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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7-13 15:08
1985년에 방송된 라디오 자서전 내용(9)-완결
 글쓴이 : 1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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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상업라디오 방송 인터뷰 - 1985년 哥哥가 자신에 관한 것들을 직접 얘기한 프로그램입니다.

9부 -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여성



첫번째 여성은 "六姐"이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은 몇 분이 계신다. 지금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많은 청중들이 놀랄만한 일인데, 그 분은 이미 70세가 넘으신 분으로 내 노래 "MONICA"처럼 내 마음속에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계신 바로 "六姐"이다.

나를 관심있게 지켜본 친구들은 알겠지만, 六姐는 나를 정말 따뜻하게 보살펴준 분으로, 건강한 생각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유모였다. 하지만, 이 유모는 내 마음속에서 이미 유모가 아니었다, 그녀의 위치는 이미 어머니를 초월했다. 여러분들이 이전방송을 들었으면 알겠지만, 난 부모님과 함께 산적이 없어서, 내가 부모님께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단지 친구사이의 감정이거나, 친구보다도 더 얕은 감정을 가진 서먹서먹한 친구사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우선 六姐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六姐는 아주 집착적인 성격에, 완고하기까지 했지만, 사실 그녀는 아주 착한 마음씨를 가진 여자이자, 못 생긴 여자였다. 하하하. 정말이다, 만약 여러분들이 내가 그녀와 오랫동안 지내서 그런 얘기를 하는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녀는 나를 거의 28년동안이나 돌봤기 때문이다. 지난 28년동안, 난 이미 그녀의 외모에 익숙했져서 그녀가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귀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오면, "와~ 니네 집 유모는 정말 무섭다."라며 놀란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난 사람은 일정 과정을 거쳐야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외모는 단지 겉모습에 불과해서, 시간이 지나면, 여러분들은 그녀의 많은 점을 이해할 것이고, 성격상으로도 정말로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난 정말 六姐를 아낀다. 왜냐하면, 내가 어떻게 하던 간에,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우울했을 때부터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된 이 순간까지, 내 옆에는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어떻게 글을 가르쳐야 될지 몰랐지만, 난 한동안 그녀에게 abcd를 가르쳐달라고 졸랐었다. 하지만, 그녀는 적어도 나에게 사람됨이 무엇인지 가르쳐줄 수 있었다.

그녀의 생각이 우리들이 지금 생각하기에는 매우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근본은 아주 좋은 것으로, 그녀는 결코 당신에게 나쁜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평생토록 나에게 어떻게 사람를 대하고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줄 뿐이었다.

그녀와 나는 이렇게 28년의 세월을 보냈다. 28년 동안 우리들은 2~3년정도 떨어져 지냈었지만, 대부분 우리들은 같이 지냈다. 지금 새집으로 이사하고도 그녀와 같이 살고 있는데, 이미 그녀와 함께 지내는게 익숙해졌다.

예전에 한번 그녀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난 일종의 상실감 같은 걸 느꼈다. 여러분은 내가 아침밥 같은 걸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서 그런거 아니냐고도 말할 수도 있지만, 난 영국에 있을 때 혼자서 그런 것들을 거뜬히 다했었다.

하지만, 지금 만약 그녀가 없다면 난 불편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다, 六姐가 어느날 갑자기 나이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어서 내 곁을 떠나게 된다면, 난 너무 슬플 것이다.

"六姐"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나에게 있어 가장 절망적이었던 시기에 내 수중에는 단돈 10달러도 없었다. 그 당시에 부모님의 관계가 너무 안 좋아, 난 한동안 부모님의 원조를 거부했었지만, 六姐는 그런 나를 원망하거나 밥을 굶기거나 하지 않고, 자신이 저축해둔 돈으로 나에게 밥을 해주었다.

六姐는 한번도 많은 월급을 받은 적이 없었다. 우리 집은 정말 인색했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 겨우 몇 백달러의 월급을 받았는데, 내가 21살이 되었을 때쯤(六姐가 처음으로 내 곁을 떠났을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만큼의 월급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일을...

아마도 그녀가 사람들을 너무 믿어서였을텐데, 그녀의 친척들이 그녀에게 쓴 편지는 처음 인사말을 빼고는 전부 돈을 꿔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저축해둔 모든 돈을 친척들에게 보내줬다.

