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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05 18:58
MingPao weekly - 장국영 自戀自愛 Interview
 글쓴이 : 12956
조회 : 14,646  
2000년도 열정연창회기간중에 나온 명보주간의 인터뷰기사입니다.

장국영 自戀自愛


글 : 汪曼玲





장국영은 운명은 자기도 모르게 예정되어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면해야 된다고 믿는다. 77년 전후로, 그와 함께 데뷔한 연예인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지금 어떤 사람은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어떤 이는 일찍이 이 세상을 떠났다. 왜 이러한 큰 차이가 있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어떤 사람은 자기자신을 아낄 줄 알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았으며; 어떤 사람은 도리어 자신을 파괴시키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함부로 허비했기 때문이다.

장국영은 자신의 노력으로 지난 20여년 동안, 험난한 길을 순조롭게 헤쳐왔고, 더군다나 일을 할수록 더욱 더 자신의 일에 만족해왔다. 오직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어떻게 자신의 일을 존중하고 자신의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지 안다.

7월 31일에 시작하는 콘서트로 장국영은 매우 활기가 있어 보였는데, 그는 웃으면서 아직 스파르타식 훈련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오키나와에서 <연전충승>을 촬영할 당시, 그곳에서 매우 절제있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나는 진가상(감독)과 Mrs.向(제작자)를 도와야 했다. Mrs.向이 나에게 영화를 찍자고 찾아왔을 때, 나에게 한편의 시나리오가 있는데, 주연은 왕비와 양가휘이다. 왕비는 당신(장국영)이 출연해야만 이 영화를 찍을거라고 했다. 나는 당신에게 어울릴만한 영화가 결코 많지 않을뿐더러, 당신의 출연료가 비싸고, 또한 영화에 대한 요구사항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당신에게 분명히 어울릴 것이고, 영화촬영내내 휴가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보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그녀에게 또 정말인가? 거짓약속을 하지 마라.라고 되물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촬영은 즐거웠고, 촬영이 끝난 후에도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스탭들도 좋았고, 모두들 좋았다. 왕비는 우리들보다 촬영기간이 짧아서, 그녀의 촬영스케줄을 마친 마지막날에, 화장을 지운 채로 우리들을 위해 간식거리를 준비해 가지고 왔었다. 그녀는 헤어지기가 무척 서운한 듯 했다. 모두들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Mrs.向은 장국영의 출연료가 결코 적지 않다고 했는데, 레슬리 자신의 생각은?

"내 몸에는 가격이 있다. 비싼지 안 비싼지는 사람에 따라 보는 각도가 다르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영화을 고르는데 까다로운 편이다. 만일 이번 영화에 이렇게 좋은 캐스팅과 좋은 극본이 없었다면, 나는 그 제의를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뭐, 내가 꼭 작품성이 있는 영화에만 출연한 건 아니지만.....
내 기억으로는 예전에 한번 Maggie(장만옥)가 나에게 자신이 영화를 찍을 때의 생각을 말한 적이 있는데, 그녀는 우리가 현재 이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스탭들과 함께 일했을 때의 즐거웠던 시간을 소중히 여겨서죠, 만일 영화를 찍기 시작할 때부터, 즐겁지 않다면,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라고 말했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스탭들과의 순조로운 합작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점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촬영 중에나 촬영이 끝난 후에도 영화촬영동안의 즐거움들 때문에 스탭들과 헤어지기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다면, 나는 영화상영까지 걱정하며 기쁜 마음으로 영화홍보활동에 협조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내가 얼마나 이 영화의 촬영의 즐거움을 누렸는지 나타내는 대목이다."

"나에게도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다"



77년에 데뷔하여, 지금까지 23년, 장국영 역시 다른 연예인들처럼, 그의 경력에서 성공과 실패를 맛 보았다. 장국영 역시 어찌 예외였겠는가? 그러나, 그는 오히려 무에서 유로, 현재까지 오히려 더욱더 소중히 여기고 있다. 현재의 장국영은 단지 하나의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나는 앞으로 나와 함께 일할 사람들이, 서로 함께 했던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겼으면 한다. 꺼꺼와 함께 일한 것은 매우 즐거웠던 일이었고 아주 잘 지냈다며,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할 때, 진심으로 아니다! 꺼꺼는 정말 좋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길 바란다. 적어도 일에서는, 아무도 나를 비평할 사람은 없다. 이 분야에서 나는 좋은 평판을 듣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장국영은 일을 할 때, 절대 지각하지 않고, 제때에 오고, 미리 준비해오는 사람으로 비춰지기를 바란다"

최근, 장국영은 잠시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생각이 있다.

