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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25 16:44
1985년에 방송된 라디오 자서전 내용(1)
 글쓴이 : 1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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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상업라디오 방송 인터뷰 - 1985년 哥哥가 자신에 관한 것들을 직접 얘기한 프로그램입니다.

1부 - 가족



어린시절



내가 기억하는 어린시절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많은 사람들이 "아, 말도 안돼."라고 말은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나한테 일어났었다.

내가 지금 말하는 것들은 다 지나간 일들이기 때문에, 슬픔이라던가, 비통함 같은건 없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얘기하는 건 조금은 불편한 감이 없지않아있다.

비록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를 염두에 두지 않겠지만, 내 어린시절을 떠올리자면, 정말로 장국영의 어린시절은 다른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아끼고, 자신의 장난감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많은 장난감이 없었다.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장난감은 조그만 자전거였다.

우리집은 완차이에 있었다, 내 어린시절의 집 말이다. 그 집은 양옥이었다. 집에는 할머니와, 2명의 일하는 사람과, 형과 누나들과 함께 살았다, 내가 10번째로 막내였기 때문에, 남동생이나 여동생은 없었다.

그때 내가 알고 지내던 많은 친구들, 즉 5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 집에는 모두 열 몇 명씩이나 되는 식구가 있었다. 우리집은 중산층 가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하 출산방면에서 말이다. 질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유명한 양복재단사였는데, 어머니는 일찍 시집을 가셔서, 이렇게 많은 자녀를 낳고, 아버지를 도와 양복점에서 일을 하셨다. 아버지는 원래 돈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맨손으로 일가를 이루신 분이셨다.

양복업계에서 아버지는 꽤 존경 받는 사람이었는데,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헐리우드의 스타 말론브란도같은 사람이 아버지 양복점에서 옷을 맞췄었다. 그래서, 그때 아버지에게는 Tailor King이라는 영어 별칭이 있었는데, 정말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내 어린시절에 끼친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부모님이 나와 같이 산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때 어린아이들은 부모님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낙담하지 않는가? 따로 산 이유는 간단했다. 어른들은 이기적이고, 아버지는 여자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센트럴에 있는 2층짜리 건물에서 살았는데, 1층은 집으로 꾸며놓고, 2층은 공장으로 되어있어서, 부모님은 2층에 있는 인부들을 돌보기 위해서, 우리들과 같이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그때의 어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거나, 내가 불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자신들의 자녀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때 모든 일들은 어른 위주로 돌아갔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학대를 받는다해도 신고할 수 있는 제도 같은 건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님이 우리들을 학대했다는 건 아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 매를 맞는 것도 다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 좋은 뜻으로 그런 것 일텐데, 난 이런 경험조차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요일 날에 아버지가 카메라를 가지고 나를 데리고 공원에 가서 사진을 찍는 다는 등의 소원은 생각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난 이상한 관계였다. 내가 아버지 사무실에 갔을 때 그곳에서 일을 하던 아저씨들은 나에게 "어떻니? 仔仔야(난 어렸을 때, 눈이 크고, 작은 코에, 입술도 빨개서, 귀공자처럼 생겼었다.)"라고 묻곤 했었다. 아버지의 친구들이 나를 볼 때면, "와, 너 정말 귀엽구나, 아버지가 너하고 외식하러 가자고 하지 않으시니?"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말들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항상 하는 말들이다.

그때, 난 겨우 막 초등학교1학년에 들어간 6살이었을뿐인데, 아주 이상한 말 한마디정도는 할 줄 알았다. 아버지가 이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그 뒤에도 난 어른들에게 "난 그(아버지)와 잘 알지 못해요."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번도 이 말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이전과 똑같았다. 당시에, 지금은 아주 유명한 호텔인 페닌슐라호텔이 침사초이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곳에 방을 빌려놓고, 여자들하고 그곳에서 보냈다.

나에게 두 분의 어머니가 계셨다. 두 분의 어머니는 같은 집에 사셨는데,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 함께 살면서 한 남자를 나눠가지고 있었으니,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질투때문에 그 두 번째 어머니는 나에게 오줌을 뿌린 적도 있었다. 어린시절은 이렇게 유쾌하지 않게 보냈다.

六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왜 지금까지 六姐랑 같이 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사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방금 내가 했던 이야기들을 들었다면, 왜 그러는지 알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 난 막내이기 때문에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고립되어 있었다. 큰 누나와 둘째 누나는 한 팀을 이뤄서 자기들끼리 잘 놀고, 세째와 넷째는 세상을 떠났다. 다섯째 누나와 여섯째 누나는 나이가 비슷해서 잘 어울렸고, 일곱째 형과 여덟째 형도 그랬다. 아홉째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다. 여덟째 형과 난 8살이나 차이가 나서, 난 항상... 여덟째 형은 항상 날 돌봐주려고 노력했지만,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서, 서로의 관심사가 다 달랐다. 그가 여덟 살 때, 내가 태어났고, 그가 18살 때 난 겨우 10살이었다. 그래서 다들 관심사가 다 달랐다.

난 어렸을 때 유달리 조용했는데, 여러분들이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는다면, 六姐가 나에게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난 어렸을 때는 좀 오래된 큰 방에 살았는데, 그곳에 있으면 난 편안했다.

예를 들어 거실에 손님들로 가득할 때면, 아무도 날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난 혼자 그 방으로 들어가, 아무도 내가 그 안에 있다는 걸 모르게 했다. 난 울거나 누가 나하고 놀아달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았다. 그게 일종의 침묵 시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특별히 내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다. 내 어린시절을 추억할 만한 기억이 없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것은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일이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내 눈으로 직접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것이라서,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겨줬다.

