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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5-27 00:04
1985년에 방송된 라디오 자서전 내용(2)
 글쓴이 : 1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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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상업라디오 방송 인터뷰 - 1985년 哥哥가 자신에 관한 것들을 직접 얘기한 프로그램입니다.

1부 - 가족



수영에 관한 재미있었던 일



또, 내가 수영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됐군, 난 어렸을 때 수영팬츠를 아주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수영팬츠는 여러분들이 지금 입는 그런 섹시한 스타일이 아니라, 무슨 브랜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어린이옷을 파는 가게에서 산 것이었다. 그 수영팬츠는 아주 귀여웠는데, 흰색 바탕에, 빨간색, 녹색, 남색의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수영팬츠가 무슨 풍수와 상관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입고 있으면, 아주 힘이 넘쳐서 평생 그 물고기들처럼 그곳에서 수영을 하라는 것처럼, 2~3번 물에 빠져 죽을뻔한 적이 있었다.

그 첫번째 사건은 아주 어렸을 때였는데, 역시 그 수영장에서였다. 지금 기억하는 건 한번은 沙灘구에 있는 수영장에서였고, 또 한번은 수영 연습장에서였다. 처음에는 놀랐을 뿐, 별다른 일은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이 나를 데리고 점을 보러 갔었는데, 점쟁이 말이 난 물을 가까이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에는 그런 것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한번은 그때 당시 한창 유행하던 구명튜브를 가지고 수영을 하러 갔었는데, 이 구명튜브는 당시에 자동차 타이어 이후로 가장 유행하는 물건이었다. 아마도 당시에는 다들 엉덩이들이 작았었나보다. 하하. 수영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괜찮았다. 난 기억을 못하지만, 가족들 말로는 내가 4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6~7살 때 가장 많은 일들이 발생했는데, 다 의외의 사건들이었다. 난 구명튜브에 앉아서, 그걸 작은 배라고 부르면서 놀면서, 구명튜브 위에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파도가 밀려와서, 그 구명튜브가 뒤집어졌고, 난 거기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내 엉덩이는 태양을 향해 있고, 사실 그때엔 "1미터깊이의 물에 익사한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정말로 1미터깊이의 물이었다. 물속에서 발버둥치면서, 난 六姐가 자기의 꼬마도련님이 위험에 빠졌다는 것도 모른채로, 물가에서 바다풍경을 바라고 있는걸 봤다. 난 그때 정말 많은 물을 먹었는데,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치고서야, 겨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또, 한번은 형들하고 같이 수영하러 갔을 때였다. 내가 8살이었을 때, 형은 18살이라고 이미 얘기했었는데, 당시에 난 6살이었고, 형은 16살이었다. 그때, 형(장발복)은 정말 건장했는데, 해군으로 근무를 해서, 몸도 아주 좋았다. 물론, 지금과는 다르다. 지금은 이미 곰처럼 변해버려서, 허리둘레가 굉장하지만, 그때 그는 아주 건장해서 많은 여자친구가 많이 있었다.

난 또 지난번처럼 구명튜브를 가지고 수영하러 갔었는데, 그날 안전요원이 우리들에게 바다로 나가지 말고, 연습장에서 수영하라고 했다. 사실 그 연습장이라고 하는 것은 바닷가에 몇 개의 나무 울타리로 주변을 막아놓고, 안전요원이 지키고 있는 것 뿐이었다.

바다에는 태풍때문인지 여러 가지 해산물들이 물위에 떠있었다. 내가 수영을 하고 있을 때 , 물에 이상한 게 떠있는걸 발견하고는 그걸 피하려고 그 나무 울타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옆에 사람이 있어서 그걸 치워주었다. 이게 두 번째로 놀랬던 일이었다.

