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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하이틴 1월호, 2월호

 

LAST CONCERT OF LESLIE

홍콩현지 위성취재 제1탄

서울 홍콩 긴급通信

 

지난12월21일 환호와 갈채와 아쉬움속에 막올린 장국영[고별무대]지상중계

라스트 콘서트에서 울어버린 홍콩의 귀공자

                                                  - 김승태 기자 

 지난해 갑작스런 은퇴선언으로 팬들을 경악케한 [홍콩의 귀공자] 장국영.

어쩌면 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 모르는 고별무대가 지난 12월21일

홍콩의 컬추럴센터에서 막이 올랐다. 팬들의 환호와 아쉬운 탄성속에서

흥분의 도가니를 이루었던 그의[라스트 콘서트]첫 무대에서 장국영은

기어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환호와 아쉬움 속에서 마지막 무대를 위해 열창한 장국영.

마지막 무대를 위해 지난 11월 말 영화촬영을 마친 뒤

일체의 인터뷰를 사절하고 맹렬한 연습에 들어갔던 장국영

그의 고별무대는 1월 22일까지 한 달 동안 계속된다.

 

 장국영 라스트 콘서트가 지난 12월 21일 오후 홍콩 컨트럴 센터에서 드디어 그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지난 9월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으로 그를 아끼던 팬들에게 충격을 던졌던 그의 마지막 공연은 그래서 벌써부터 팬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지난 11월 까지 '천녀유혼2'와 '아비정전'이란 두편의 영화촬영을 마친 그는 그때부터 일체의 외부의 접촉을 피하고 본격적인 콘서트 준비에 들어갔는데, 자신의 마지막 무대라는 것을 인식한 장국영은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이 무대를 준비해왔다. 이날 공연은 12월 22일부터 90년 1월 22일 까지 열리는 마지막쇼의 전야제. 그래서 장국영이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배우들과 가수들을 대거 초청, 이 자리는 마치 홍콩 연예인들이 모두 모인 듯 화려했다. 주윤발을 비롯, 성룡, 종초홍. 원표. 홍금보,유덕화 등의 동료 배우들이 그의 마지막 고별쇼를 축하해 주기 위해 왔고 또 가수 알란탐까지 초청되었다.

 장국영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가운데로 등장, 인사를 하자 장내에 모인 수천의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내며 그의 마지막 공연을 아쉬워했다. 장국영의 두 눈에서는 갑자기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장내는 아직도 떠나갈 듯한 박수소리와 환호가 그치지 않고 있었다. 한동안 마이크를 잡고 서있던 장국영이 말문을 열었다.

" 여러분 제 생애 오늘처럼 기쁜 날을 기억할 수 없습니다. 또 제게는 가장 가슴 아픈 날이기도 합니다."

 장국영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장내는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저는 이 무대를 마지막으로 연예계를 영원히 은퇴합니다. 그러나 저는 영원히 이 무대를 기억할 것입니다."

 또다시 장내는 환호와 박수소리로 가득했다. 그 때문에 장국영은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 그동안 저를 아껴준 팬 여러분, 그리고 연예계 선후배 여러분, 특히 제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노고를 아끼지 않은 매니저 플로렌스에게 오늘 제 노래를 바칩니다."

 또다시 요란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매니저 플로렌스는 조용히 앉아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독특한 저음과 허스키 보이스가 흘러나왔다. 그의 첫 노래는 '무심수면'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의 히트송을 열창하기 시작했다.

 

지난 12월 21일 홍콩에서 시작된 장국영의 라스트 콘서트는 환호와 열기의 도가니였다. 그를 아는 연예계 스타들이 모두 초청되었고, 팬들은 아쉬운 이별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스타 장국영. 팬들은 아마도 그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고별부대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다. 장국영은 온몸에 땀을 흘려 마치 비를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 여러분 나의 마지막 노래 '굿바이 마이 러브'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저를 영원히 기억해 주십시오."

장국영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조용히 전주곡이 흐르는 사이에 장내에서는 박수소리가 또다시 터져 나왔다.

