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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호외] 마지막 인터뷰
  
 작성자 : 12956
작성일 : 2005-12-13     조회 : 3,966  

1990년 《號外》169期

 

마지막 인터뷰

 

- 劉天蘭

 

 

장국영을 안지 벌써 13년이 흘렀다. 그 당시에 그는 런던에서 막 홍콩으로 돌아와 갓 20살을 넘긴 나이였다. 그가 가창대회에서 입상하고 RTV에 입단한 후에, 한 TV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서로 알게 되었다. 그 후에는 서로 바쁜 스케줄로 인해 마주친 적은 별로 없었지만, 어쩌다 만날 때면 이야기가 잘 통해서 아주 즐거웠다.

 

Mr. 張의 명성이 날로 드높아지고, 대중들은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간에 그에 대한 소식을 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전매니저와의 법정소송이라던가 데뷔 경쟁자와의 마찰, 심지어는 음악계 패권다툼으로 인한 시련, 10여장에 가까운 골든 디스크, 수많은 흥행 영화와 수만명의 팬들의 추앙 속에서, 홍콩의 수퍼스타의 명단 속에서, Mr.張은 조용히 그 자리에 있었다.

 

갑자기 어느 날, 이 아름다운 얼굴의 소유자는 가슴 아픈 말을 했다.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이 음악계를 떠나야겠다고 말이다. 겨우 서른세살인데, 이렇게 빨리?

 

약속을 지키고자, 그는 세계순회콘서트와 홍캄콘서트후에 정말로 마이크를 놓고 관중들과 작별을 했다. 그것이 90년 초였다.

 

반년 후인 6월, 그는 왕가위감독의 《아비정전》에 출연하면서, 다시 한번 폭풍우를 몰고 왔다. 그가 말을 번복하면서, 결코 진정으로 은퇴를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6월 21일 저녁, 그의 집과 페닌슐라 호텔의 한 레스토랑에서 우리는 아주 긴 인터뷰를 했다.

 

7시에 리펄스베이에 있는 그의 집에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문이 열리자마자 문 앞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따뜻하고 친절한 모습은 전날에 전화로 그와 약속을 잡을 때와 똑같았다. 눈앞에는 분위기 있는 집이 놓여져 있었고, 그가 우리를 안으로 안내하는데만 족히 몇 분은 걸렸는데, 그 집은 4층짜리 집으로 약 3천평 정도는 될 것 같았다. 멋진 이태리 가구와, 베란다 앞에는 해변이 펼쳐져 있고, 침대머리 맡에는 누나와 찍은 어릴적 사진이 놓여져 있고, 그 옆에는 댄서 친구들이 준 무대 조각품이 놓여져 있었다. 한쪽에는 의상실처럼 잘 정리된 옷장이 있었고, 구석에는 작은 서재가 있었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Mr.張 혼자서 찍은 독사진은 발견되지 않았다.

 

거실에서 약 10여분을 머물다가 저녁을 위해 페닌슐라로 갔다. 그의 재규어에 올라타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당신처럼 매우 이지적인 연예인이 복잡한 연예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주 현실적인 취향을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Mr.장은 동의했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지적으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왜 음악계를 떠나기로 결정한거죠?"

 

"홍콩인의 편협한 사상을 당신도 알잖아요? 홍콩인은 한 연예인의 예술적 가치를 좋아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생활도 결부시키죠. 유럽, 미국에서는 당신이 기타리스트라면 당신이 마약을 한다하더라도 재능만 있다면, 지지를 해주는데 말이죠. 정말 단순한 이치이지만, 여기에서는 그게 안 되죠. 게다가, 전 13년간 발라드곡을 불러왔어요.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제 남은 인생동안 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거에요!"

 

"쇼비지니스계는 너무 정치적이에요. 음반사, 라디오 DJ, 대중, 방송국, 신문사, 각종 관계가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오랫동안 이 곳에 있다보니, 자신이 가식적이고 말도 원만하게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이런건 싫어요. 그래서 은퇴하기로 결정한거죠."

 

"사실 5년 전에 이미 은퇴준비를 시작했죠. 3년 전에 진숙분에게 말했어요. 야마구치 모모에로부터 받은 영향이 아주 커요."

 

"33년의 절반을 관중들과 마주했던 인생이, 이젠 자기자신을 마주하게 됐군요."

 

"그럼, 《아비정전》으로 당신이 약속을 깼다는 소문은 어찌 된 일이죠?"