세 번째는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큰 누나 장록평과 누나 남자친구와 같이 우리 형제들이 다 같이 야영을 갔을 때였다. 아... 우리들은 수영을 하러 갔는데, 방금 얘기했던 지금과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내 형은 수영을 아주 잘 했다. 하지만, 그 위의 형은 수영을 못했다. 지금까지도 그는 수영을 못한다. 그는 17살이었던 그때도 튜브를 사용해야 수영을 할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 나와 누나는 넓은 매트형 튜브 위에 누워있었고, 난 튜브도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수영을 못하는 형이 우리가 있던 넓은 매트형 튜브위로 뛰어들었다. 정말 이 형은 아무도 못 말린다. 정말 우리한테로 오는 게 가능했다고 생각했는지? 우리가 있던 넓은 매트형 튜브를 빼앗고, 내가 가지고 있던 튜브까지도 빼앗아서 가버리곤, 내가 거기에서 허우적 대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다행히도 옆에 있던 내 미래의 제부와 그의 사촌이 날 구해줬다. 이때 난 형이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일곱째 형(장발영)과 여덟째 형(장발복)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결국에 많은 일들을 통해 난 이 형(장발영)이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었는가는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그때가 첫번째 사건이었고, 또 한번은 우리가 이전에 살던 집은 방을 줄여야 해서 우리는 지하에서 지내야만 했다. 3명의 형제가 한방에서 지낼 때는, 3층짜리 침대를 썼는데, 난 1층에서 잤다. 하지만, 평소에는 노느라고 1~3층 상관없이 왔다 갔다 했다. 이 형은 자기랑 파도놀이를 하고 놀자면서, 나한테 3층으로 올라가라고 했고, 자기는 2층에서 "파도다~파도다" 하고 외치면서, 매트리스를 발로 찼다. 결과적으로 너무 세게 차서 나까지 차버린 격이 됐다. 난 3층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때, 난 이 형이 날 학대한다고 생각해서 형을 무서워했었다. 물론 그때는 학대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도 않았고, 학대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무시무시한 뜻을 담은 것도 아니었다. 내 다른 형(장발복)은 나를 위해서 그 형과 싸워주었다.

그 형은 정말로 나한테 아주 잘 대해줬는데, 어렸을 때 난 아주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집 안에 탁구대가 있었는데, 형들이 탁구를 칠 때 난 그 옆에서 탁구공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아~ 왜 공을 동그랗게 만드는 거지?와 같은 고민 말이다. 여러분들도 나처럼 어렸을 때 무엇이든지 입에다 넣는 버릇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난 탁구공을 입안에 넣었는데, 뱉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형 앞에 가서 신음소리만 내면서 입을 가리켰고,형이 직접 손으로 공을 꺼내주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형은 예전부터 날 아주 아껴주었다.

학창시절(초등학교)



나의 가장 좋은 "친구들"



어렸을 때 여러분들한테도 손을 같이 잡고 이야기를 나누던 "동창생"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에게는 몇 명의 "친구"들이 있었다. 하나는 "劉"씨 성을 가진 아이였고, 하나는 "關"씨 성을 가진 아이였다. 난 "張"씨였고 말이다. 뭔가 특별하지 않은가? 마치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가 생각나지 않은가? 이 두 명의 친구 외에도 "許"씨 성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네 명은 제일 친했다. 이들 중, "劉"와 "關"은 연락이 끊겼지만, "許"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다. "許"는 조주지방 사람인데, 우리 두 사람은 초등학교1학년 때 알게되서, 중학교 때까지 친하게 지냈고, 그 후, 그는 캐나다로 유학가고, 난 영국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커서까지도 연락을 하고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어렸을 때, 이 친구는 새끼돼지처럼 뚱뚱해서, 아주 귀여웠다. 어떤 때는 난 그를 아주 부러워하는 한편, 그를 시기했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님은 그에게 아주 잘 대해주셨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택시 운전기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싱가폴 화교로 일을 할 필요가 없는 아주 행복한 여자였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법률고문이자 선박회사를 하고 있는 돈 있고 지식 있는 사람으로, 중국본토와의 당시 관계 때문에, 선박회사를 그만두고 홍콩에 왔다. 난 당시에 그런 난민들의 심정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집은 행복한 가정이었다. 그 집 식구들은 다같이 모여 살았다. 그의 사촌도 우리와 같이 공부했는데, 그의 집은 다들 체격이 좋아서 그 사촌도 역시 통통했었다.