그녀가 처음 내 곁을 떠난 이유는 우리 가족이 그녀에게 불공평한 대우를 한다는 이유 외에도, 그녀의 언니가 암투병중이어서 병원비로 쓸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른 일을 찾아서 떠난 것이었다. 그때 난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어떻게 그녀와 나 자신을 도와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에,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마도 사람들간의 연때문인지, 나와 六姐사이에는 아주 연분이 깊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나와 六姐는 같이 지내고 있는것이다. 난 그녀가 내 인생중 나에게 가장 잘해준 여자라고 생각한다.

(* 哥哥가 끔찍히도 아꼈던 유모 六姐는 1990년에 지병인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



(* 이 부분은 중문스크립트가 없는 관계로 차후에 올리겠습니다.)



대모님


(* 여기에서 언급된 대모님말고 최근까지 외부에 알려진 대모님으로는 張玉麟씨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장국영에게는 많은 대모님이 있을거라고 얘기한다. 맞다, 나에게도 대모님이 계신다. 사람들은 대모라함은 용돈을 받고 그에 합당하는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사실, 나 장국영에게는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대모님은 순수한 대모님이시다. 나에게는 단 한 분의 대모님이 계시는데, 싱가포르에 살고 계신다.

이 대모님의 과거 또한 순탄치가 않으셨는데, 그분은 남편에게 학대받고 집을 나왔는데, 슬하에 3명의 딸을 두신 분이다. 이전에, 댄서이셨는데, 예술을 파는 댄서였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몸을 파는 그런 댄서가 아니었다. 그 후에, 그녀는 싱가포르 홍등가에서 기방을 열었다. 내 대모님은 이런 분이시다.

난 우리사이에 일종의 암묵적인 교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만이 날 아주 잘 이해해줬다. 그래서, 난 많은 속마음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내 대모님은 영웅적인 기개를 가진 여자로, 수많은 좌절들을 겪었고,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까지 와서 살게 되기까지 그녀가 겪은 것들은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난 친구들을 사귐에 있어 성숙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을 사귀는걸 좋아하는데, 난 그들 곁에서 많은 인생경험을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은 내가 외모상으로는 동년배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할텐데, 사실 난 사상측면에서 동년배들과 비슷하거나 이미 그들을 뛰어넘었다.

많은 홍콩영화계인들이 싱가포르에 갈 때마다 이 대모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그녀의 의협심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의리 있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대모님을 제외하고 바로 매염방을 말할 수 있다.


매염방을 위해 해명하다.



매염방은 나와 여러 번 파트너로 일을 했다. 노래를 같이 불렀거나 같은 영화에 출연했던 여자스타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중의 한명이다. 또한, 그녀는 이 연예계에서 나를 도와 준적이 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당신이 뭐 잘못 안 거 아냐? 이러면서, 매염방은 신수가창대회로 데뷔했잖아?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맞다, 또 여러분들은 매염방이 처음 발표한 앨범부터 백금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앨범은 지금까지 약18만장 가령 판매되었는데, 아마도 지금은 20만장은 넘었을 것이다.

그녀는 데뷔하자마자 그 위세가 대단했고 관중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녀가 마약을 한다느니, 아이가 있다느니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해 그녀를 중상모략을 하기도 했다.

난 유배기(홍콩의 유명패션디자이너)를 제외하고 나만큼 그녀의 몸을 가까이서 접근해본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와 함께 외국에 나갔을 때, 대부분 우리들은 각자의 방에 따로 묵었지만, 그녀가 어두운걸 무서워해서, 항상 중간문은 열어두었었다.

그녀는 평소에는 디스코텍에 가는걸 좋아했지만, 외국에 갔을 때는 아주 얌전하게 밤늦게까지 놀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외국에 나가면 호텔에서만 시간을 보냈었다. 못 믿겠지만, 우리들은 외국에 나갈 때는 항상 책을 잔뜩 가지고 갔었다.

그때, 난 그녀의 팔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문신이 새겨져있을것이라고 말한 바로 그 팔 말이다. 오른쪽, 왼쪽을 살펴보고 다시 한번 살펴봐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문신 같은 건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난 이렇게까지 성장가능성이 있는 신인을 해꼬지를 해야할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대마초와 마약을 하고 있다는 등의 말을 했었다.