외할머니의 죽음



초등학교 1학년 때, 1학년 때 정말 많은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어느날인가 학교를 마치고, 六姐가 나를 데리러 와서는 나에게 무서워하지 말라면서, 외할머니가 주무신다고 말씀하셨다. 난 무슨 잠을 자고 계시는 거냐고 물었다. 그 때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일찍 철들어서 어떤 때는 애들이 보지않는 광동어극 같은 걸 보곤 했었다.

뭔가 나쁜 조짐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가니, 친척들이 전부 집에 와 있었다. 친척누나는 울고 있었고, 형은 나에게 "막내야, 이리 와서 외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리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라고 말했다. 그 후에 내가 기억하는 건 그녀가 그 방에서 돌아가셨다는 걸 기억한다.

할머니는 중풍으로 인해,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방에서 나와 함께 지내셨는데, 그녀가 돌아가셨을 때 나이는 75세로, 그녀는 육십몇세때부터 중풍으로 고생을 하셨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대나무의자에서 하루를 보내셨는데, 일하는 사람이 그녀를 씻겨주고, 먹여주는 거 말고는 다른 일은 없었다. 그녀는 사실 매우 고독한 노인이었다. 왜냐하면,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침대에서 일어난 후 그 대나무의자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난 할머니가 의자 위에 앉아서 돌아가신 것을 보았고, 이미 그녀의 피부색깔은 검은색을 띄기 시작했었다. 장의사가 와서 할머니의 시신을 거두어가고, 어른들은 다 바빠보였다. 그런 다음에 빈의관으로 갔는데, 그때 처음으로 빈의관에 가봤다. 그곳에서 할머니의 사진이 걸린걸 보고, 난 무서워서 안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에 직접 할머니의 시신를 봤는데, 별다른 변화를 못 느꼈다. 단지 그런 옷을 입고 천으로 덮어놓은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관주위를 둘러서서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절대로 관위에다 눈물을 흘리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날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고 했다. 이때부터 난 이런 미신 같은 것들을 듣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고 다시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



어렸을 때부터 결혼에 그다지 믿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외삼촌이 결혼할 때, 그는 한 분의 외숙모한테 장가를 가셨는데, 당신에 난 강하게 이 결혼에 항거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결혼식 내내 그녀만 보면 큰소리로 울어댔고, 너무 심하게 울어서 六姐가 날 안고 결혼식장을 나갔다. 그땐, 난 그녀를 보고 울었을뿐만 아니라, 그녀를 잡아 당기기까지 했었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그 외숙모였는데 말이다. 나의 어린시절은 이랬다.

어렸을 때 재미있었던 일 한 두 가지를 여러분께 들려주겠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겨울에 수영을 하셨는데, 사실 내가 그리 어렸을 때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연세가 꽤 드셨을 때도 여전히 수영을 즐기셨다. 내가 중학교 때 나한테 나와서 가게 일을 도우라고 하고선, 그는 겨울 수영을 즐기러 갔었다.

아, 사실 그때는 수영이 막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있는 때라서, 그다지 많은 수영장이 없었다. 그 중에 維多利亞 대중수영장과 서환에 있던 한 수영장이 사람이 가장 많았었다, 어렸을 때는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더욱이 여름방학에는 말이다. 아버지는 날 데리고 어딜 놀러가시는 분이 아니었다. 아, 난 六姐랑 2센트짜리 전차를 탔는데, 하하, 그때는 전차가 2센트밖에 안되었었다. 서환의 수영장에 갔었다.

그 때, 아버지가 그곳의 수영 단장이었는데, 그때가 가장 웃겼던 일로 기억된다. 그때 난 아버지가 여러 친구들하고 같이 있는걸 봤는데, 그는 내가 마치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좋은 친구의 아들에게 대하는거마냥, 나의 머리를 쓰다듬고, 바지주머니에서 돈을 한 웅큼 꺼내서 주었다. 난 그 큰 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전부 다 六姐에게 주었다.


* 이 라디오자서전에서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 가족
(어린시절, 六姐, 외할머니의 죽음, 아버지,
수영에 관한 재미있었던 일, 일곱째 형과 여덟째 형)

2부 - 학창시절:초등학교
(나의 가장 좋은 "친구들", 聖路琦초등학교(St. Luke Primary School), 큰 누나 장록평은 아주 엄했다, 초등학교때 재미있던 일)

3부 - 학창시절:중고등학교
(매괴崗중고등학교(Rosary Hill Secondary School), 적응기,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영화)

4부 - 연애사
(초등학교시절 연애사,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1),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2))

5부 - 학창시절:영국유학시절
(영국으로의 유학, 학교에서의 첫 느낌, 아침식사, 점심식사와 체육수업, 저녁식사,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다, 지리과선생님, Leeds대학교와 홍콩으로의 귀국)

6부 - 연예계진출
(아주가창대회참가, RTV와 Polygram과의 계약, 처음으로 무대에서 실망한 일과 첫번째 영화, TV드라마에 출연, 새로운 도전, 싱가포르와 태국에서의 콘서트, 《영몽가락》를 찍을 때 있었던 잊을수 없는 경험, 난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

7부 - 진백강
(1978년에 진백강을 알게 되었다, 진백강과의 우정, 진백강과의 사업관계, 진백강은 나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를 원치 않았다.)

8부 - 사업상의 전환점
(처음 진숙분을 만나다, MONICA와 화성음반사, 진숙분과 여소전)

9부 -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여성
(첫번째 여성은 "六姐"이다, "六姐"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어머니와의 관계, 대모님, 매염방을 위해 해명하다, 매염방은 의리가 있다.)

10부 - 앞으로의 계획
(콘서트에 대한 약속,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 나의 소원)


哥哥..
미치도록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