" 레슬리, 레슬리 "

" 아이 러브 유 "

 관중석에서는 그의 작별무대에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장국영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고 사랑한다고 외쳤다. 눈물을 흘리며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는 팬도 있었다. 환호와 감동 그리고 아쉬움의 무대는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팬들은 한동안 돌아갈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레슬리!'를 외쳤다.

홍콩은 물론이고 전세계 음악팬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을 전해준 무대였다. 장국영은 지난 11월 말 영화촬영이 끝난 뒤 일체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오직 마지막 고별무대를 준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홍콩은 물론 한국, 일본, 필리핀, 대만, 싱가폴 등에서 그의 라스트 콘서트 티켓을 구입하려고 예매소는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을 정도. 한 달 동안 공연할 티켓이 동이났고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스크린과 무대에서 황제로 군림한 톱스타 장국영의 마지막 고별콘서트의 열기는 홍콩현지에서도 대단했다. 암표상들이 들끓고 2백달러짜리 티켓이 4백-5백 달러로 판매되기도 했다. 그 현상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방학을 이용해서 장국영의 쇼를 보러 가겠다는 팬들의 전화가 연일 빗발쳤고 어떤 열성 팬들은 티켓을 예매하기 위해 홍콩으로 떠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장국영. 그는 진정한 스타였다. 정상의 스타로서 명예로운 은퇴를 선언하고 그 약속을 지킨 남자.

이제 그는 90년 1월 22일까지 계속될 한 달동안의 공연을 마친 뒤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 이민을 앞두고 조용히 신변을 정리하겠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아쉬움을 남긴 장국영의 마지막 고별쇼. 그러나 팬들은 그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홍콩현지 위성취재 제2탄

장국영 은퇴무대 마지막날 마지막회

 

지난 1월 22일 홍콩체육관에서 열린 장국영의 [라스트 콘서트]의 마지막날 공연은 특히 멀리 한국에서 찾아간 하이틴팬의 열광적인 환호와 갈채와 아쉬움으로 시종 흥분의 도가니를 이루었다. 투유그랜드[사랑의 사연보내기]행운의 당첨 하이틴들이 직접 찾아가 만난 장국영 은퇴무대 마지막 공연현장 지상중계!

 

                                                         - 김승태 기자

 

검은 양복에 빨간 조끼를 입고 등장한 우리의 우상 장국영은 망토를 걸치고 수심에 찬 표정으로 바람이 다시 불때(風再起時)를 부르기 시작했다. 홍콩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일제히 호루라기를 불어대고 손전등을 흔들며 열광했다. 장국영도 자신의 마지막 무대를 느낀 탓인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레슬리 레슬리'

 1월 22일 오후 8시 20분. 장국영의 은퇴공연 마지막회가 열리는 홍콩체육관에는 멀리 한국에서 찾아간 15명의 하이틴 팬들의 열광적인 함성으로 흥분의 도가니를 이루었다.  이들 학생들은 장국영이 자신의 고별무대에 특별 초청한 한국의 하이틴들. 동양제과의 투유 그랜드 '사랑의 사연보 내기' 행사를 통해 뽑힌 행운아들은 장국영이 현란한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로 등장하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검은 양복에 빨간 조끼를 입은 우리의 우상은 망토를 걸친 수심에 찬 표정으로 첫 노래인 '풍재기시'를 부르기 시작했다.

 체육관을 꽉 메운 관중들은 일제히 호루라기를 불어댔고, 손전등을 흔들면서 열광하기 시작했다.

무대는 우리나라 공연장과는 달리 관중들이 빙 둘러앉아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든 중앙무대였고 장국영이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동안 무대곳곳에 설치된 카메라와 대형 스크린은 어느 방향에서나 그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게다가 컴퓨터로 조정되는 현란한 조명은 무대를 더욱 화려하고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이날은 장국영의 마지막날 공연이었기에 더욱 뜻깊은 무대였다. 지난 12월 22일에 시작된 그의 공연은 이날로 35일째를 맞았는데 이것은 이제 다시는 장국영을 무대에서 볼 수 없음을 뜻하기에 체육관을 꽉 메운 관중들은 큰 슬픔과 아쉬움 속에 더욱 열광에 열광을 거듭했다. 장국영은 사회자가 없이 진행된 그의 무대에서 자신이 은퇴하게 된 이유와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마지막 공연이라는 생각에서인지 장국영은 한 곡 한 곡을 부를 때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열창했다. 마치 파도가 몰려오는 것처럼, 폭풍이 휘몰아치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다가도 갑자기 연인에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듯 노래하며 온 몸에는 흥건히 땀이 흘러 팬들은 안타깝게 하기도.