"나는 MTV를 찍었는데(지난번 TVB의 음악특집극), 나는 촬영 스탭으로 편집, 감독, 연기자 세 가지를 도맡아했다."

그러나, 어떤 직책을 맡던 간에 그는 언제나 시간을 지켰고, 이것은 그가 자신의 일에 대한 존중을 대표하고 있은 것이다.

아시아 최우수 연예인으로 칭송되어졌어도, 그의 일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변치 않고 있고, 성공할수록 그는 77년부터 83년의 일들을 회고한다. 그 기간동안 그는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모든 사람들이 데뷔때부터 사정봉처럼 성공한 건 아니다. 나에게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실패를 맛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힘들었던 경험들이 성공의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그 데뷔시절을 소중히 여긴다. 현재, 모두들 장국영의 일에 대한 태도가 매우 좋고, 시간을 잘 지킨다고 말한다. 사실 이것들은 이전의 시련의 세월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만일 이전의 내가 없었다면, 어떻게 현재의 절제력을 키워낼 수 있었겠는가?"



"그 일년동안 나는 많은 장애를 깨뜨렸다."



적극적인 태도로 모든 일에 임했던 것이, 레슬리가 연예계에서 오랫동안 설 수 있었던 원인이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 98년은 그의 일생 중 가장 불쾌했던 때이다.

"당시에, 나는 어머니가 곧 세상을 떠나실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걱정하는게 두려워서, 그녀를 속였었다, 그 때, 머리 속은 계속 혼란스러웠다..... MTV를 찍을 때, 너무 지나치게 촬영에 임한 나머지, 두 다리를 다치고 휠체어에 앉은 채로 비행기를 타야했다. 사업도 휴업상태에 들어갔다, 이전에 계약했던 음반사와도 의외로 아무런 연장계약이 없었다."

당시의 상황은 장국영이 곤경에 빠진 것처럼 보이게 했는데, 그는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갔을까?

"이 때에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는 거였다, 곤경에 빠졌다고 해서 일부러 일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일년동안, 나는 나 자신의 많은 장애물을 깨드렸다, 그리고 나는 점술가를 찾아갔는데, 그때, 어느 누군가가 점술가를 찾아간다는 것은, 그가 자신에 대해서 의문점이 많아서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자기자신에게 많은 의문점을 남겼지만, 장국영은 이러한 시기를 지내면서, 그 속에서 격려를 얻었다.

"사실, 매번 나는 선배님들에게 자문을 구하지만, 모두들 내 인생은 좋을 것이라고 한다. 10년 전에, 나는 董(董幕節)선생님을 만나 뵈었는데, 그는 앞으로 너는 잘 될꺼야라고 말해주었고, 그는 나에게 더이상 자신을 만나러 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이러하다. 어떤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갑자기 다른 단계를 생각한다, 사실 이미 다른 사람보다 훨씬 좋은데 말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항상 어느 길이 맞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 그런 침체기가 있었다는게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제서야 많은 것들을 귀하게 여겼으니 말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최근에는 대륙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는 횟수가 적어졌지만, 예전에 徐楓花씨가 많은 돈을 투자했던 [패왕별희]는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중국 땅에 발을 들이게 했고, 국제시장에 나아가게 해서 영예를 얻게 했다. 그러나, [풍월]을 찍을 때에, 그 영화 역시 매우 순조롭지 않게 진행되었는데, 나는 당시에 그러한 경험들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는 [풍월]에 내가 출연하지 않고서야, 또 누가 출연하겠는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에서야 나는 확실하게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당시에 너무 take it for granted했다. 99년에 들어서 나는 사업적인 일들을 다시 시작했다, 많은 것들이 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즐겁게 일하기 시작했다."

"꺼꺼, 이번에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신이 "反思(과거의 일들을 회고해, 교훈을 얻는다=자기성찰)"라는 두 글자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겠군요."

"사실 사람들의 진보와 퇴보는 자기성찰과 큰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이 항상 자기성찰을 하고, 거기에 충만한 자신감까지 더해진다면, 그가 현재에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지지할 수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의 자신감이 강하지 않다면, 그는 일을 할 때마다 주저하게 된다. 나는 내가 이전에 했던 일들이 나로 하여금 실망하게 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뭔가를 할 때에는 당연히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집안의 경제적인 기둥이다"



"이야기하다보니, 당신은 자아도취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레슬리는 부정하지 않고 : "나는 인정한다. 예술가는 당연히 자아도취적이어야 한다."

"자아도취와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은 건가요?"

