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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03 22:40
1985년에 방송된 라디오 자서전 내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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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상업라디오 방송 인터뷰 - 1985년 哥哥가 자신에 관한 것들을 직접 얘기한 프로그램입니다.

4부 - 연애사



초등학교시절 연애사



장국영의 연애사가 시작됐다. 와~ 이제야 본격적인 주제로 들어가는군. 이제부터 내 연애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초등학교때니 성숙해봤자 얼마나 성숙했겠는가? 난 겨우 7살이었다.

내 기억으로 그 여자애 성이 曠씨였는데, 이름은 滿硏이었다. 하하, 이름까지 다 말하고야 말았다, 난 말을 안 하면 안 했지,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면 다 말하고야 만다. 어렸을 때 그 여자애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말 예뻤다. 그 애는 아주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우리들 劉, 關, 張 이야기는 했었지? 그리고, 또 許(허)씨 성을 가진 애까지 포함해서 넷이서 같이 놀았었다.

광만연의 어머니와 우리어머니는 서로 아는 사이였다. 학교에 다닐 때는 오로지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난 그 애랑 손을 잡았었다. 그 당시 그 애는 나보다 키가 작았지만, 아주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교실에서 나보다 2줄 앞쪽에 앉아있었다. 난 하루종일 그 애에게 쪽지를 써서 던졌었는데, 이게 나의 초등학교시절 사랑이었다.

하지만, 이 내 풋사랑은 좋은 결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 기억으로 그 애는 4학년까지 마치고 가족모두 캐나다로 이민을 갔기 때문이다.

5,6학년 때 난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이런 감정에 얽힌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실 그때는 뭐가 감정에 얽힌 일인지도 몰랐다.

중학교 1학년 때, 난 정말 그 애가 보고 싶었다. 그 뒤에 그녀가 홍콩에 왔는데, 그때 정말 모든걸 다 망쳐버리고야 말았다. 어째서 그랬냐고? 중학교 1학년 때, 난 머리를 상고머리처럼 아주 짧게 잘랐었고, 수영을 좋아해서 피부가 석탄처럼 새까맣게 탔었다.

그녀가 홍콩으로 돌아오자, 난 그녀와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날 처음보고 한 말은 "와, 왜 이렇게 많이 변했니?"였다. 여자애들은 13~14살 때쯤이면 성숙해지기 시작해서, 난 그녀를 보고 와, 왜 누나처럼 느껴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역시 나한테 실망한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그녀보다 키가 작고, 피부가 검게 탄데다가 삐쩍 마르기까지 했었다. 처음으로 이성으로서의 굴욕감같은걸 느꼈다고나 할까? 그녀와 같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데, 그녀는 여자의 특유의 자존심때문인지, 이곳에 가기도 싫다, 저곳에 가기도 싫다고 하면서, 불만스러워했다.

그때 당시에 난 여행을 갈려고 해도 잠도 못잘 정도였는데, 하물며 여자애랑 데이트한다고 생각하니, 전날밤에는 정말 한숨도 못 잤었다. 또, 난 특별히 이날을 위해 지금과 같은 미용실이 아닌 이발소에 가서 더 이상 짧아질 수 없는 헤어스타일로 잘랐는데, 상고머리보다도 더 짧았지만, 난 아주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 그 누가 생각했겠는가, 정말 창피했다.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1)



중학교 때 사귀었던 여자친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갈 때 1명이 있었고, 중학교 때 1명이 있었다. 그 애의 이름은 Nancy였는데, 내가 아는 친척분과 이름이 같았다. 이 여자애는 내가 중학교1학년 때 알게 되었다.

중1때부터 여자애들하고 어울리기 시작했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여자친구없이 혼자 돌아다니는건 매우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다니던 그 학교는 "비행소년학교"라고 불렸는데, 그곳에 다니던 학생들이 전부 비행소년이 아니라 내가 바로 그랬다.

내 친구들이 어떻게 여자애들을 만났는지 아는가? 우리 학교는 남자학교와 여자학교가 분리되어 있었다. 또, 우리가 쉬는 시간에 여자애들 반은 수업을 시작했고, 우리가 쉴 때는 그 애들이 수업을 했기 때문에, 평소에는 여자애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다.

여자애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는 운동회날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운동회만큼은 꼭 참가했다. 왜냐구? 참가를 해야만, 운동장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응원석에 조용히 앉아있어야만 했었다. 운동회에는 여자선수들도 있었고, 난 그런 활발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여자애들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그런 애들하고는 말이 잘 통했기 때문이다. 그냥 앉아만 있고 경기에 참석하지 않는 여자애들은 대부분 공부만 하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들은 정말 활발하게 놀 수 있는 여자애들을 만나고 싶어했고, 결국 정말로 한 여자애를 알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그 애가 바로 Nancy였는데, 그 애를 만나서 그 애한테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애는 나에게 Donny Osmond의 "Sweet and innocent"라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먼저 그 노래를 들어보고 자신을 쫓아다닐려면 그러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노래의 뜻은 넌 너무 순진하고 순결해서,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였다.

