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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18 23:08
哥哥 지인들의 추모글과 인터뷰 4 - 이벽화 편
 글쓴이 : 12956
조회 : 7,911  
臺週刊

연지처럼 붉은 피가 데이(蝶衣)를 물들이다.

글 : 이벽화(패왕별희, 연지구등의 시나리오를 쓴 홍콩의 유명여류작가)




4월 1일, 우리들은 이제부터 다시는 만우절에 웃을 수 없다.

4월 5일,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이 머무는 곳에 갑작스레 새로운 영혼이 추가된 청명절이다.

4월 8일, 당신이 한줌의 재가 되어 정말 우리 곁을 떠났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당신이 속세의 번뇌와 아픔을 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신의 즐거움을 찾길 바랍니다. 잊지 말고 그곳에서 속세에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있는 세 잔의 차를 마신 후에 새롭게 출발하세요. 당신은 당신을 사랑했던 사람, 친구, 파트너, 당신을 사랑했던 Fans들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당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는데, 당신은 이런 식으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으니, 우리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당신이 아니에요!

전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은 줄곧 죽음을 두려워하고, 높은 곳을 무서워하고,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몸을 소중히 생각해서, 항상 gym에 가고, 테니스도 치고, 마작도 하고, 여행도 하고, 와인도 즐기면서, 인생을 누렸잖아요. 당신이 24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선택했을 때, 얼마나 큰 용기와 단호함이 필요했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어요. 누구든지 그 뒤에 일어날 처참한 광경을 떠올릴 수 있었을테니깐요...... 이번에 전 만다린오리엔탈호텔 문밖에서 특히 당신으로 인해 부서진 그 난간 밑에서, 한 낯선 사람이 맹렬히 물을 뿜어내고 있는 호스를 들고 당신이 남긴 핏자욱을 순식간에 깨끗이 없애버린 그의 행동을 원망하고 있답니다. 당신은 물과 함께 떠났고, 한 순간에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어요. 난 그 사람의 그러한 행동을 원망했어요.

좋은 옷을 갖춰 입고, 살구색 정장을 입고, 온몸을 붉은 색 피로 감싼 당신은 당신을 덮은 흰색 천 위에 또 다시 연지처럼 붉은 당신의 피를 보였습니다. 당신의 창백하고 허약한 마지막 모습 때문에, 당신에게 마지막 화장을 해드렸습니다. 그 후에, 당신은 긴 대나무바구니에 덮여 빈의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당신은 당신만을 위해 제작된 관에 안치되었고, 뜨거운 불 속에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전 각종인터넷사이트와 신문에 쓰여진 "(故)장국영"이라는 글자를 보았습니다. 괄호 안에 쓰여진 저 간단한 글자가 어찌나 슬프고 암담해 보이던지.

한 사람의 출생, 성장과정, 노력, 경쟁, 사람을 사로잡는 힘, 성공,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고통이 교차되니, 40여년의 힘든 세월을 거쳐 정말 기나긴 길을 지나왔군요.
모든 것이 "과거"가 돼버리는 데는 1주일 아니, 1초가 걸렸을 뿐이에요. 인생은 고난을 거쳐 젊은이가 나이를 먹고, 아리따운 여인이 머리가 희어지니, 당신이 "사람들이 당신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지 않게 하는 방법"을 택했으니, 사람들은 늙어서도 당신을 만년스타의 모습 그대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 전설 속에는 처량한 요염함과 깊은 정만이 있을 뿐 세월의 흔적은 없습니다.

현재 홍콩은 비전형성폐렴의 기승으로 인해, 사람들은 마스크로 무장한 채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명을 중히 여기고 있는데, 오직 당신만이 선뜻 작별을 고했군요. 어떤 독자는 눈물을 머금은 e-mail를 보내왔답니다. 메일에는 "정 많고 잘생긴 十二少(연지구에서 哥哥가 맡은 역)가 떠났어요. 당신은 그 상처 받은 여화(연지구에서 매염방이 맡은 역)를 잘 돌봐줘야 해요! 당신이 책임을 지세요. 제가 걱정하지 않도록 말이죠!"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매염방은 "哥哥는 내 일생의 하나뿐인 좋은 친구이다."라고 말했었죠.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을 Leslie나 장국영이라고 부르는 것보다는 당신을 "哥哥"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죠. 아마도 당신이 어린시절 부모님과의 관계가 소홀한 대가족속에서 자라면서, 사랑을 받길 원했지만 홀대받았던 당신의 어린시절과 연관이 있는거겠죠. 그래서, "哥哥"라는 호칭은 당신에게 "친근한 느낌"을 안겨 다 주었을 거에요. 阿梅에게는 더욱더 깊은 뜻이 있었을테구요.