聖路琦초등학교(St. Luke Primary School)



어렸을 때, 난 聖路琦초등학교를 다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큰 누나와 그녀의 전 남편이 聖路琦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녀는 고학년을 가르쳤다.

나는 유아원의 제일 낮은 반에서 갑자기 1학년으로 진급하면서 聖路琦초등학교에서 공부했다. 난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유아원의 가장 낮은 반에서 공부하던 아이가 갑자기 1학년과 보조를 맞추려니, 난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유아원의 고급반에서 보충수업을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1학년을 2년 동안이나 다녔다. 그 다음부터는 차례대로 6학년까지 올라갔다.

이 기간동안 그다지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누나에 관한 일이다. 나의 다섯째 누나 말이다. 누나는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줬는데, 난 그 때 막 어떤 것이 글자인지를 깨우치고 있는 중이어서, 그건 정말 싫은 일이었다. 난 매일같이 많은 공부를 해야 했는데, 어느 날 저녁에 누나는 나에게 "공자"와 같은 글을 써보라고 했고, 내 영어글씨가 너무 보기 안 좋다고 하면서, 나보고 만년필로 글씨를 쓰라고 하고, 또 잉크를 넣으라고 했다. 지금은 그때 썼던 그런 만년필은 이미 없어지고, 다 볼펜이지만 말이다. 여러분들도 문구점에 가서 그 긴 만년필을 한번 봐라. 거기에 잉크를 넣고 글씨를 쓰고 다시 잉크를 넣고 하는 일은 정말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는지, 나의 영자체와 한자체는 똑같이 너무 보기 안 좋다. 하하. 공부방면에서는 이러한 일들만 기억난다. 그리고, 큰 누나가 나한테 정말 엄했다는 대했다는것도 기억한다.

큰 누나 장록평은 아주 엄했다.



내 기억으로 내 그 덩치 큰 형은 큰 누나와 싸운 적이 있었는데, 나 때문에 그런 거였다.

어렸을 때 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아서, 항상 시험에서 10등 안 쪽이었다. 하지만, 누나는 영원히 만족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집안환경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사람은 자립해야 하고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녀의 이런 행동 역시 날 아끼기 때문에 한 것이었다. 그 당시 그녀는 내가 공부하는 것을 지독하게도 감독했는데, 난 처음에 누나의 그런 행동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후에 한번은 선생님한테 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건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지만, 누나는 집에 와서 나한테 욕을 하면서 화를 냈고, 옷걸이로 나를 때렸다. 난 그 옷걸이가 부러질 때까지 맞았는데, 그 덩치 큰 형이 누나한테 "그렇게 때리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라고 말했고, 누나는 "내가 가르치는 거니깐, 넌 상관하지마."라고 했다. 그러자, 형은 "그럼, 내가 누나한테 똑같이 해볼까?"라고 했다. 그렇다. 그 일은 누나가 옷걸이가 부러질 때까지 나를 때리고도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서 형이 중학교에서 가져온 벨트로 나를 때려서 벌어진 일이었다. 형은 아주 화를 내면서, "누나가 이렇게 하는 게 얼마나 아픈지 모르면 기다려봐, 내가 한번 해보지."라고 하고, 벨트를 가지고 누나 집에 가서 두 사람은 결국 싸우고 말았다. 누나는 싸움을 진짜 대단하게 했는데, 정말 당시에 누나는 남자한테도 뒤지지 않았는데, 콜라 병을 들더니 형 머리에다 부어버려서, 형의 얼굴이 전부 젖게 만들었다. 이게 바로 우리집에서 일어난 작은 일들이다!

초등학교 때 있었던 재미있던 일



나의 학창시절은 몇 가지 단계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공부를 아주 잘했을 때, 두 번째는 운동을 아주 잘했을 때, 나머지는 여자를 아주 잘 쫓아다녔을 때로 말이다.

