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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4-22 23:36
哥哥 지인들의 추모글과 인터뷰 6 - 장진전 편
 글쓴이 : 12956
조회 : 7,630  
ET衛視周刊

영화 같은 인생

글 : 장진전(《패왕별희》와《풍월》의 진행감독)



그와의 마지막 만남



장국영의 일이 터진 후, 난 그의 사망소식을 알리는 수없이 많은 전화를 받았다. 그 때, 난 저녁식사 중이었는데, 정말 정말로 뜻밖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건 작년에 북경에서였는데, 그는 《패왕별희》를 집필한 이벽화씨와 함께 그가 직접 감독할 작품에 대해 상의하러 북경에 왔었다. 우리들의 관계는 아주 좋았고, 이전에 함께 일했던 경험도 서로에게 즐거웠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에 난 이미 다른 영화에 참여하기로 계약을 마친 상태였다. 우린 서로 너무 아쉬워했고, 그는 농담조로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부탁하고, 첫번째로 감독하는 작품인데, 당신마저 저를 안 도와 주는군요."라고 했는데, 마지막에는 "괜찮아요. 괜찮아요. 다음영화를 찍을 때는 꼭 같이 해야 돼요."라고 해서, 난 꼭 가겠다고 대답했었다.

그 후에, 작년 그가 계획하던 영화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올해 장국영이 다른 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하기에, 난 그와 함께 다시 일할 것을 기대하고 있던 있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명성 뒤에 잃은 것



그 일이 있은 후 신문들을 살펴보니, 모든 신문에는 장국영의 자살 원인에 대해 애정문제에만 초점을 맞춰서 보도하고 있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그의 유서상에 쓰여졌다는 몇몇 말들로는 그의 자살 원인을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난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그의 애정관계가 이런 식으로 한 순간에 무너질 정도로 약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이런 요소들은 아주 작은 일부분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사업상의 문제에 있다고 본다. 장국영은 자기 일에 아주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마음이 아주 넓은 사람이었다. 그를 알게 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사업상의 문제에 아주 집착했고,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으며, 홍콩의 일반 감독들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패왕별희》영화 한 편만 봐도 우리는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을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정말로 사업상의 문제들뿐만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요소들이 그를 오늘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정말 《패왕별희》의 데이가 되고 말았다.


그는 예술을 추구했으며, 자신이 연기하고자 하는 배역에 푹 빠졌는데, 이건 모든 연기자들이 배워야 할 점으로, 한명의 "예술가"로 칭하기에, 그는 전혀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쏟은 것 만큼 그에게 돌아온 명예는 정비례하지 않았다. 그를 향한 대중들의 의견과 요구는 그다지 높지 않았는데, 이건 장국영이 요즘 우울해 했던 하나의 원인이 동시에 아주 중요한 원인이었다. 여론적으로, 장국영은 모든 요건을 다 갖추고,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냈고 증명해냈지만, 최고봉에는 오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주변의 많은 일들이 그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그의 마음속에는 그것들에 대한 유감스러운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가 각종 장소에서 이러한 것들을 속시원히 털어놓지 않았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패왕별희》는 장국영의 연기생활에서 하나의 이정표였는데, 그는 이 영화로 각종상을 받음으로써, 만족감을 나타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난 장국영 없이는 《패왕별희》가 있을 수 없고, 그만큼 데이역을 완벽하게 해낼 배우는 중국에서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풍월》촬영 중에 우리들은 프랑스(칸느시상식)에 갔는데, 그곳에서 《패왕별희》상영 후에 언론의 인터뷰세례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공리의 방에는 각국에서 그녀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로 가득했다. 인터뷰 중에 난 장국영 쪽은 어떤지 살펴보려고 나왔는데, 건너편에 있던 그 방은 이쪽방과 확실히 대조적이었다. 인터뷰현장은 아주 썰렁했는데, 홍콩, 대만쪽에서 온 몇 명의 기자만 보일 뿐이었다. 난 당시에 국영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다. 국영으로 하여금 난처함을 느끼게끔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촬영 때마다 그는 모든 노력을 다 했고, 또, 훌륭히 해냈다. 하지만, 외부의 반응은 너무도 큰 차이를 보였고, 이건 그에게 정말 불공평한 처사였다.