 

"《아비정전》은 훨씬 전에 계약했어요. 시나리오가 완성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제가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서 일을 시작한 첫날에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죠. 정말 억울해요. 사실 전 정말로 다시 해명을 할 필요를 못 느껴요. 전 제 결정을 존중해요.《아비정전》말고도 등광영과 계약한 영화가 아직 한편 더 남아있어요. 이것들은 모두 은퇴 선언 전에 찍기로 약속한 거죠, 영화 스케줄이 맞질 않아서 오해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전 음악계를 떠난다고만 말했잖아요. 정말 전 다시 해명할 필요가 못 느껴요. 그럴 필요가 없죠."

 

오늘의 그는 다시 해명할 필요가 없다. 그 당시의 젊은 청년은 RTV에 입단하면서 한동안 드라마와 쇼에 출연한 후에, 프리랜서의 신분으로 연예계에서 1년 반의 침체기를 보냈다. 그는 이 1년 반을 침체기로 형용하고 있는데, 이 시기에 그는 羅便臣道에 방을 구하고 생계를 위해 원치않는 Bar에 가서 노래를 해야 했고, 매니저와의 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해 차를 팔면서까지 소송을 벌여야만 했듯이, 모든 것이 자기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黃錫照가 그에게 상을 건내면서 했던 "Im going to make you a star."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이 STAR라는 말이 그의 머리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았고, 아마도 이 말이 그의 버팀목이 되었을 것이다.

 

페닌슐라의 스시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침체기는 華星에 들어가고, 《풍계속취》로 사람들에게 각인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그 당시에 난 Raymond Suen에서 사진촬영을 하면서 장숙평이 디자인한 아주 특색있는 Art Direction의 "풍계속취" 앨범 재킷을 본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 Leslie는 나에게 그가《열화청춘》을 찍으면서 장숙평을 알게 되었고, Leslie는 자신이 신인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앨범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그에게 앨범재킷 디자인을 부탁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성공기회를 어떻게 넓혀가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비록 "풍계속취"가 단숨에 그를 띄워주진 못했지만, 노래는 굉장한 인기를 끌었고, 그 역시 인기를 끌었는데, "MONICA"를 발표하자 모든 상황이 변했다. 그가 "Thanks! Thanks! Thanks! Thanks! Monica!"를 부르면서 양 손을 공중에 휘날리며 수많은 팬들을 사로잡았는데, 장국영이 바로 음악계의 8호 태풍이었다!

 

그에게 언제 왜 진숙분과 매니지먼트 관계를 맺었는지 물었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Monica"와 연관되어 있었다. 華星 초기에 진숙분의 직책은 Leslie의 일을 돕는 것이었는데, "Monica"때 Leslie는 금전 문제를 비롯해 자신이 잘 모르는 일들을 대리할 사람을 필요로 했고, 진숙분과 협의하게 되었고, 그는 여러 해 동안 진숙분이 그에게 전문적인 업무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다. 자, 여기에 또 그의 스마트함을 보여주는 예가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있었고, 장점은 계속 발휘하고, 단점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보충하게끔 한 것이다.

 

"자신이 행운아라고 생각하나요?"

 

“전 단지 제 운을 잃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껏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인기를 얻던 그렇지 않던간에, 줄곧 어려움이 뒤따라서 순조롭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재능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Rose Hill에 다닐때부터 전 이미 공연 무대에서 활약상을 펼쳤죠. 음악축제나 Prose Reading, Variety Show 같은 행사에서 항상 제 몫이 있었죠. 당연히 노래를 저의 아주 자연스러운 취미가 되었고, 연기는 데뷔를 하고 나서야 제가 연기를 할 줄 안다는 걸 깨달았죠. 전 다방면으로 뛰어난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노래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어요.”

 

“당신의 춤 역시 아주 멋져요.”

 

“하하하, 춤추는 걸 좋아하지만, 재능에는 한계가 있죠. 단지, 머리를 쓰는 거죠. 어려운 스탭을 피해가는 거랍니다.” 웃으면서 스시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언젠가 내가 Leslie에게 공연 화장을 해 준 적이 있는데, 화장을 끝낸 후에 난 이 작은 아이의 잘 생긴 얼굴을 보면서 감탄한 적이 있었다. 귀티가 흐르는 선명한 윤곽의 얼굴은 정말 사람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타고난 얼굴, 뛰어난 연기력과 무대 매너를 가진 사람이 왜 홍콩같이 이렇게 작은 곳에서만 활동하는 것일까? 녹차가 식어가는 가운데, 난 Leslie에게 일본 진출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도쿄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마치고, 음반제의가 들어왔었어요. 하지만, 전 거절했어요. 모든걸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수많은 무의미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하니, 기다리면서 지칠뿐이죠.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홍콩도 좋지 않나요. 일본은 됐어요.”

