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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03 00:02
1985년에 방송된 라디오 자서전 내용(4)
 글쓴이 : 1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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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상업라디오 방송 인터뷰 - 1985년 哥哥가 자신에 관한 것들을 직접 얘기한 프로그램입니다.

3부 - 학창시절(중고등학교)



매괴崗중고등학교(Rosary Hill Secondary School)



매괴崗중고등학교에서는 새로운 생활이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학교통학버스를 타고 다니는 일 하며, 모든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 중 수업 중에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난 지금까지도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 같은 종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 때에는 뭔가 기억에 남을만한 대단한 사건은 없었다. 단지 그때부터 노래하는 것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는것 뿐…

비록 당시에 난 기독교나 천주교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 없었고, 수학성적이 안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영어성적이 아주 좋아서 몇몇 선생님들은 나를 총애하셨었다.

영어과목에 있어서만큼은, 난 1~2등을 다투어서, 종례를 할 때면 선생님은 으레 나를 지목해서 영어성경을 읊게 하셨다. 지금도 이런 규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종례시간에 성경을 읽고 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난 대표로 앞에 나갔는데, 처음에는 자신이 아닌 나를 지목했다는 사실에 질투하는 애들도 있었다.

중학교로 올라가고 나서 난 공부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누나가 날 더 이상 공부하라고 심하게 닥달하지 않았다. 누나는 나에게 과외선생님을 붙여줬는데, 그 과외선생님은 그다지 열심히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에 영어과목을 제외하고는 난 어떠한 과목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단지, 통과만 하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운동에 대한 흥미는 날이 갈수록 강렬해졌다.

적응기



이 때에는 많은 것들이 가질 수 있었다. 퓨마의 운동화라던지, 아디다스의 운동화를 신고 농구 같은걸 하곤 했다. 난 이 학교가 이전에 다니던 학교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학교내에서 중국어보다는 영어를 사용하는 기회가 더 많았다. 그래서, 난 사람들한테 무시를 당하지 않으려고, 하루종일 영어를 사용했다. 교장선생님도 조회를 하실 때 영어를 사용하셨다. 처음에는 정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후에 결국은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이 학교의 많은 학생들은 姚蘇容을 좋아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남학교였지만, 몇몇 애들은 그녀를 흉내내곤 했는데, 그 애들이 흉내내는걸 보고 있자면 정말 재미있었다. 그때 그 흉내를 냈던 친구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들은 그 때 자주 배드민턴을 쳤었는데, 반 대항 경기도 하고 그랬다. 그 당시 내 배드민턴실력은 아주 좋았는데, 그 중 몇 번은 교장선생님과 시합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주 두려웠었다. 하지만, 일종의 허영심 때문이랄까, 교장선생님과 시합을 한다는 사실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교장선생님과 시합을 하기도 했다.

그때만해도 난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을거라는 걸 몰랐다. 단지 가서 보기만 할뿐, 공연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노래 부르는걸 시작했고, 누가 나의 음악적 재능을 계발했을까? 그 사람이 바로 姚蘇容이다.

그 당시의 음악은 지금처럼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2가지 종류만 있었고, 광동어노래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국어곡과 약간의 팝송만이 있었다. 팝송이라도 해도 무슨 찬송가 같은 종류가 전부였다. 하지만, 우리는 팝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한동안 홍콩에서 姚蘇容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었다. 그녀가 홍콩에서 콘서트를 열면 모든 좌석이 전부 다 매진되었는데, 나도 무슨 홍콩가극원인가 하는 곳에서 그녀의 콘서트를 봤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흉내냈는데, 그걸 보고 있자면 아주 즐거워서, 그녀의 음반을 사서 듣기도 했다. 사실 이 음반들은 큰 형이 산 것으로, 난 형이 듣던것들을 가져다가 들었는데, 어느새인가에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여러분들이 내가 그녀의 어떤 곡들을 부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난 다 부를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난 그녀의 "今天不回家"와 같은 노래들을 부를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영화



좀 커서는, 팝송을 듣고, 외국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영화는 중학교때 봤던 2편의 영화이다. 한 편은《殉情記》이라는 영화인데, 남녀주인공이 정말 멋있었다.

또 다른 한 편은 《玉女含苞》으로, 영화의 오프닝 곡이 아주 좋아서, 그 이후로 많은 팝송을 듣기 시작했다. 난 당시에 그 영화사운드트랙에 나왔던 모든 대사를 외웠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왜 그걸 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기본적으로 그 대사들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걸 다 외우고야 말았다. 그걸 안 하면, 안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서는 바로 여자친구를 찾으러 다니는 시기로 들어선다.

* 이 라디오자서전에서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 가족
(어린시절, 六姐, 외할머니의 죽음, 아버지, 수영에 관한 재미있었던 일, 일곱째 형과 여덟째 형)

2부 - 학창시절:초등학교
(나의 가장 좋은 "친구들", 聖路琦초등학교(St. Luke Primary School), 큰 누나 장록평은 아주 엄했다, 초등학교때 있었던 재미있던 일)

3부 - 학창시절:중고등학교
(매괴崗중고등학교(Rosary Hill Secondary School), 적응기,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영화)


4부 - 연애사
(초등학교시절 연애사,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1),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2))

5부 - 학창시절:영국유학시절
(영국으로의 유학, 학교에서의 첫 느낌, 아침식사, 점심식사와 체육수업, 저녁식사,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다, 지리과선생님, Leeds대학교와 홍콩으로의 귀국)

6부 - 연예계진출
(아주가창대회참가, RTV와 Polygram과의 계약, 처음으로 무대에서 실망한 일과 첫번째 영화, TV드라마에 출연, 새로운 도전, 싱가포르와 태국에서의 콘서트, 《영몽가락》를 찍을 때 있었던 잊을수 없는 경험, 난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

7부 - 진백강
(1978년에 진백강을 알게 되었다, 진백강과의 우정, 진백강과의 사업관계, 진백강은 나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를 원치 않았다.)

8부 - 사업상의 전환점
(처음 진숙분을 만나다, MONICA와 화성음반사, 진숙분과 여소전)

9부 -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여성
(첫번째 여성은 "六姐"이다, "六姐"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어머니와의 관계, 대모님, 매염방을 위해 해명하다, 매염방은 의리가 있다.)

10부 - 앞으로의 계획
(콘서트에 대한 약속,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 나의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