부를 다 끝낸건 아니에요. 하지만, 아버지가 편찮으시다며, 귀국을 종용하셨죠. 사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때가 있잖아요. 아버지는 그 때에 그런 시기에 처해계셨던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돌아온 후에 아버지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죠. 사실 정말 실망했어요. 영국에서 전 장학금까지 받았거든요. 텍스타일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다시 돌아가지 말라고 하시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건지? 그래서, 홍콩에 남아있는 동안 내내 낙심하면서 지냈어요. 그 때, 친구가 저에게 "가창대회가 열리는데, 너도 노래부르는걸 좋아하니깐, 참가해보는게 어때?"라고 했죠. 전 "됐어. 너 등록하는데나 같이 따라가줄게."라고 했지만, 결국엔 저도 등록을 했어요. 그리고, 어쩌다보니 결선에까지 올라가게 됐죠.

등애림 : 운명이 아닐까요?

哥哥 : 그래요. 이건 아주 중요해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공부한 것도 연예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어요. 만일 제가 연예계에 진출할려고 했다면, 외국에서 음악공부같은걸 했을거에요. 하지만, 아니었죠. 결국엔 연예계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거죠. 하하.

등애림 : 하하, 몇 살때 처음 홍콩을 떠난거죠?

哥哥 : 13살때요. 13살때죠. 하! 정말 대단했죠. 그때 그곳에 친척이 딱 한분 계셨어요. 저 혼자 비행기에 타고, 그곳에 도착하면 그 분이 절 마중나오시기로 되어있었죠. 전 그 분이 누군지 몰랐어요. 딸랑 사진 한장을 들고, 이게 누구람?하고 생각했죠. 그 분은 저의 고모님이시었어요. 이런식이었죠. 그 때 가장 기억에 남는건, 처음으로 비행기에 타봤다는거에요. 747기 중간에 앉았는데, 그 비행기는 전세기였죠. 그 때 많은 부모님들은 학생들이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런 전세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셨죠. 그 비행기는 Laker라고 불리는 기종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한창 유행했어요. 매번 외국에 갈때 타는 전세기는 그 회사꺼였죠. 그래서, 제가 탔던 것도 전세기였는데, 제 옆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은 "新法"을 읽고 있었죠. 하지만, 그는 이런 비행기에 익숙한 듯 매우 세련되고 편안하게 앉아있었죠. 하지만, 전 엄청 긴장해서 손은 땀으로 가득했죠. 처음 비행기를 타는거라서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고, 결국에 비행기가 이륙하는 도중에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위에 있던 기내 영사기가 떨어지고 말았죠. 영사기를 매달고 있던 4줄의 용수철줄만 그곳에서 번쩍이고 있었어요. 비행기가 구름위로 올라가고 비행상태가 안정이 되고나서야, 승무원이 "잠깐 비켜주시겠어요."하면서 그걸 고치더군요.

등애림 : 하! 정말 영화같은 스토리군요!

哥哥 : 그래요.

등애림 : 13살때 혼자서 집과 부모님곁을 떠났는데,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유학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요, 아니면 부모님이 당신을 위해서 결정하신건가요?

哥哥 : 아뇨. 어렸을 때는, 요령을 피면서 공부를 하는 편이었어요. 영어말고는 잘 하는게 없었죠. 더욱이 수학은 말할 필요도 없어요. 아버지는 제 수학점수를 보시고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셨죠. 수학점수는 거의 빵점에 가까웠거든요. 게다가 당시에는 자녀를 외국에 유학보는게 일종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유행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벌써 10여년전 일이군요. 하하. 아버진 저에게 "너도 가고 싶으니?"라고 물으셨고, 전 "좋아요. 가죠."라고 말했어요. 그 후에 등록을 했고, 모든 일들은 아주 빨리 진행됐죠. 사실, 당시엔 수학의 교과과정이 바뀐 때라서, 전 뭐가 뭔지를 몰라서, 제 수학성적으로는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아버지는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는게 낫지 않겠니, 몇년 외국에 나가 있거라."해서, 전 좋아요, 그럼 가지요, 이런 심정이었어요. 아주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었죠. 영국에서의 첫날 밤에 기억나는건 아주 큰 기숙사방이에요. 영국에 간 후에, 그 학교가 아주 크다는 생각했어요. 제가 처음에 간 학교는 런던이 아닌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Epsom이라는 곳에 있는 학교였는데, 시골스러운 기숙학교였어요. 첫날 밤에는 기숙사방에는 저말고는 아무도 없어서, 저 혼자 16개의 침대가 놓여진 방에서 잤죠. 아무런 느낌은 없었어요. 홍콩을 떠났을 때도 향수병같은건 없었죠. 단지, Bye-Bye하고 떠났을뿐이에요. 어머니도 다른 부모님들처럼 울면서, "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오렴."이라고 말씀하셨을뿐이었죠.