그의 마지막 선택과 그의 마음속에 존재했던 위기감과는 큰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마흔 여섯이라는 나이이고, 남은 시간이 짧고, 젊음이 사라져간다고 생각했을텐데, 이건 정말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감독을 하고 싶었던 이유도 자기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시나리오, 배역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배역을 직접 찾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장국영은 동의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그가 일을 하면서 오랫동안 누적된 실망감들이 그를 망가뜨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들은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가냘프고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다. "사랑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그를 욕보이는 것이다.

외유내강



사실, 우리가 처음에 데이역으로 점 찍었던 사람은 《마지막 황제》에 출연했던 존 론이었다. 나중에 계약상의 문제로 인해, 장국영으로 변경되었다. 당시 장국영의 스케줄이 맞질 않았는데, 그는 이 영화를 위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패왕별희》제작팀에 합류했다. 그가 온 후에 우리 몇몇 주요 스탭들은 함께 매란방의 묘소에 가서 성묘를 했다. 우리가 그를 본 첫 느낌은 그의 외모가 그 배역과 아주 비슷했고, 그의 인품이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스탭들과 잘 어울렸고, 대스타처럼 과시하는 경향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첸카이거 감독, 공리, 장풍의, 갈우와도 아주 잘 어울렸으며, 제작 스탭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예의바르게 대했다.

영화를 찍는 도중에, 그는 정말정말로 고생했다. 매일 그는 자신의 배역에 대해 연구했는데, 무대대사, 표정 같은 것은 경극선생님께 특별지도를 받았고, 대역을 쓰자고 해도 그는 완강히 거절했다. 더욱이 대사처리에 있어 그는 정말 열심이었는데, 그 당시만해도 그의 국어발음은 홍콩특유의 억양이 물씬 풍겨져 나왔었는데,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이미 홍콩대스타들중에서 국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매일 촬영 전에 긴 대사를 준비해와, 촬영에 들어가기 전 나에게 조용히 와서, "진전씨, 제가 하는 대사 좀 들어봐주세요. 틀린 데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하고, 내 앞에서 대사를 외웠는데, 내가 어느 부분의 발음이 틀렸다고 지적하면, 그는 바로 고쳤고,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카메라 앞에 섰다.

우리 모두는 장국영의 사람됨과 연기력에 감탄해 마지 않았고, 그와 함께 있는걸 아주 좋아했다. 그는 낯선 사람 앞에서는 말을 아꼈지만, 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말하는걸 아주 좋아했다.

당시로선 그가 처음으로 중국본토에 와서 함께 일한 외지인이었는데, 1991년 이전까지만 해도 나를 비롯한 많은 감독과, 배우들은 홍콩배우와 대륙배우간의 거리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장국영을 보고 나서는 우리는 그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촬영이 끝나고, 그는 홍콩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날에 그가 묵고 있던 샹그릴라호텔로 모든 스탭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는데, 그는 그날 기분이 좋아 술을 많이 마셨다. 사실 그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주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서 그날만큼은 취하도록 마셨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매우 부드러운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는 아주 강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의 마지막 선택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십몇층에서 뛰어내릴 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겠는가?

그는 자신의 이전의 일들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는데, 그 날 우리들은 은연 중에 그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다. 그날, 그는 술에 취해 미국에서 막 돌아온 서풍(패왕별희 제작자)의 아들에게 화를 내며, "네 부모님이 너를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시는데, 넌 이까짓 더위를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는 거냐, 우리는 영화를 찍을 때 땡볕 밑에서 일을 한다. 이정도 고생도 못 참고, 이것저것 다 두려워하면, 앞으로 뭘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라고 훈계했다. 그날, 그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를 난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그 땐 우리들은 단순하게 장국영의 한면만을 볼 수 있었는데, 사실 그는 이 세상 사는 도리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때 서풍의 아이에게 가르침을 주는 모습을 본 후, 난 장국영이 얼마나 올바른 사람인지 깨달았다.

난 지금 장국영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사실 중국영화계가 인정한 그에 대한 평가와 관중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에 대한 기억은 그가 기대한 것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는 영원히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을 것이며, 이 점이 그나마 나에게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