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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16 00:20
1985년에 방송된 라디오 자서전 내용(7)
 글쓴이 : 1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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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상업라디오 방송 인터뷰 - 1985년 哥哥가 자신에 관한 것들을 직접 얘기한 프로그램입니다.

6부 - 연예계진출



새로운 도전



이 새로운 도전은 바로 외국무대로 진출한 것이다. 이 기간동안, 돈은 많이 벌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처럼 일거리가 없는 연예인에게는 자신의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자, 어찌 되었던 간에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찍은 《浮生六劫》과 《方世玉》 같은 드라마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 등지에서 선보였는데, 그 당시에 이미 그런 드라마에 대한 인기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상태였다. 내가 말한 "인기"는 潘志文등이 출연한 《變色龍》과 같은 드라마의 인기가 이미 한차례 지나갔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다 좋게 봐줘서 모두가 그렇게 인기를 얻진 못했지만, 가능성이 있는 배우로 봐주기도 했는데, 나도 그들이 선택한 그런 배우중의 하나였다.

싱가포르와 태국에서의 콘서트



《浮生六劫》, 《顎魚淚》, 《游俠張三豊》과 같은 무협드라마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 소개되자, 나에게 싱가포르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겼다. 싱가포르에서의 공연은 별 다른 것이 없었다. 단지 공연횟수가 많아서, 출연료가 많았다.

공연은 21일간 연이어서 열렸는데, 하루에 2회씩 21일 동안 총 42회의 공연을 했다. 이 42회의 공연을 하자니, 내 목소리는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공연이 사람들에게 준 느낌은 남달랐는지, 이 공연이 끝나고, 또 다시 나에게 새로운 계약제의가 들어왔다. 출연료도 조금 올랐는데, 나에게 힘이 되었다.

싱가포르 팬들은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는데, 태국에 도착해서는 아주 큰 놀라움을 느끼게 되었다. 바로 태국에서 내가 어느새 초특급스타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유는 내가 RTV에서 있을 당시에 출연한 《浣花洗劍錄》이 태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내가 맡은 역은 태국에서 드라마가 소개된 후 3년간 큰 인기를 얻었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지만, 태국팬으로부터 온 첫 편지를 읽고 나서야, 내가 태국에서 인기가 정말 많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연이어서 태국에 4번 갔는데, 4번 모두 콘서트를 열었었다. 매번 특색 있는 모습을 선보였는데, 많은 친구들이 날 보러 와줬다. 그때 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실감했다.

태국에서 난 내 친구들을 돌봐준 아주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바로 여러분에게 친숙한 여배우 嘉玲(유가령 아님)이다. 가령은 태국에서 아들, 딸, 남편과 함께 아주 사이좋게 지내면서, 부유하고 행복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홍콩 연예인들이 태국에 가면, 매번 우리를 초대해줬다. 우리말고도 그녀의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았다. 그 때 내가 공연을 하러 갔을 때도, 우리 밴드 스탭들 모두 그녀의 집에 갔었는데, 그녀는 유명한 음식들을 준비해 우리들의 기운을 북돋워졌다. 지금까지도 가령은 나의 친한 친구이다.

"영몽可樂"를 찍을 때 있었던 잊을 수 없는 경험



이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순회공연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온 후에, 홍콩영화계가 예전보다 훨씬 활기차 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나에게도 몇 곳의 영화사에서 영화를 찍자고 제의해왔다. 비록 그다지 큰 규모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당시에 내가 찍은 영화로는 邵氏의 《영몽可樂》, 羅維사의《衝擊21》,《烈火靑春》,《鼓手》,《第一次》와 같은 작품이 있었다. 이 영화들 중에서 내 기억에 가장 남는 영화는 《영몽可樂》이다. 왜냐하면, 《영몽可樂》은 홍콩에서 처음으로 5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든 청춘영화였기 때문이다. 비록 이런 사실이 나의 사기를 고조시키는데 한 몫 하기는 했지만, 그 영화사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회사는 나에게 축하인사나 격려의 말 한마디조차도 건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몽可樂》를 촬영할 당시에, 마카오에 가서 촬영을 해야 할 씬이 있었다. 이 회사는 나에게 아주 성의없이 대했는데, 바로 나와 조명사에게 같은 방을 쓰라고 한 것이었다. 사실 이건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다. 외지에서 촬영을 할 때는, 이런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건 안다. 하지만, 그들은 제도상으로 너무 형편없었다. 적은 돈으로 모든걸 다 해결하려 했다. 그래서, 난 직접 묵을 방을 구했다. 영화에 들어갈 곡 선정에 있어서도, 내가 누구를 선정하면, 다 안 된다고 하면서 너무 비싸다고만 했다. 그러더니, 영화사 홍보부에 있는 사람이 당신을 도와서 곡을 만들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 밖에 기억에 남는 영화는 《鼓手》이다.

