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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01 00:36
2003년 6월 25일 홍콩
 글쓴이 : lelie
조회 : 7,297  
얌차집을 찾아 해피밸리로 가는 트램을 탄다.

해피밸리에 있는 얌차집 중 어느곳을 갈것인지를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했다. 한곳은 작년에도 갔던 곳이고 한곳은 그냥 달랑 주소뿐. 일단 해피밸리에 내려 또 무작정 골목골목을 다녀본다.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작은 골목의 주소를 가지고 있는 우리는 현지인들에게 무척이나 어려운 관광객들이다.
더더군다나 찾는곳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 조차도 낯설어 하는곳. 우리에게는 유명하지만 그곳 사람에게는 보통의 얌차집에 불과하다. 두 명쯤의 홍콩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른 얌차집을 소개해주겠다고 한다. 해피밸리에는 유명한 얌차집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것은 맛있는 얌차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기 힘들고 우리는 조금씩 지쳐갈때쯤 작은 언덕의 골목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소와 맞는 얌차집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은 이름을 바꾼 다른 얌차집이되어 공사중이다... 이렇게 서서히 조금씩 홍콩은 바뀌어가고 꺼거의 흔적들도 조금씩 사라져가나보다.

해피밸리의 얌차집


자연스럽게 작년에 찾았던 얌차집을 찾았다. 꺼거가 이곳에서 식사를 했다는 작은 기사 한줄은 작년에도 또 올해에도 이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작지만 고급스러운 얌차집은 역시나 꺼거답다. 값은 비싸지만 그이상의 맛을 내준다. 꺼거가 즐겨 찾았던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홍콩의 다른 얌차집들과 달리 이곳에는 커다란 둥근 원탁과 시끌시끌 유쾌한 얘기를 나누는 손님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을 내며 손님사이를 돌아다니는 딤섬수레도 없다.
그저 둘 또는 넷이서 앉을 수 있는 고풍스러운 탁자에 소근소근 얘기를 나누는 손님들과, 조용한 종업원들이 하나씩 내오는 딤섬들이 있을 뿐이다. 마치 혼잡스럽고 시끄러운 홍콩에서 홀로 고고했던 우리의 꺼거처럼.
작년에도 올해도 변함없이 딤섬들은 맛있고, 차는 깔끔하다.

얌차를 하고 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해피밸리를 떠나지 못한다. 꺼거가 즐겨 찾았던 곳. 이곳에서 꺼거는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친구를 만나고, 산책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매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름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낯선 곳이다. 주소를 가지고도 찾기가 힘든 조그만 가게들을 이름만 가지고찾는다는것은 무리야.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걷고, 묻고, 찾는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나온 우리들에게 오랜시간 낯선곳을 헤매는 것은 고문과도 같다. 발은 붓고 땀이 흐른다. 이제 그만 호텔로 돌아가서 지친몸을 쉬고 다시 꺼거를 찾아야지.

발을돌려 내려오는데 순간 우리의 눈을 동시에 끄는 난 화분이 하나 있다. 같은 키에 같은 모습을 자랑하는 천편일률적인 다른 난들과는 달리 유독 혼자 조금은 작은키에 섬세하고 세심한 배려를 듬뿍받은 모습을 하고 있다. 조금은 특별한 사랑으로 키워진듯한 그 조그만 난 화분에 우리는 동시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거야. 우리가 가 오늘 꺼거를 찾을 때 들고갈 꽃은.
무작정 들어가 그 난의 포장을 부탁한다. 그곳은 홍콩섬의 해피밸리이고, 꺼거의 집은 구룡의 몽콕과 가까운곳에 있고, 몽콕에는 유명한 꽃집이 많았지만 그 난을 그곳에서 사가지고 가지않을 이유는 없었다.
포장을 부탁하고 꽃집을 둘러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꽃집의 안쪽에 신문에서 오려져있는 꺼거의 사진이 우리를 보고 있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것 처럼. 거짓말.

꺼거의 사진에 눈을 떼지 못하는 우리에게 꽃집의 주인은 리본에 뭐라고 쓸지를 물어본다. 꺼거의 집에 가져다 놓을꺼예요.
구룡에 있는 꺼거의 집에 가져다 놓을 난을 왜 해피밸리에서 사고 있는지 꽃집 주인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꽃집의 안쪽의 신문 사진 하나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것 같았다.
꺼거는 백합과 흰장미를 좋아했어요. 꺼거의 팬인 꽃집 주인은 얘기한다. 그리고 흰장미를 우리에게 건넨다. 대신 꺼꺼의 집 앞에 놔주세요. 그리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 난과 그 꽃집 주인을 대신해 꺼거에게 전해줄 장미 세 송이를 들고 해피밸리의 꽃집을 떠난다. 꽃집을 떠날때 꽃집의 주인과 우리는 서로를 위로한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는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꺼거, 우리가 이런 우연한 만남들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곳에서 꺼거가 우리를 조금은 특별히 배려하고 있다고 엉뚱한 상상을 하지 않게 해주세요.

다시 트램을 타고 센트럴의 호텔로.
만다린에 들어서면 지친몸은 편하고 마음은 아프다. kelly는 한국팬들의 메세지를 정리하고 hong언니는 발코니에서 아마도.. 울고 있다. 나는 홀린듯 나와 24층의 버튼을 누른다.

만다린 24층.
처음 호텔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방으로 안내한 지배인은 우리에게 얘기했다. 24층의 헬스센터에는 짐과 풀이 있으니 이용해주세요.

수영복도, 운동화도 가지지 않은채로 짐과 풀이 있는 24층의 엘리베이터는 열렸다. 그리고 왼쪽으로 돌면 바로 스위트룸이 그리고 다시 왼쪽으로... 마카오 스위트가 있다.

마음이 내려앉는다. 누군가는 꺼거의 마지막이 이곳에서라고 했다.
그리고 또 왼쪽으로 돌면 짐과 풀이 있는 그리고 꺼거가 운동을 했던 헬스센터가 있다.


수영복도 운동화도 가지지 않은 채 그곳 문을 연 투숙객은 나 혼자 뿐이었을까. 생각보다 좁은 그곳에는 열심히 운동을 하는 한 외국인과 친절한 트래이너 두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뭐라고 하지.

친구를 찾아요. 그 런닝머신에서 땀을 흘리는 외국인이 나와 친구가 아닌 이상 그곳에 내친구는 없다. 하지만 그곳의 친절한 트레이너는 나의 방번호를 묻고, 친구의 이름을 물어본다.그곳에 내 친구는 없다. 풀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외국인과 나는 서로 이전에도 만난적이 없는 사이니까.
그래도 직접 찾아볼것인지를 묻는다. 나의 불안한 눈빛은 계속 친구를 찾고 있기에 친구는 그곳에 없지만 나는 그곳을 둘러본다.

짐은 정말 작지만 친근하다. 마치 누군가의 개인 운동실인것처럼. 그리고 운동 후 쉴 수 있는 발코니... 그곳에서 꺼거는 오렌지쥬스를 시켰다고 했다. 우리가 만다린에 들어서서 무심코 처음으로 주문한 음료. 하나하나 눈에 담아놓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