 

이와 반대로 그가 원하는 것은 여지껏 가진 적이 없는 “따뜻한 가정”이었다.

 

“제 가족은 문제가 있었어요. 아버지는 쓰러지셨고, 저와 어머니는 대화가 통화질 않았어요. 누나들과는 사이가 좋았죠. 13살 때 혼자 영국에 가서, 남들이 다 누리는 가족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것이 제 일생의 한이에요. 만약에 앞으로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아이를 사랑해주고 옆에서 아이의 잠재력과 흥미를 키워줄 생각이에요. 반드시 그렇게 할 것에요.”

 

어렸을 적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시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의 저는 소유욕이 아주 강했었죠. 이제는 타협과 양보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 역시 자유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개체라는 것을 인정해야죠. 예전의 저는 ‘날 따르던가 아니면 떠나라.’라는 식이였는데, 지금은 달라요.”

 

“관계라는 것은 Give and Take의 게임과도 같죠. 당신은 Giver인지 아니면 Taker인지?”

 

“85%의 Giver요.”

 

“이제 천안문사태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천안문사태 이후에 그 어떤 연예계 활동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날 저녁 전 TV를 보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So what can we do? 비록 올해에 거리행진이나 촛불집회에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위해 흰색 옷을 입었죠. 사람들의 표현방식은 다 달라요. 하지만, 전 2~30대의 홍콩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지금껏 정치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가, 이번에는 왜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걸까요?”

 

“아마도 이번 일이 너무 끔찍해서, 잠재되어 있던 의식이 깨어난거겠죠.”

 

“아마도 그렇겠죠. 하지만, 전 정치나 정치가 모두 싫어요.”

 

과거의 많은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Mr,張의 미래를 또 어떻게 펼쳐질까?

 

“1월에 콘서트를 끝내고 6개월을 쉬면서, 여행도 하고,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마작도 하면서 편안히 보냈어요. 《아비정전》촬영을 위해 수영을 하면서 살을 뺐죠. 전 지금껏 영화를 위해 이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어요. 이번에 이렇게 하는 이유는 첫째 제가 왕가위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왕가위와 등광영의 영화를 찍고 전 홍콩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꼭 잘 해내고 싶은 거죠! 원래 은퇴선언을 했을 때만 해도, 전 LA에 가서 영화공부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돌아와서 감독을 하기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Tina, 당신도 알다시피, 6개월을 쉬고 나니 생각이 바뀌게 된거죠. 이번에 돌아가면 홍콩에 장기체류를 위해 돌아오는 일은 없을거에요.”

 

“뭐라구요?”

 

“정말요. UCLA에 가서 영화를 공부하고, 그런 경험을 통해 많은 지식을 흡수하고 싶어요. 돌아와서 영화를 찍지는 않을 거에요. 장기체류를 위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거죠. 이번 당신과의 《號外》인터뷰 역시 제 마지막 인터뷰인 셈이죠.”

 

“그럼, 공부를 마치고 무엇을 할 계획이죠?”

 

“좀 더 많은 학식을 쌓기 위해 공부를 하려구요. 공부를 끝내고 나면, 아마도 미술이나 실내 장식과 같은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할 듯 싶어요. 그림이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일 때문에 일본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죠. 로맨틱한 모차르트의 음악을 좋아해요. 비록 이해는 못하지만 좋아해요.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너무 격정적이에요.”

 

“그럼, 어디에서 살게 되는거죠?”

 

“밴쿠버, 런던, 홍콩에 집이 있어요. 토론토에 집을 하나 더 구입할까 고민중이에요. 부동산 투자에 대해 아는게 없어서, 현금을 손에 쥐고 있는 편이죠. 단지 편리함과 편안함을 위해 집을 사는 것 뿐이에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녹차아이스크림이 나왔고, 난 Leslie가 좋아하는 Quality Men이 누구인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노래 & 작사 – Billy Joel

외모 – Alain Delon

연기 – Robert de Niro

감독 – George Lucas

명성 – James Dean

예술 – Borek Sipek

 

Quality Women은?

노래 – Barbara Streisand

외모 – 尤敏&Vivian Leigh

연기 – Julie Christie

감독 – 아직 없음

예술 – Eileen Grey

 

그 밖에 좋아하는 것은?

가구 – Italian Contemporary

의류 – Romeo Gigli, Krizia의 T-shirts, Girbaud의 청바지, Versace의 신발, Armani의 Fabric과 Cutting Mugler Suit(공연때만), 지난 두 여름시즌의 Angelo Tarlazzim, Missoni Summer Kn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