난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여자는 나로 하여금 하마터면 여자를 싫어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뻔한 여자였다. 이 여자는 디스코텍에서 만났는데, 81년에서 82년까지는 사업상으로 나에게 있어 가장 저조한 시기였다.

이 때, 난 매일같이 디스코텍을 드나들었는데, 그 때 난 한 혼열계 여자를 알게 되었다. 처음에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 난 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말론 브란도와 그 여자주인공이 사랑을 나누던 장면을 떠올리며, 당신에게는 단지 내 육체가 필요한 것 뿐이니, 내 이름은 묻을 필요 없어요 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몇 번 데이트를 하고 나니, 난 그녀가 당연히 내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난 그녀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어느 정도 관계가 발전하고, 모든 일들이 잘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난 그녀와 잘 해 보려고 했다.

후에 난 이 여자가 원래는 고단수의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수법은 아주 교활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괘씸하다. 그녀는 나에게 사기를 쳤을 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까지 그녀의 농간에 놀아났다. 내가 느낀 치욕감은 말도 못하게 컸다. 적어도 난 그녀에게 사랑으로 대했는데… 그녀는 나에게 감정상으로 큰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 때 난 집을 떠나 호텔에 머물러있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깡패들을 동원해 나를 해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내가 여자에게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내 주위에는 모두 남자뿐이었다. 예를 들면, 상업라디오방송국의 鍾保羅가 있는데, 그 역시 내 주위 남자중의 하나이다. 당연히 그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그는 그다지 여자친구에게 잘 대해주는 것 같지는 않다.

* 이 라디오자서전에서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 가족
(어린시절, 六姐, 외할머니의 죽음, 아버지, 수영에 관한 재미있었던 일, 일곱째 형과 여덟째 형)

2부 - 학창시절:초등학교
(나의 가장 좋은 "친구들", 聖路琦초등학교(St. Luke Primary School), 큰 누나 장록평은 아주 엄했다, 초등학교때 있었던 재미있던 일)

3부 - 학창시절:중고등학교
(매괴崗중고등학교(Rosary Hill Secondary School), 적응기,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영화)

4부 - 연애사
(초등학교시절 연애사,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1),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2))

5부 - 학창시절:영국유학시절
(영국으로의 유학, 학교에서의 첫 느낌, 아침식사, 점심식사와 체육수업, 저녁식사,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다, 지리과선생님, Leeds대학교와 홍콩으로의 귀국)

6부 - 연예계진출
(아주가창대회참가, RTV와 Polygram과의 계약, 처음으로 무대에서 실망한 일과 첫번째 영화, TV드라마에 출연, 새로운 도전, 싱가포르와 태국에서의 콘서트, 《영몽가락》를 찍을 때 있었던 잊을수 없는 경험, 난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

7부 - 진백강
(1978년에 진백강을 알게 되었다, 진백강과의 우정, 진백강과의 사업관계, 진백강은 나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를 원치 않았다.)

8부 - 사업상의 전환점
(처음 진숙분을 만나다, MONICA와 화성음반사, 진숙분과 여소전)

9부 -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여성
(첫번째 여성은 "六姐"이다, "六姐"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어머니와의 관계, 대모님, 매염방을 위해 해명하다, 매염방은 의리가 있다.)

10부 - 앞으로의 계획
(콘서트에 대한 약속,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 나의 소원)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