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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동주간] 인터뷰
  
 작성자 : 12956
작성일 : 2008-03-24     조회 : 2,593  

[1995년] 동주간 인터뷰 - 상처 

 


 

 

이 세상에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은 없다,

그저 자동 기억상실 장치라는 걸 가지고 태어나

좋은 기억들은 남기고 나쁜 기억들은 지워버릴 뿐이다.

장국영처럼 완벽한 사람도 채울 수 없는 슬픔이 남아있다.

행복과 불행이 공존했던 인생의 절반이 지나가도록,

지난 일들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자꾸 되돌아보고 있다.

조건부로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너무나 외로웠던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면서

사랑만 받고 지낸 듯이 보였던 그가 가장 원했던 건 바로 사랑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을 받았던 그 순간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어찌 감히 이런 상황에서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육감을 지닌 장국영은 아버지를 도와 옷을 배달하러 고급주택가를 드나들면서, 자신의 인생에 그 특정 지역과 관련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시절의 꿈

 

"사람들은 내 스타일이 재봉사인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재봉사의 아들은 어떤 스타일을 갖길래 그런 말을 하는 걸까? 아버지는 일반 재봉사와는 달리, 말론 브란도나 히치콕과 같은 유명인들의 옷을 만들기로 유명했다. 아버지의 작업실에 자주 드나들면서, 우아한 스타일을 지닌 사람들을 많이 봤고, 점점 그런 사람들의 여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도 갖게 됐다."

 

“아버지를 도와 고급주택가로 옷을 배달하면서, 그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게 됐다. 어릴 때부터 앞으로 그곳이 나와 인연이 닿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다. 이 세상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전에 살던 리펄스베이처럼 말이다. 음. 어렸을 때부터 그 곳에 살면서 벤츠를 몰고 한가롭게 여행을 떠나는 상상을 했다. 어릴 적 꿈을 크면서 하나하나씩 실현해 갔다. 아무도 내게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런 그를 가르쳐 준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어린 시절 장국영이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 바로 큰 누나 장록평의 전 남편이다.

 

“그는 아이들과 말이 잘 통했다. 굉장히 잘 생기고, 가정교육을 잘 받은 대학 강사였다. 큰 누나까지 합세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많은 것들을 가르쳐줬다. 큰 누나는 여전히 그 우아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딱 보면 교양이 넘쳐흐른다. 난 그런 누나가 굉장히 좋다.”

 

아쉬움이 남는 인생

 

가족을 굉장히 사랑하는 장국영이긴 하지만, 집안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가슴 한 구석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게다가 외로웠던 그 어린 시절은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난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았다.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서 어머니와 같이 살긴 했지만 그다지 잘 지내지는 못했다. 어려서 부모님의 관심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부모님과 함께 지내지 못했다. 지금 어머니와는 친구 이상의 관계는 아니다. 그저 경제적인 보탬이 되어드릴 뿐이다.”

 

“어린 시절의 난 시끄러운 걸 싫어하고, 말수가 적은 굉장히 조용한 꼬마 아이였다. 집에 손님이 오면 방에서 꼼짝 않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내 존재를 몰랐다. 어릴 때부터 그런 식이었다, 철이 들고 나서는, 집에 손님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고, 내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유일하게 내게 관심을 쏟아준 유모는 3년 전에 돌아가셨다. 물론 가족들도 날 사랑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토록 받고 싶었던 관심과 사랑을 채울 길은 영원히 없다. 나와 여덟 살 차이가 나는 바로 윗 형은 나와 놀아주질 않았다. 날 이해해 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열 여덟 살이나 많은 큰 누나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부모님에 대해서, 장국영은 너무나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을 갖고 있다.

 

“아버지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잘해주시긴 하셨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따랐다. 만약 내가 지금의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사랑은 아마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와는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저 표현을 안 했을 뿐이었다. 술과 여자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다른 많은 남자들처럼 가족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날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반대였다. 지금도 어머니와는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를 하지 못 한다.”

 

사랑 받고 싶다

 

장국영은 자신도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느낌을 여덟째 형으로부터 처음 받았다.

 

“어렸을 때, 백화점에 갔다가 완구 코너에서 만화영화가 나오는 영사기를 발견했다. 그 때 당시 돈으로 꽤 비싼 38달러였다. 너무 갖고 싶었는데도, 부모님은 사주지 않으셨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울면서 떼를 썼는데도 별 소득이 없었다. 결국 여덟 째 형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사줬다. 그 때 처음으로 ‘내가 다른 사람한테 사랑을 받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내가 가족들을 사랑하는 만큼 나 역시도 사랑을 많이 받고 싶다.”

 

사랑을 받길 원하는 장국영의 주위에는 그보다 나이 많은 친구들이 있다. 그와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마흔 살 이상이다.

 

“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오히려 더 잘 맞는다. 대모님(장옥린 여사)은 친어머니보다 더 날 아껴주시는데, 어머니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다 따르는 건 아니다. 난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진 않는다. 대모님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자식들을 키우셨다. 그 때문인지, 나도 대모님이 하자는 대로 따를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내 덕에 대모님도 많이 변하셨다.”