제가 阿梅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이미 한바탕 통곡을 멈추고, 당신을 위해 불경을 외고 있었죠. 그녀 주위의 동생과 친한 친구들이 하나하나 떠났고, 현재 유일한 친구마저도 손을 놓고 떠났으니, 당신은 스스로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나요? 전 阿梅에게 말했죠. "넌 강해져야 돼.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마, 이건 그 자신이 선택하거잖아."라고요. 阿梅의 목소리는 힘아리없이, "전 이해할 수 없어요.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우리가 그를 그다지도 아끼는데, 그는 아무런 대꾸도 없어요.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심지어는 전화번호까지도 바꿨잖아요. 친구들하고 같이 식사하러 가면,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그 자리를 떠나버렸어요. 이런 날들 동안, 그는 전혀 딴 사람 같았어요..."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자주 이렇게 물었었죠. "난 한평생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라고, 당신의 이 말을 저와 阿梅도 여러 번 들었어요. 당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책망하고 있어요.

阿梅조차도 당신과 연락이 닿질 않았는데, 누가 숨어있는 당신을 찾을 수 있었겠어요?

전에, 당신은 감독의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나리오에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투자자를 찾지 못했었죠. 그 후에, 본토의 한 사업가가 당신의 영화에 투자하겠다고 나서자, 당신은 흥분하며 너무 기뻐했었죠. 하지만, 그 사업가가 소송사건에 휘말려 수감될 줄 그 누가 알았겠어요. 순식간에 당신의 기분은 다운이 돼버리고 말았죠. 또, 태국에서 귀신에 씌였다는 소문도 있었잖아요. (무슨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찍다가 그 배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그랬다는 것과는 별 관계가 없잖아요. 당신은 전문 연기자이고, 그 영화는 일찌감치 촬영을 끝냈잖아요.)

당신은 小恩(盧瑋란교수)과 仙姐(白雪仙)에게 20년 전에 찍은 TV드라마《我家的女人》가 맘에 든다며, 다시 찍고 싶다고 했죠. 그건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한 작품이었는데, 국제영화제에서 상까지 받았었죠. 그래서, 작년 5월 1일에 전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徐楓의 집에서 당신이 회의를 하게끔 했었죠, 서풍도 저의 그런 뜻을 지지했죠. 전 시나리오를 다시 쓰겠다고 제의했고요. 당신은 장백지의 외모와 연기력을 좋아하고, 그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고결한"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해서 그녀를 캐스팅하고 싶어했죠. 하지만, 그 날 밤 당신의 두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했고, 당신은 기운이 없어보이고, 경직되어 있었죠. 또한, 넋이 나간 듯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죠. 서풍도 "우울증"을 앓아본 적이 있어서, 당신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는 당신한테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했어요. 하지만, 귀신 같은걸 쫓아내는 일을 하라고 하진 않았어요. 전 당신을 위로하며, "만약 당신이 사람을 해친 적 없고,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면, 당신을 해치려고 하는 자는 그 댓가를 치뤄야 할 거에요. 두배로 응징을 받을테니깐요."라고 했었죠.

제가 특별히 5월 1일로 약속날짜를 잡은 이유는 그날이 노동절이었기 때문이에요. 난 농담조로 "새롭게 일어서는 건 당신하기 나름이에요. 감독 일도 일종의 노동이잖아요. 같이 시나리오를 살펴봐요. 우리들은 당신 뒤에서 도와드릴게요. 응, 당신이 기운을 차리는데 1년이면 충분하죠? 내년 5월 1일 노동절에도 당신을 기다릴게요!"라고 말했지만, 당신은 계속 풀이 죽어있었고, 우울해 했고, 게다가 위산역류로 인해 건강까지 안 좋아져서 뭐든간에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사람들조차 만나길 꺼려했죠. 당신은 올해 5월 1일까지도 기다리지 못하고, 4월 1일에 떠났네요.