매염방의 손은 내가 생각했던 많은 여자들의 손보다 매끄러웠다. 그녀가 반팔 옷을 입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자신의 손이 유달리 말랐다고 생각해 일종의 창피한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난 그녀가 지금도 반팔옷을 입지않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녀의 이런 태도를 정말 찬성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내 몸에 문신이 있다고 말한다면, 내가 옷을 벗어서라도 문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줘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도 매염방은 이런 소문에 대해서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다. 나와 유배기만이 그녀의 팔을 보았다. 내가 매염방을 위해 이 문신에 관한 소문을 해명할 필요는 없지만, 난 다만 그녀가 문신이 없는데도 문신을 한 것으로 사람들에게 오해받지 않게끔 하고 싶을 뿐이다.

문신은 개인의 취향문제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문신을 한 여자는 행실이 바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미 이런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문신을 한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간에 안 좋은 이미지로 비춰지기 때문에, 난 매염방을 위해서 한마디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녀는 나에게 아주 큰 영향력을 끼친 여성이기 때문에, 난 그녀가 억울한 누명을 쓰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매염방은 의리가 있다.



여러분들은 그녀가 어떻길래 의리가 있다는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작년에 내가 그녀와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에서 콘서트를 할 때, 난 기관지염을 앓고 있었는데, 매염방은 나에게 자기가 지난 밤에 내가 불러야 할 곡들을 대신 연습해 두었다면서 호텔로 돌아가 쉬라고 했다. 십 몇 곡이나 되는 곡이었는데,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몇 분만에 연습할 수 있는 곡들이 아니라, 적어도 4~5시간은 걸리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굳이 나를 도와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도 그녀는 그렇게 하고야 말았다.

이런 것들이 그녀의 의리이고, 그녀가 평소 나에게 좋은 마음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이렇게 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난 매염방이 아주 소중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녀가 권태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녀에게 감정적인 문제 외에도, 사업상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충고한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빨리 회복하길 바란다.

앞으로의 계획



콘서트에 대한 약속



이렇게 오랫동안 옛날 이야기를 했다. 사실 사소한 일들은 내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지 않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모두 사소한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알고 싶어하는지....
난 나에게 좋은 기억들을 남겨주고 싶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들은 여러분들이 모두 알게 된다면 아마 뒤죽박죽이 됐을 것이다.

계속해서 여러분들께 들려줄 이야기는 내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한 것이다. 난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많은 청중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내가 앞으로 선보일 콘서트 같은 것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몇 회의 콘서트를 할지, 어떤 것들을 보여줄지 궁금해 한다.

난 이번에 이렇게 긴 특집방송을 하면서도, 여전히 콘서트에서 여러분들께 무엇을 보여줄지 확실하게 계획하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난 여러분들께 순수한 장국영의 콘서트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내 콘서트에서 다른 사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이건 나와 모든 음반프로듀서, 이번 콘서트 프로듀서가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콘서트는 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이번 콘서트에서 난 내가 지난 8년동안 경험한 모든 것들을 모두에게 보여줄 것이다. 이 8년간의 경험에는 TV에서 보여준 모습,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 음악적으로 보여준 것들이 포함된다. 그래서 내 콘서트는 아마도 비교적 시각, 청각효과가 어우러진 그런 콘서트가 될 것이다.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법, 콘서트에 한 후에는 무엇을 할까? 사실 난 지금으로선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완성되지 못한 많은 포부가 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예를 들자면, 난 내가 같이 영화촬영을 하고 싶은 감독들과 영화촬영을 할 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감독에는 서극을 비롯해, 허안화, 담가명 등이 있다. 비록 담가명의 영화는 흥행면에 있어서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지만, 난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재주를 가진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또, 내가 앞으로 찍을 영화의 감독인 초원이 있다. 초원은 내가 막 데뷔했을 때, 나의 가능성을 봐준 감독으로, 다음에 찍을 영화는 그의 영화인데, 난 나의 모든 것을 다 표출해내, 그로 하여금 좋은 영화를 찍게끔 할 것이다.