 

지금까지 응석받이로 자란 적은 없지만, 남들보다 강한 승부욕 탓에 고생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한동안 친구들이 나와 마작하기 겁난다고 했을 정도이다. 성격이 이상하다거나, 제멋대로 게임을 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진지하게 게임에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마작은 게임인 동시에, 철학적인 내용이 가득 담겨 있어서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실컷 고생하다

 

“이런 생활이 정말 힘들지 않냐고? 사람 일이라는 게 원래 힘든 법이다.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더하다. 편안하게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없다. 난 잠 자는 것 하나에도 굉장히 신경을 쓴다. 침대 시트에서 베개까지 특정 브랜드가 아니면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마음 놓고 편안한 생활을 누려보지 못해서인지, 아직까지도 손 떨림 증상이 있다.”

 

노래를 그만둔 후로는 상황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장국영은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잘못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손 떨림 증상은 아마 담배 때문일 것이다. 심장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그런데도 왜 건강을 돌보지 않고 계속 담배를 피우냐고? 여전히 긴장된 생활을 해야 하냐고? 지금 단계에서 멈출 수가 없다. 그저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할 뿐이다. 별 거 없다. 어찌 됐던 간에 사람이 하는 일인데, 모든 일에 아쉬움이 남길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신이다. 하늘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완벽한 외모를 가질 수 있냐고 묻곤 한다. 사실 나 역시도 아쉬운 점이 있다. 키가 좀 더 컸으면 좋겠고, 배드민턴을 너무 많이 쳐서 오른손이 왼손보다 투박하게 생긴 것도 불만이고, 몸이 좀 더 균형 잡혔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옷을 벗는 장면을 찍을 때는 거의 오른손만 카메라에 잡히도록 찍었는데, 기억하는가?”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깨닫는 사람은 괴롭기 마련이다. 장국영도 예외는 아니다.

 

“인생이 원래 그렇다. 하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한 세상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너 정도면 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하지만, 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예전보다 더 집착하는 편이다, 특히 영화쪽으로 말이다. 절대 망쳐서는 안 되고, 잘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영화를 찍든 꼭 최선을 다해서 해낼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반드시 미련도 남지 않도록 모든 전력을 다 쏟아 부어야 한다. 황백명은 항상 다양한 일에 참여하라고 하지만 다 거절한다. 난 그저 아티스트, 배우를 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저 현장에서는 감독에게 모든 걸 맡기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 내게 감독을 대신해서 뭘 고치라고 하지 말아달라. 난 그저 단순한 게 좋다!”

 

“한발 물러나서, 제삼자의 입장으로 바라보면 원래 위치에서보다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다. 난 냉정한 태도로 방관하길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을 보는 건 편해도, 자신을 보는 건 피곤한 법이다. 집에 거울을 거의 놔두지 않는다. 난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화려한 시절이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거울을 많이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예전에는 좀 그런 편이어서 집에 거울을 많이 놔뒀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가장 좋았던 것들은 모두 과거가 되었다……

 

이런 심경의 변화는 장국영이 자세히 관찰해서 솔직하게 자신의 황금기는 이미 과거형이 되어 버렸다는 걸 마음 속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첸카이거 감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지만, 이미 과거가 됐다는 걸 안다. 나의 가장 찬란했던 모습은 지나갔다. 그래서 더 이상 거울을 많이 보지 않는다. 서른 세 살 때 고별 콘서트를 할 때가 가장 빛나던 시기였다. 나보다 더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은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꾸밀 순 있지만, 다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지금은 이런 편안한 모습이 좋다. 턱시도조차도 입기가 싫다.”

 

“지금은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보든 전혀 상관하질 않는다. 이제는 실질적인 안정감을 추구한다.”

 

장국영은 지금도 여전히 노래를 좋아한다. 그만큼 중독이 심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예전보다 지금 노래 실력이 훨씬 낫다.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래서 편안하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예전에는 무조건 1등을 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그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으니 정말 좋다!”

 

어른이 되길 거부하는 장국영

 

장국영은 평소에 신문을 읽지 않는다. 신문에는 난잡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세상의 밝은 면만 보고 싶다. 하지만 신문은 절대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죽음, 인생의 고단함 같은 내용이 담긴 글을 읽고 싶지 않다. 즐겁게 살고 싶다. 놀이동산에 가서 신나는 것을 보고 만화영화를 보고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내게 롤러코스터를 타러 가자고 하면 정말 곤란하다. 격렬한 놀이기구는 딱 질색이다.”

 

깔끔하게 살고 싶은 사람

 

장국영은 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앞으로도 풍족한 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여유가 있다.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힘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돈을 써야 하는 지는 잘 안다. 난 사치를 하진 않는다. 마작을 많이 하긴 하지만, 그건 두뇌회전에 도움이 되고 돈도 많이 들지 않는다. 물론 단점도 있긴 하다. 지금은 허리가 좋질 않아 밤새도록 하진 않는다. 저녁 식사 후에 시작해서 11시면 끝낸다. 적당히 하는 편이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하면 괜찮지 않은가! 돈도 충분하니 말이다!”

 

東周刊(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