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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6-29 23:44
2003년 6월 24일 홍콩
 글쓴이 : lelie
조회 : 7,279  
생각을 더듬어보면, kelly와 처음 만난 건 98년 5월 꺼거의 내한. 그때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열정에 가득차 꺼거를 쫓아다녔던 3일이 지나고 남은 후유증을 kelly와 둘이서 겪어야 했다. 그 지독한 우울함을 이해할 수 있던 것은 가장 친한 친구도, 가족들도 아닌 그즈음 처음 만난 kelly뿐이었다.

2000년 8월, 꺼거의 열정콘서트를 위해 kelly와 단둘이서 비행기를 탔고, 그 숨막히게 좋았던 순간들을 함께 했다. 그때의 홍콩은 매일 비가 내리거나, 뼈속까지 끈적거리는 습기가 온몸을 감싸거나, 싸늘한 에어컨이 몸서리치게 추웠지만 그곳에는 꺼거가 살아 숨쉬고 있었고 그것만으로 좋은 kelly와 내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jennie를 처음 만났다.

이번 여행에대해 생각을 하려고하면 생각은 자꾸 지난날의 홍콩만을 더듬고, 지난날의 꺼거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다. 꺼거가 없는 홍콩은 지난 5번의 홍콩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었고, 쾌적한 호텔과 더할나위 없이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좋은 물건들을 내손에 안겨 주었지만 아무것도 기억을 해낼 수가 없다.
꺼거가 없는 홍콩은 더이상 홍콩이 아니다. 그저 흔적들을 더듬어 갈 수 있는 어떤 장소들의 집합체일 뿐이다.

홍콩을 가기로한 것이 잘하는 일인지에 대한 대답은 홍콩에 가서 얻을 꺼야. 단출한 가방하나를 끌고 집을 나서면서 계속 되뇌였다. 생각하지말자 생각하지말자.
이제 더이상 좋은 카메라도 필요가 없어. 가까이서 보고싶은 것은 더이상 없으니까.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내 손바닥 반 만한 카메라에 32메가 메모리 하나.
밤을 꼬박새고 도착한 공항에는 예전처럼 kelly가 서있다. 서로에게 인사를 우리 잘 다녀오자. 꿋꿋하게 밝게 아무렇지도 않게.

2003.06.24 홍콩도착.

만다린오리엔탈호텔.
우린 미친게 분명하거나. 지독히도 잔인하다. 아무렇지도 않을거라고 생각했다니. 뭘 확인하고 싶었던걸까. 나도 모르게 24층을 세보고 있는 나자신에게 실망해서 견딜수가 없다. 도대체 뭘 세고 있는거야.

만다린의 모든 것은 오래된 세월만큼 적당히 낡았지만 품위있고 고상해서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다. 왜 꺼거가 이곳을 자주 찾았는지 보면볼수록 알것만 같아. 그냥 애프터눈 티만를 마셨을 때도 좋았지만...
4월 1일만이 만다린 오리엔탈의 전부는 아니야. 이곳을 친구집처럼 드나들었던 꺼거의 취향을 느낄 수 있는것이 우리가 이곳에 있는 가장 큰 이유야...
자신한테라도 변명을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지낼 수 없을것 같다. 특히 저 테라스는 커텐으로 가려놔야지.

우리의 객실은 21층.

늘 우리의 호텔은 침사쵸이에 있었고, 여행의 대부분은 그곳이 중심이었는데 센트럴에서 시작한 홍콩은 생각보다 낯설다.

퓨전.


꺼거가 마지막으로 식사를 했다는 곳. 우리는 이곳에서 홍콩에서의 첫 식사.
달랑 주소를 들고 코즈웨이베이를 헤맨다. 타임스퀘어를 지나 이제는 꺼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옛 위니종정을 지나... 그런데 꺼거가 좋아했다던 퀸즈카페 본점은 어디 있는것일까. 위니종정이 있을때는 궁금하지도 않았던 원래의 퀸즈카페가 궁금하다.
아비가 앉았던 그자리... 그리고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난 퀸즈카페. 일부러 찾지도 않았는데 생각만으로 그냥 눈앞에 나타나버린 퀸즈까페를 지나 퓨전을 찾았다.
꺼거가 즐겨 앉았던 자리에 앉아 꺼거의 시선으로 거리를 보고,


꺼거가 즐겨먹었다던 음식을 먹는다. 꺼거의 취향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소박해. 그리고 지독한 미식가인 아저씨.

오늘은 그냥 호텔로 돌아가야지. 이런 밤에 지친모습으로 꺼거의 집앞을 가기는 싫어. 그리고 이곳에서 꺼거의 집은 너무 멀고 너무 지치고 너무 멀고 너무 피곤해....

꺼거의 집 앞
몽콕에서 택시를 타고 꺼거의 동네에서 내려 일부러 꺼거의 집 뒤쪽으로. 예전에는 그저 나무만 울창했던 그곳에 누군가의 침입시도로 인해 철조망이 쳐져 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면 꺼거의 집.
대문부터 3층의 구석구석까지 환하게 켜진 불빛. 마치 시위라도 하듯이 환하게 켜져있는 그곳을 보는 순간. 저렇게 모든불을 켜놓은 사람도 잔인하고, 이밤중에 이곳을 찾은 나도 정말 잔인하다.


2003.6.25
만다린에서의 아침.

짐과 풀은 24층에 있고 그층에는 또 마카오 스위트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찍 호텔을 나선다. 만다린의 뒤쪽에는 꺼거가 개점행사에 참석했던 던힐 매장이 있고,


그곳을 지나. 꺼거가 찾았다던 얌차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