등애림 : "세상일을 많이 겪어보고 오렴." 이런거군요.

哥哥 : 아, 아, 생각났어요. 언제 향수병이 생겼는지. 영국에 간지 2주 뒤였어요. 반친구랑 같이 부근의 도시에 놀러갈려고, 기차를 탔죠. 우리는 기차 맨 끝에 앉아서, 기차에서 끊임없이 뿜어져나오는 연기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집에서 멀리 떨어져나왔다는걸 깨달았죠. 그때 가족들이 생각나기 시작했어요.

등애림 : 당신이 말한것처럼, 홍콩의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외국에 나가서 몇년 살다오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죠.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너무 어린탓에, 나쁜것들을 배울 기회가 더 많기도 하죠.

哥哥 : 제 부모님이 운이 좋으셨죠. 전 나쁜 것을 배우지 않았어요. 그땐, 아마도 제가 어려서였는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어떤 고학년선배들이 그랬죠. 그들은 senior였고, 저희들은 junior였는데, 전 그곳에 간 첫해에는 Lower F단계에서 공부했죠. 미국과 캐나다의 교육제도와는 달라요. Grade로 따지지 않고, Lower F, Upper F, 5F~ 0F 와 같은 단계가 있죠. 월반을 해서, 사실 전 F1단계수업을 들어야했지만, 그곳에서 F3, 4단계에 해당하는 수업을 들었어요. 영어는 당연히 힘들었죠. 하지만, 수학은 괜찮았어요. 물론, 썩 잘 한건 아니었지만, 원래 점수보다 나았으니깐요. 전 나쁜 것을 배우지 않았고, 오히려 식견을 넓혔죠. 왜냐하면, 혼자 다른 도시에 갈려고 해도 표같은거 사는걸 포함해서 모든일들을 저 혼자 처리해야 했거든요. 독립적인 생활방식을 배웠죠. 또한, 전 홍콩에 있을때도 체육같은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곳에 간 뒤에 축구같은것도 하고 그랬죠. 학교 규정상 꼭 해야했거든요.

등애림 : 장국영씨의 집에는 일곱명의 자녀(*원래10명이지만, 3분은 일찍이 돌아가심)가 있는데, 그 중 그가 막내죠. 많은 분들이 알듯이 그의 아버지는 은퇴전에 양복점을 하셨어요. 그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셨죠. 이것도 많은 분들이 아는 사실이겠지만, 장국영의 큰 누나인 장록평도 소비자위원회에서 일하고 계시죠. 그렇다면, 장국영이 가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떨까요?

哥哥 : 아주 좋아요. 저와 큰 누나와의 사이는 아주 좋아요. 아마도 제가 어리기 때문일거에요. 제 형과 누나들에게 전 언제나 막내죠. 지금처럼 이렇게 일을 하는데도, 일주일에 2~3번은 전화해서 "어떻게 지내니? 같이 식사나 하자."라고 하죠. 또, 같이 쇼핑도 가고 그래요. 12월에 태국에서 콘서트를 여는데, 우리 가족들도 다 갈거에요.

등애림 : 당신을 격려하러 콘서트에 가는거군요.

哥哥 : 음, 콘서트도 보고 관광도 하는거죠. 지난번에 제가 그곳에 갔을 때 새로운 곳을 발견했었죠. 아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같이 갈려구요.

등애림 : 이렇게 장국영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집안환경이 좋았을거 같네요.