"이것은 일정치 않다, 많은 자아도취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편을 피우기 때문이다. 자아도취와 자신을 아끼냐 아끼지 않는냐의 문제는 다른 것이다. 자아도취라는 것은 한사람이 자신의 외적으로 가장 좋은 모습만을 보존하고, 그가 자신의 내적인 면을 아낀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 자만함과 관련이 있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도 자아도취적이어서, 자신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보던 간에, 안하무인이 될 수가 있다. 또한 자기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아편을 피는 것조차도 멋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건 매우 위험한 것이다."

장국영은 그가 줄곧 자기 자신을 아껴왔다는 것을 인정한다. 젊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젊음을 믿고 매일 매일 밤을 새며 놀 때도, 그는 일주일에 한번밖에 나가지 않았다. 또, 그는 안전을 위해 오락게임이나 롤러코스터같은 것은 좀처럼 즐기지 않았다. 이전에 레슬리가 비행기를 탔을 때, 비행기가 위로 올라가거나 기류를 만나기만 하면, 매번 그의 손에는 땀이 가득했다.

"한번은, 내가 캐나다로 돌아갈 때 옆좌석에 Haeco항공정비회사의 사장이 앉았었는데, 그는 나의 긴장한 모습을 보고 나에게 비행기사고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을 설명해주었다. 사고는 많은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데, 하늘에서 일어나는 사고율은 근본적으로 지상의 교통사고율보다 낮다고 말이다. 점차 나도 이 방면의 심리장애를 극복해나갔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비행기에 탈 때는 안전벨트를 맨다."

연예계에서, 그는 직접 많은 선배들이 직접 겪은 갖가지 예를 보아왔는데, 그것들은 장국영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가지고 말을 하게 했다.

"사실 모두들의 사실적인 이야기들이 나를 도와줬다. 나는 많은 선배연예인들을 보아왔다. 그들은 원래 자신들의 명성으로 늙을 때까지 충분히 먹고 살만큼 상당히 많은 돈을 벌지만, 애석하게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도박하고 절제하지 않고 스스로를 아끼지 않아 과오를 범하고, 최후에는 씁쓸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 나는 정말 이런 길을 밟고 싶지 않다."

장국영의 가정 배경 역시,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나의 가정환경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나의 아버지는 유명한 재단사였지만, 결국에는 모두 파산했다. 이런 일들은 나로 하여금 더욱 더 자신을 아끼게끔 해주었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는 집안의 경제상의 중요기둥이다, 가족들의 일부는 여전히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사실 나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연예인들이 집안을 돌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역시 그 중의 한 사람일뿐이다."

장국영에게는 4명의 누나가 있는데, 그 중 2명은 이혼을 했고, 장국영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

"당신은 이것이 과중한 부담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즐거운 마음으로 돕고 있나요?"

"친구는 선택할 수 있지만, 가족은 선택할 수 없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의 원칙이 있다. 나는 단지 누나들에게 생활상의 최소필수품만을 제공해줄 뿐이다. 사치스러운 물건들이 아니다. 나는 또한 누나들이 이 기사를 봤으면 한다. 그녀들은 내가 벌은 하나 하나의 돈이 모두 피와 땀이고, 쉽게 써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족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갖게 했나요?"

"그렇다. 나는 이미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어머니가 나에게 알려줬는데, 그가 일찍이 한 한마디가 있었는데, 그 말은 나로 하여금 그가 무책임하다고 느끼게 했다. 어머니가 그에게서 생활비를 받아갈 때, 그는 항상 "너희들은 공산당이야"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우리 어머니가 열명의 자식을 낳으시는 동안, 아버지의 다른 부인은 아이를 갖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하나의 축구팀 같았다. 지금은 내가 형제들을 도와야 할 때이다. 비록 내가 도울 수 있는 한계를 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큰 대식구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모두 나의 도움을 요구한다면 확실히 어렵긴 하다."

"당신은 주윤발한테 배울 수 있다. 그의 형제자매들에게 각각 집을 사주었고, 그 후에는 그들 스스로 살아가게 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각각의 처지는 다르다. 나의 두 형들은 문제가 없지만, 누나들은 더욱이 여자라서 아마도 성에 차지 않는 듯하다. 어떤때는 집에서 쉬고만 싶어한다. 나는 내가 이 두 누나들을 돌보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중 한 누님은 전과 다름없이 적극적이다. 그녀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데, 나는 그녀에게 살 집을 마련해주고, 그녀가 은행에서 일하도록 해주었다. 나는 그녀를 도와주었다는데 대해서 후회해 본적이 없다. 그녀 역시 젊었을 때, 가족을 돌봤었다."