'무심수면' 의 전주곡이 장내에 흘러나오자 장국영은 무대 주위를 빙 돌아가며 한 사람 한 사람씩 손을 잡아 주었다. 어떤 팬들은 한 아름의 꽃다발을 그에게 선사하며 눈물을 흘리고, 또 어떤 팬은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아당겨 경호원들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곳곳에선 플래시가 잇달아 터졌다.  장국영은 33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거의 쉰 목소리로 온 정성을 다해 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여러분은 제가 은퇴를 하고 나면 저를 잊으시겠지요?"

 노래 도중 장국영이 팬들을 향해 이렇게 속삭였다. 핸들은 일제히 "아니요!"라고 큰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현란한 춤과 율동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장국영의 마음은 그대로 팬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3시간동안 열광적인 음성과 동작으로 팬들은 즐겁게 한 장국영. 그가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무대 아래로 사라질 때까지 체육관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함성은 꺼질 줄 몰랐다.

불꺼진 무대. 아쉬운 마지막 공연. 장국영은 이제 영원히 무대에 서지 않는 것이다.

 

"멀리 한국에서 제 공연을 보러 오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오늘 이후에 제가 무대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저를 영원히 기억해 주세요" 은퇴 발표이후 그 누구와의 인터뷰도 거절해오던 장국영이지만 자신이 초청한 한국팬들은 잊지 않고 불러 자리를 함께했다.

 

공연이 끝난 무대 뒤. 한국에서 온 하이틴 팬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은퇴발표 이후 홍콩의 기자들은 물론이고 그 누구의 인터뷰도 거절 해 오던 장국영이 특별히 시간을 내어 이들과 만난 것이다. 무대 뒤 장국영의 방은 그동안 팬들로부터 받은 갖가지 선물로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 인형과 사랑의 시를 적은 액자. 브로마이드와 사탕. 초콜릿 등이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잠시 후 장국영이 이들을 만나기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이번이 자신이 팬들과 첫 번째 만남이라는 말을 했다.

" 멀리 한국에서 이곳까지 제 공연을 관람하려고 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오늘 이후 제가 무대 위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고 저를 영원히 기억해 주세요 "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준 장국영은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에 흔쾌하게 포즈를 취했다. 비록 짧은 만남 이었지만 이날 공연에 참석하고 또 장국영을 직접 만난 이들은 모두 흡족한 마음이었다.

홍콩의 귀공자 장국영. 그는 마지막 공연을 자신이 초청한 한국팬들을 위해 노래했고, 또 팬들과 가진 천 만남과 사진촬영까지 모두 한국팬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은퇴발표 이후 매스컴의 요청을 한번도 응하지 않다가 만난 최초의 기자가 하이틴 기자라는 이야기도 덧붙이면서.......

 


- 90년 2월호 포토뮤직

독자긴급요청 - 홍콩 현지취재

장국영, 33세 그의 마지막 콘서트,,

 

 

지난해 9월 은퇴선언으로 그를 사랑하던 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졌던 장국영-,