첸카이거감독은 당신의 부고소식을 듣고 낸 첫번째 반응은 놀람과 탄식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믿을 수가 없다! 이거야말로 또 다른 데이(程蝶衣)가 아닌가?"

이렇게 이별을 고했군요.

늦봄, 홍콩의 하늘에는 비정상적으로 참담한 구름과 우울한 안개가 꼈고, 매일같이 비가 내렸고, 기온은 뚝 떨어지고, 조금은 춥게까지 느껴지고 있는 상태에요.

우리의 좋은 스승이자 친구인 小恩은 당신이 그녀에게 하나의 유품을 남겨뒀다고 일러줬어요. 바로 공개되지 않은 당신의 귀중한 사진 한 장과 한 통의 편지였어요.

한 통의 편지?

"교육부 발전과정처"가 당신에게 쓴 칭찬의 편지였어요.

기억을 더듬어보니, 2002년 2월 22일, 홍콩중문대학 "중국어문학과와 홍콩문학연구중심"이 함께 "문학과 영상의 비교"라는 강좌를 열었었죠. 중문과에는 이런 수업이 있죠. 마침, 小恩이 교수직을 은퇴하는 해라, 당신은 그녀의 "어떻게 이벽화 소설 속의 인물을 연기해야하는가"라는 주제의 강연에 참석하기로 했죠. (전 정말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新兒人文館은 사람들로 가득 차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었는데, 각 과의 교수와 강사들도 참석했었죠.

당신은 학교측을 고려해, 그 어떠한 촬영, 녹음, 홍보를 전혀 허락하지 않았죠.

그 날 당신이 강연 중에 패왕별희에서 데이의 죽음에는 3가지 원인이 있다고 얘기했었죠. "첫째, 우희의 집착적인 성격때문에 패왕 앞에서 죽으려고 했다. 둘째, 데이는 자살로서 패왕과 우희에 관한 고사의 결말을 완성시키려고 했다. 셋째, 군중 앞에서 우상으로 살면서 자신이 늙어가는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라고 했죠. 저도 모르게 이 글을 보고 놀랐어요.

그 날 당신은 3월말 병이 나기 전이라서 아주 찬란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날이었어요. 연예인이 대학강단에 선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당신이 자유자재로 뿜어내는 말들과 웃음은 학생들로 하여금 잊을 수 없는 강연의 기억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조용히 당신의 강연에 집중하여 펜을 움직이게끔 했죠.

당신과 함께 자란 3~40대사람들뿐만 아니라, 어린 사람들까지도 당신을 숭배했어요. 전 그들이 당신의 노래, 연기, 외모 외에도 당신의 우수한 점들(당신의 일에 열심히 임하는 태도, 시간약속 잘 지키는 것, 선배를 존중하는 것, 당신의 지성과 감성, 창의력, 친절함과 예의바름, 솔직함, 완벽추구)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래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려고, 자신에게는 아픔만을 남겨놓은 당신... 전 당신의 외로움을 알아요.

당신은 독서하는걸 좋아했었죠. 지난번에 仙姐댁에 갔을 때, 小恩이 白先勇의 《樹猶如此》를 감동적으로 읽었다고 했더니, 당신은 바로 한 쪽 구석으로 가서 조용히 그 책을 단숨에 다 읽어버렸죠. 당신의 언어구사능력은 아주 뛰어났죠.

당신은 정말 훌륭한 감독이 되었을 거에요. 당신이 감독한《芳華絶代》뮤직비디오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아쉽게도....

이 글은 내가 비통한 심정으로 친구를 떠나보내며 바치는 마지막 선물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아직 저한테 영화 한편을 빚졌잖아요.
당신은 아직 저한테 시나리오 한편을 빚졌잖아요.

언제 돌려주실 건가요?



* 我家的女人은 1980년에 RTHK에서 제작한 단편드라마로 그 해 시카고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哥哥는 이 드라마에서 부자집도련님역으로 출연.

* 홍콩에서 "패왕별희"VCD와 DVD가 새롭게 발매된다고 합니다. VCD에는 10장의 영화 스틸 사진이 제공되며, DVD에는 패왕별희 제작과정과 패왕별희의 주제곡 "당애이성왕사"의 뮤직비디오가 수록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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