괜찮다. 한차례 상처를 입고나선 아무 일도 없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났다. 나에게 여자친구가 많았던건 아니지만, 중학교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갈 때 또 한명의 여자애를 알게 되었다.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2)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서, 또다시 한 여자애를 알게 되었다. 성이 王씨였는데, 이 여자애는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다. 첫사랑을 얘기하라면, 난 이게 바로 첫사랑이라고 할 것이다. 이 애는 긴머리를 가진 애였는데, 배드민턴을 치다가 알게 되었다.

내가 만난 여자친구들은 모두 운동장에서 알게 되었다. 그녀에 대해 얘기하자면, 지금은 달리기선수로 아주 유명한 謝華秀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謝華秀는 지금 南華會에서 단거리달리기 코치로 일하고 있다. 당시 그녀는 謝華秀(사화수)처럼 긴 머리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는데, 둘 다 학교에서 인기인이었다. 달리기경주에서 그녀는 사화수보다 빠르진 않았는데, 謝華秀는 100미터를 11초정도에 뛰는 여학생으로는 대단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여자친구의 배드민턴 실력은 대단했다. 그녀와 사귄 후로, 우리는 매일같이 배드민턴을 쳤다.

중학교 2학년 때, 난 어찌 된 일인지 머리를 짧게 자르길 원치 않았는데, 아마도 당시에 긴머리가 유행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이 머리 때문에 수업을 빠지기까지 했었는데, 사실 수업을 빼먹었다기보다는 주임선생님한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수업종이 울리기 바로 전에 교실로 들어갔다.

학교에서 엄격하게 두발검사를 했을 때는, 난 뒷문으로 몰래 다니기까지 하면서, 머리를 안 자르려고 버텼다. 그래서, 그때 난 머리를 길렀었는데, 그때는 긴머리가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 내 성적은 엉망이었는데, 정말로 영어성적만 봐 줄만 했다. 난 영원히 수학과의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는데, 그건 많은 과외선생님을 붙혀줘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 수학점수 때문에 학교에서는 내 부모님과 상담하길 원했었다.

이 부모님 면담은 체육과목과도 관련이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 난 농구와 같은 구기종목을 좋아했었는데, 한 체육선생님이 나에게 아주 잘 대해주셨다. 그분의 성함은 "古譽榮"이셨는데, 우리들은 그 선생님과 대화가 아주 잘 통해서 잘 어울렸는데, 우리는 수업시간에 항상 공으로 선생님의 배를 맞추곤 했었는데, 선생님의 몸은 우리 같은 어린애들의 민첩함을 따라오지 못했다.

하루는 방과후에 통학버스에 타는 도중에, 난 선생님이 버스에 타시는걸 보고는 뒤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 "古惑榮"이라고 불렀다. 그 누가 선생님의 이름을 이렇게 이상하게 바꿔서 부를 수 있겠는가? 당시에 선생님은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다음날 3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주임선생님이 "장국영은 책가방 챙겨서 교무실로 오거라."라고 말씀하셨다. 난 뭔가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체육선생님한테 무례하게 대했다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시면서, 2주간 집에서 근신하라고 하셨다. 난 2주간 학교를 나오지 못한다는 말을 듣자 겁이 났다.

결국에 아버지가 주임선생님과 만났고, 그들은 무슨 비즈니스상담을 나누는거마냥 대화를 해나갔고, 나중에는 명함까지 주고 받았다. 이건 진짜다. 웃지마라. 정말로 이랬다. 또, 아버지는 "아들을 잘 부탁한다."라고까지 말씀하셨다. 정말 웃겼다. 무슨 장사를 하는것도 아니고, 정학을 당한건데 말이다.

이 일이 있고 집에서 학교에도 못 가고 쉬는데, 정말 지루했다. 당분간 학교에 못 간다고 생각하니, 친구들도 너무 그리웠고, 다음부터 정학을 맞는 일 같은 건 다시는 없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학을 당한 후에, 난 내가 미신을 믿는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매년 3월에서 5월사이에 내 운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해 3월에 2주간 정학을 당하고, 그 다음해 3, 4월에도…

그 일은 다시 생각해도 정말 너무 웃긴 일이었다. 그 때, 큰누나와 매형과 같이 영화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여러분들도 "유도소금강"이라는 영화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에 홍콩에서는 유도가 아주 유행했는데, 유도에 관한 영화가 많이 있었다. 어쨌든, "유도일직선"이라는 영화도 있었다. 난 유도복을 맞춰서 유도를 배우러 가 본적이 없었지만, 유도복은 좋아했다.