장국영은 전과 다름없이 자신이 매우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가족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나에게는 가족들을 도울 능력이 있어, 쉽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를 돕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싫다. 그래서 나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해도 그들은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는 최후통첩을 한다. 나는 여러 번 누나들을 이해하려 했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집도 사주고, 그녀는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차를 사 줄 필요는 없었다. 물, 전기, 가스뿐만 아니라 생활비까지도 주었다. 그녀에게 빚을 내서 살지 않게 한다면, 충분하다."

장국영은 가족을 도와줄 경제능력이 있다. 그는 절대 후회하지 않았고, 그가 말한 것처럼, 도움을 받는 것보다는 도움을 주는 것이 훨씬 낫다.

"사실, 나는 매우 지조가 있는 사람이다. 자존심도 매우 강하고, 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내 인생에서 나는 적게 먹더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겠다. 왜 나의 행동이 이렇게 줄곧 적극적이었는가? 나는 줄곧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이전에 어떤 한 담당자와 법정소송을 한 적이 있다. 그가 나의 돈을 가지고 사라진 것이었다. 경제형편이 조금씩 곤란해지기 시작할 무렵, 어떤 사람이 나에게 노래를 할 것을 권유했고, 그걸로 몇개월 버텨낼 수 있었다."

"굶었던 적이 있었나요?"

"없다. 오히려 그 문제가 있었을 때는, 억지로라도 조금씩 먹었다. 이러한 배고픔이라면 있었다. 이러한 배고픔은 내가 원한 것이었다."



"진백상은 사귈만한 친구다."



감정적인 문제에서는, 장국영은 자신이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면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

레슬리는 "나는 줄곧 일에 관한 문제만 고민했었다. 나는 비교적 일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나는 일에 관한 문제에는 안심을 한다, 아무런 걱정이 없다. 지금은 이미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 이해할려는 사람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또한 이런걸 고의적으로 물어볼 필요도 없다. 사람들이 말하고 듣고 알고있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그 또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이건 내 사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관중들과 독자들은 내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를 받아들인다, 장국영은 현재까지 여전히 대중들의 앞에서 그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업상의 측면에서, 여전히 성공적이고, 반응도 이렇게 좋다. 이것들이 내가 사업적인 측면에서 하는 것들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이고, 감정상의 문제들은 내 개인의 사생활이다."

"당신은 또한 무대에서 [월량대표아적심]을 불렀다."

"그 일은 매스컴에 의해 조작되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때 부른 것이 나의 어머니에게 바치는 노래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의 콘서트에 와서 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은 내 콘서트의 마지막날이었다. 당시에 나는 다 말을 했었다. 어려울 때의 친구야말로 진정한 친구이다. 내가 힘들 때, 이 친구는 나를 도왔고, 없는 말을 갖다 붙이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필요한 적당한 시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사실 타이밍 역시 매우 중요하다. 현재 당신은 다른 사람의 도움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에는 당시 모두들 매우 어렸고,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그에게서 도움을 받았을 때 정말 기분 좋았다."

"이러한 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정말 좋지 않은가?"

"정말 좋다. 나는 이미 내가 일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의 이 좋은 친구처럼 말이다. 그는 이미 나의 경제투자 카운셀러를 하고 있다."

"그는 정말 당신에게 도움이 됩니까?"

"그렇다. 연예인 본인은 근본적으로 금전적인 문제를 처리하는데 어둡기 때문에, 그는 내가 벌어온 돈을 어떤 적당한 곳에 투자해야 할지 도와준다. 나에게 정말 크나큰 도움이 된다."

장국영의 진실한 우정은 그로 하여금, 진백상이 알란탐을 위해 말한 한마디 명언을 떠올리게 했다.

" 15세이후에 알게된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 어떻게 이 두 사람이 이렇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정말 진백상의 이러한 면을 사고 싶다. 친구로서 사귀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가 알란탐에게 이렇게 잘하는 것은 그들 사이의 연분이다.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만일 진백상이 정말 나의 친구가 되어준다면, 나 역시 그와 친구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전에, 진백상이 알란탐을 위해 나에 대한 듣기 불편한 말을 했을 때, 난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깐, 나에게도 나를 이렇게 위해주는 친구가 하나만 있다면 나는 정말 그를 아껴줄텐테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기 :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야 한다.

장국영에게 일생 중에 후회스러운 점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대답하기를 : "어찌 감히 후회라는 두 글자를 말하겠는가. 나는 스스로를 복을 차버릴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지가 멀쩡하고 선량하고 사업에서도 성공을 했다. 이 세계에서 건강, 즐거움을 가지는 것이 어떠한 것보다도 중요하다."
그는 또한 사람에게 잘하면, 그 역시도 자신에게 잘할 것이라며, 서로 똑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장국영은 친구를 사귈 때에는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