당시는 내가 공부를 아주 잘했을 때였는데, 그렇다면, 운동은? 얘기하자면, 난 어렸을 때 아주 작았다. 지금도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말이다. 당시에는 규모가 큰 학교에만 운동장이 있었고, 일반 학교에는 운동장이 없었는데, 우리 학교에도 운동장이 없었다. 그래서, 체육시간마다 학교 옆에 있는 공원에 가야 했는데, 가는데 15분, 오는데 15분이 걸려서 체육시간 45분 중 15분만 수업을 했다. 사실, 난 체육시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은 체육시간에 입는 체육복이었다. 그 반바지를 입는 건 너무 편안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반바지를 입었었다. 그 모습을 본 식구들을 날 "칠칠치 못하다"라고 했다, 왜냐구? 당시에 입었던 체육복은 흰색의 긴 양말에 흰 반바지에, 흰색의 셔츠에, 학교의 마크가 달아져 있었는데, 수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올 때면, 아마도 학교의 걸상이 아주 지저분해서인지 매일같이 옷의 뒷부분이 얼룩이 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장 싫었던 건 그 긴 양말을 신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양말은 질이 안 좋았는지, 처음에는 아주 탄력이 좋아서 흘러내리지 않았지만, 한 2~3번 빨고 나면, 계속 밑으로 흘러내렸다. 그래서, 두꺼운 고무줄로 양말윗부분을 꿰매놓아야만 했다. 六姐는 고무줄을 사와 내 다리에 맞게 양말을 꿰매주었다. 하지만, 고무줄을 너무 세게 묶어놓아서 간지럽고 아팠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것에 대한 어떤 원망이나 항의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나의 성적은 아주 대단했는데, 2년간 전교 2~3등을 다투었다. 하지만, 누나는 영원히 나에게 아주 집착해서, 나의 이런 성적에도 지나칠 정도로 아주 불안해 했지만, 내가 고학년이 되자 그 집착은 조금 줄어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수학교과과정이 변했는데, 난 그걸 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과정을 배울 때 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는 매괴崗중고등학교(Rosary Hill Secondary School)로 갔다. 그곳에서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六姐가 다시는 날 데리고 등하교를 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 이 라디오자서전에서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 가족
(어린시절, 六姐, 외할머니의 죽음, 아버지, 수영에 관한 재미있었던 일, 일곱째 형과 여덟째 형)

2부 - 학창시절:초등학교
(나의 가장 좋은 "친구들", 聖路琦초등학교(St. Luke Primary School), 큰 누나 장록평은 아주 엄했다, 초등학교때 있었던 재미있던 일)


3부 - 학창시절:중고등학교
(매괴崗중고등학교(Rosary Hill Secondary School), 적응기,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영화)

4부 - 연애사
(초등학교시절 연애사,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1),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2))

5부 - 학창시절:영국유학시절
(영국으로의 유학, 학교에서의 첫 느낌, 아침식사, 점심식사와 체육수업, 저녁식사,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다, 지리과선생님, Leeds대학교와 홍콩으로의 귀국)

6부 - 연예계진출
(아주가창대회참가, RTV와 Polygram과의 계약, 처음으로 무대에서 실망한 일과 첫번째 영화, TV드라마에 출연, 새로운 도전, 싱가포르와 태국에서의 콘서트, 《영몽가락》를 찍을 때 있었던 잊을수 없는 경험, 난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

7부 - 진백강
(1978년에 진백강을 알게 되었다, 진백강과의 우정, 진백강과의 사업관계, 진백강은 나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를 원치 않았다.)

8부 - 사업상의 전환점
(처음 진숙분을 만나다, MONICA와 화성음반사, 진숙분과 여소전)

9부 -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여성
(첫번째 여성은 "六姐"이다, "六姐"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어머니와의 관계, 대모님, 매염방을 위해 해명하다, 매염방은 의리가 있다.)

10부 - 앞으로의 계획
(콘서트에 대한 약속,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 나의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