난 지금은 이미 문을 닫은 코즈웨이베이의 "吉利市"라는 곳의 경화극장에서 그 "유도소금강"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 "士多"상점에 가서 여러가지 과일들을 사서 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난 그 과일들에 물기가 있을거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그때는 갈색의 기름종이로 된 포장지로 물건을 담아줬었는데, 그건 그다지 두껍지 않고 얇은 종류의 종이였다. 길을 가던중에 젖은 과일들로 인해 그 포장지가 찢어져서, 과일들이 내 발등 위로 떨어졌는데, 정말 아팠었다.

그땐 빨리 과일들을 주워서 가던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어서, 바로 큰 누나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누나는 날 보더니 비명을 질렀는데, 알고보니 내 발은 이미 피로 흥건하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도 3, 4월달이었다. 그땐 정학을 받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학교를 쉬어야만 했었다. 난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고, 그 후에 발에 깁스를 하고 슬리퍼를 신고 학교로 돌아갔다. 2주까지는 아니었지만, 1주일 정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난 이렇게 멍청하게 홍콩에서의 중학교시절을 보냈다.

홍콩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여러분들에게 이미 말했던 것처럼 난 공부를 그다지 잘 하지 못했다. 영어말고도 잘하는 과목이 아무것도 없었다. 중학교1년을 마치고, 난 유급을 당했고, 2학년에 올라가서도 성적은 좋지 않아서 또 유급당할뻔 했지만, 유급은 당하지 않았다. 만약에 또 유급을 당했다면, 그 수학성적 때문이었을것이다.

다행히도 유급을 당하진 않았지만, 아버지는 그 일로 인해 화가 단단히 나셨었다. 내가 아버지 가게에 갔을 때,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리시며, "네가 홍콩에서 이렇게 공부를 못하니,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해보는 건 어떻겠니?"라고 물으셨다. 당시에 난 창피함을 느꼈지만, "그거 좋죠."라고 대답했다. 그곳에 가서 실패해도 그걸 알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도피감같은게 있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날 유학보내려고 하신건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정같은게 있어서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성인이 된 후에 생각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아마도 내가 계속해서 유급을 당할까봐 창피해서, 도피유학을 시킨거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건, 그때 2학년에 같이 다니던 한 친구도 영국유학을 신청해놓은 상태였다. 난 한번도 미국이나, 캐나다로 유학가는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과 캐나다의 유학수속은 영국보다 훨씬 복잡했는데, 영국은 돈만 있으면 유학을 갈 수 있었다.

그 때 그 유학시험이라는 것도 정말 웃겼다. 내가 신청서를 보내면, 그쪽 학교에서 나에게 한가지 에세이 주제를 보내주고, 난 그걸 써서 다시 학교로 보내면 되는 거였다. 그때 난 당연히 그 에세이를 직접 작성하지 않았고, 누나가 대신해서 작성해주었다. 누나의 수준은 당연히 나보다 높았고, 당연히 시험에 통과했다.

모든 유학신청절차는 채 2달도 걸리지 않았다. 사실 시험합격여부가 발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학교측에서 등록금을 보내는 통지서가 배달됐었다. 다음 노래를 듣고 내 유학시절에 대해 이야기해주겠다.

* 이 라디오자서전에서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 가족
(어린시절, 六姐, 외할머니의 죽음, 아버지, 수영에 관한 재미있었던 일, 일곱째 형과 여덟째 형)

2부 - 학창시절:초등학교
(나의 가장 좋은 "친구들", 聖路琦초등학교(St. Luke Primary School), 큰 누나 장록평은 아주 엄했다, 초등학교때 있었던 재미있던 일)

3부 - 학창시절:중고등학교
(매괴崗중고등학교(Rosary Hill Secondary School), 적응기,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영화)

4부 - 연애사
(초등학교시절 연애사,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1),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2))


5부 - 학창시절:영국유학시절
(영국으로의 유학, 학교에서의 첫 느낌, 아침식사, 점심식사와 체육수업, 저녁식사,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다, 지리과선생님, Leeds대학교와 홍콩으로의 귀국)

6부 - 연예계진출
(아주가창대회참가, RTV와 Polygram과의 계약, 처음으로 무대에서 실망한 일과 첫번째 영화, TV드라마에 출연, 새로운 도전, 싱가포르와 태국에서의 콘서트, 《영몽가락》를 찍을 때 있었던 잊을수 없는 경험, 난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

7부 - 진백강
(1978년에 진백강을 알게 되었다, 진백강과의 우정, 진백강과의 사업관계, 진백강은 나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를 원치 않았다.)

8부 - 사업상의 전환점
(처음 진숙분을 만나다, MONICA와 화성음반사, 진숙분과 여소전)

9부 -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여성
(첫번째 여성은 "六姐"이다, "六姐"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어머니와의 관계, 대모님, 매염방을 위해 해명하다, 매염방은 의리가 있다.)

10부 - 앞으로의 계획
(콘서트에 대한 약속,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 나의 소원)

* 번역注 : 번역 중, 인명이나 장소명 같은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읽어주세요. 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