사실 내가 함께 영화를 찍고 싶은 감독은 아주 많지만, 지금은 일일이 다 열거할 수가 없다. 이번 콘서트를 끝내고, 난 얼마나 큰 수확을 거둘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이번 콘서트를 끝내고 무슨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타고 싶은 건 아니다. 단지, 난 내 스스로에게 지난 8년간 보답이 있어, 돈을 벌거나 일을 함에 있어 난 항상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8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난 콘서트를 연 적이 없다. 하지만, 올해 홍콩체육관의 4면 무대에서 콘서트를 연다. 난 이전에 이런 경험을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히 나에게 있어 아주 큰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힘껏 이번 콘서트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의 소원



나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는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뮤지컬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TV방송국시절을 떠올리면, 그 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친구는 만재량이다. 지난번에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관심이 있다면 다시 한번 뮤지컬을 해보자고 얘기했었는데, 이건 나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콘서트를 끝내고, 영화촬영을 끝낸 후에, 난 아주 훌륭한 뮤지컬 한편을 해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내 취미가 무언지 잘 모르는데, 내 취미는 바로 여행이다. 사실 난 동남아시아,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을 가보았다. 이번 콘서트를 끝낸 후에, 난 유럽에 갈 가서 그곳의 낭만과 정취를 물씬 느낄 것이다. 사실 스케줄때문에, 이건 나만의 꿈에 지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바쁜 활동을 마치면, 연애에도 아주 충실해볼 생각이다.

난 모든 사람들이 일과 사랑 두 가지가 만족스럽게 이루어질 때, 가장 기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일에 있어서는 확실한 발전이 있었지만, 감정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 나이에서는 많은 사람들한테서 "아, 왜 아직도 결혼을 안하는거야?"라는 질문을 많이 들을 수도 있는데, 이런게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난 두 사람이 함께 잘 지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다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든, 따로 살든 그렇게 하면 된다. 난 그 결혼증명서라는건 일종의 무형의 옥쇠라고 생각한다.

난 앞으로 여러분들을 만족시킬만한 많은 것들을 하길 원한다... 내 예술인생에 있어서, 난 내가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들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열심히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난 이 연예계에서 내가 오래 견뎌낼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단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난 은퇴를 할 것이다. 하지만, 은퇴하기 전에 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끔 하려고 한다. 지금 말하는 것은 너무 생소한 것들일 수도 있는데, 사실 난 그렇지는 않다. 사람들은 영원히 해야 할 많은 일들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들도 내가 이렇게 빨리 은퇴만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한마디만 더 하자면, 현재로서는 난 열심히 여러분들을 위해서 일할 것이며, 많은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만약 충격적인 것을 이야기하라면, 쉽게 얘기할 수 없다.

단지 여러분들이 나를 이렇게 지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할뿐이다. 정말 고맙다!

-The End-



* 이 라디오자서전에서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 가족
(어린시절, 六姐, 외할머니의 죽음, 아버지, 수영에 관한 재미있었던 일, 일곱째 형과 여덟째 형)

2부 - 학창시절:초등학교
(나의 가장 좋은 "친구들", 聖路琦초등학교(St. Luke Primary School), 큰 누나 장록평은 아주 엄했다, 초등학교때 있었던 재미있던 일)

3부 - 학창시절:중고등학교
(매괴崗중고등학교(Rosary Hill Secondary School), 적응기, 가장 기억에 남는 외국영화)

4부 - 연애사
(초등학교시절 연애사,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1), 중고등학교시절 연애사(2))

5부 - 학창시절:영국유학시절
(영국으로의 유학, 학교에서의 첫 느낌, 아침식사, 점심식사와 체육수업, 저녁식사,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다, 지리과선생님, Leeds대학교와 홍콩으로의 귀국)

6부 - 연예계진출
(아주가창대회참가, RTV와 Polygram과의 계약, 처음으로 무대에서 실망한 일과 첫번째 영화, TV드라마에 출연, 새로운 도전, 싱가포르와 태국에서의 콘서트, 《영몽가락》를 찍을 때 있었던 잊을수 없는 경험, 난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

7부 - 진백강
(1978년에 진백강을 알게 되었다, 진백강과의 우정, 진백강과의 사업관계, 진백강은 나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기를 원치 않았다.)

8부 - 사업상의 전환점
(처음 진숙분을 만나다, MONICA와 화성음반사, 진숙분과 여소전)

9부 -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여성
(첫번째 여성은 "六姐"이다, "六姐"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어머니와의 관계, 대모님, 매염방을 위해 해명하다, 매염방은 의리가 있다.)

10부 - 앞으로의 계획
(콘서트에 대한 약속, 같이 일하고 싶은 감독, 나의 소원)


* 哥哥.. 당신에 대한 많은 사실들을 알려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