哥哥 : 아뇨. 그냥 중산층이었어요. 아주 좋은편은 아니었죠.

등애림 :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받는다."라는 말이 있죠. 많은 심리학자들이 갖가지 실험을 통해서 증명해낸 사실이에요. 전 장국영이 잘 생겼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당신은 막내에다, 위로는 누나와 형들이 있었으니, 어렸을때부터 얼마나 귀엽고 예뻤을지 상상이 가요.

哥哥 : 전 통통한 편이었어요.

등애림 : 어렸을때 통통했다구요! 어렸을때부터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았나요? 학창시절에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을거 같은데, 커서도 주위사람들이 당신한테 남다르게 잘 대해 주지 않았나요?

哥哥 : 선생님요? 어떤 과목 선생님이냐에 따라 다르죠. 하하. 만약 수학선생님이라면 절 아주 멍청한 애라고 생각했겠구요. 하하. 영어선생님이라면 절 아주 좋아했죠. 전 항상 작문이며 그런 것들을 해갔거든요. 아주 앞에 나서는 편이었어요. 어렸을때부터 그런걸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항상 좋은 점만 있는건 아니었어요. 어떤 때는 남자가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것이 장애가 되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부러움이나 질투심때문에 잘 생긴 사람을 싫어하잖아요. 또, 원래부터 좀 거친것들을 좋아해서 잘생긴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거나요. 제 생각을 말하자면, 전 외형보다 내면을 중시하죠. 외형은 금방 사라지는거잖아요. 하지만, 내면은 영원히...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외모는 아주 빨리 사라지죠.

등애림 : 내면에 있는것들은 영원히 간직할 수 있죠.

哥哥 : 그래요.

등애림 : 그렇다면, 처음 가창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았을 때,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당신을 아주 좋아했잖아요. 제가 기억하기론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당신에게 큰 박수를 보냈었는데요.

哥哥 : 그래요. 다시 외형과 내면을 가지고 이야기해보죠. 전 그때 정말 내면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날 밤이 지나고 난 후에는, 아무것도 없었죠. 그때 그 사람들은 흥미를 느꼈을뿐이에요. "아, 저 남자애 참 재미있구나. 춤추는 모습하며, 정말 귀엽네.라구요. 하지만, 그 후에 제가 보여준 것들 중 많은 것들은 잘못됐거나,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죠. 어떤사람은 저를 위로해준다고, 제가 그때 했던 것들은 너무 전위적이었다고 말하더라구요. 만약에 그 때 했던 것들을 지금 한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겠죠. 또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저한테 근본적으로 내면이라는게 없었어요. 그래서, 그날 밤에 그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후에, 좋은 결과가 없었던거죠. 그 후에 얼마간은 정말 외로웠어요. 하지만, 그 기간동안 전 저 자신한테 충실했죠. 사람들이 제 노래가 안 좋다고 하면, 그럼 노래는 하지말고 영화와 드라마를 찍으면 되지 이런 마음이었거든요. 몇년이 지난 후에, 사람들한테 잊혀질만했을쯔음에 다시 노래를 불렀죠. 그때까지만 해도, 목소리가 별로 변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많이 변해버렸죠.

등애림 : 게다가 성숙해졌어요.

哥哥 : 목소리가 성숙해졌죠. 그래서, 이 때 발표한 음반들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죠.

등애림 : 전 장국영은 전기적인 인물이라고 줄곧 생각해왔어요. 그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에게는 이미 많은 일들이 일어났죠. 그가 아주가창대회에 참가해 하룻밤사이에 유명해지고 난 후에, 돌연 대중들의 홀대를 받았죠.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아주 용감하게 묵묵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죠. 오늘, 장국영은 완벽하게 대중들의 환영을 받고 있어요. 이 모든 것들이 이 한 명의 젊은이에게 일어난 일이에요. 전 모든 어린 친구들이 이런 경험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장국영의 모든 것은 내일과 모레 《把歌談心》에서 계속 이야기 나눌거에요. 등애림과 장국영은 내일 아침 11시에 여러분과 다시 만날거에요. 다음 프로그램은 예병랑의 《아랑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