수려한 외모에 고급스런 허스키 보이스로 가수로나 배우로나 인기의 절정에 있었던 그가 돌연 은퇴를 발표했을 때 '설마..''인기 작전이 아니냐'' 매니저와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닐까'하는 추측들이 무성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은퇴는 사실로 굳어져갔고, 은퇴 발표시 약속했던대로 고별 콘서트를 통해 마지막 만남을 이루게 됐다. 국내에서도 인기의 절정을 누리고 있는 장국영-, 그의 마지막 콘서트를 보고싶어 하는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본지는 홍콩 현지에 취재팀을 급파, 콘서트의 실황을 중계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밤의 이 성원에 정말 감사 드립니다. 1990년을 시작하는 오늘, 제일 좋은 쇼를 꾸밀 것을 약속합니다. 제 생애에 이토록 넓은 무대는 처음입니다. 제가 여러분 곁에서 떠나는 이 무대를 위해 지난 반년동안 콘서트를 준비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 콘서트를 처음 준비할 때만해도 여러분과의 고별을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저 역시 매우 아쉬운 무대이죠. 제 나이 33세에 맞춰 33번의 콘서트를 하고 싶었으나, 어느 팬이 '그렇다면 80세에 고별을 하라'는 통에..(웃음)"

 이렇게 인사말로 시작된 콘서트는 그의 말처럼 그의 음악생활을 총정리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무대였다.

 

홍콩체육관에는 장국영의 열기로

 

 홍콩 구룡의 해변가에 자리잡은 홍콩체육관-. 회부에서 무심코 본다면 우리네 장충체육관이나 잠실실내체육관처럼 농구나 배구등의 실내경기로 열기가 가득찰 것 같은 비슷한 인상의 평범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이 홍콩체육관으로 말하자면 홍콩은 물론 동남아나 일본의 가수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라이브 콘서트의 메카이다. [아니타 무이]라든가 우리가 잘아는 [앨런 탐], [Kylie Minogue]의 콘서트도 이곳에서 열렸을 정도로 홍콩인들에게는 인기스타들의 콘서트장으로 인식되어 있는 곳이다. 홍콩체육관측도 이런 설정을 충분히 이용하여 일정 수준급의 연예인이 아니면 아예 대관을 안해줌으로 지명도를 유지시켜 이곳에서 콘서트를 가진다는 것 자체만도 가수로는 큰 영광으로 여긴다고.

 20여일간의 콘서트 기간중, 절반 쯤에 해당되는 1월 1일. 오후 8시에 시작되는 콘서트의 현장 주변은 공연 한 시간전부터 장국영의 열기로 가득 찼다. 1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팬들은 대부분 가족중심으로 드물게는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의 3대가 함께 온 가족도 눈에 띄였다.

 홍콩은 동남아 연예산업의 중심지답게 연예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 많은 관중들이 여유롭게 질서를 지켜나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홍콩체육관 콘서트 현장. 일류 개봉관의 안락의자만큼이나 편안한 의자와 바닥의 카페트가 쾌적한 느낌을 준다. 실내의 20,000석의 전체를 안락의자로 배치하고 어느 한곳도 시선의 장애물 없이 중앙의 무대로 집중되도록 되어있었다.

 장국영의 히트곡들이 경음악으로 잔잔히 흐르며, 늦게 도착한 팬들의 좌석정리로 10여분의 경과되고 밝았던 실내가 어두어진다.

 8시 15분-

 1~2분 동안의 어둠을 뚫고 무대의 한가운데서 리프트 스테이지를 통해 장국영이 [그대를 생각하면]을 부르며 솟아오른다. 침묵을 지키며 장국영의 등장을 기대하던 20,000여 팬들은 일제히 박수와 환호로 그를 반겼다. 가수생활 14년의 마지막을 알리는 고별 콘서트의 열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장국영의 은퇴는 홍콩 현지에서도 커다란 파문이었다. 한 사람의 연예인이 최고의 스타로 성장하기까지도 대단한 일이겠지만 인기의 절정에서 단칼에 무자르듯 은퇴를 선언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매번 경쟁상대와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 스타라면 부상이나 체력한계를 이유로 명예로운 은퇴가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연예인은 최고의 절정기 이후라도 그 후광은 10년도 20년도 갈 수 있거나 또 다른 히트작품으로 정상탈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의 은퇴를 두고 매니저와의 불화니 그의 강력한 라이벌 앨런 탐과의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느니 하는 무성한 소문도 그 어려운 은퇴 결심을 쉽게(?)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장국영의 은퇴 배경은 철저히 장국영 자신과 그의 집안문제 때문인 것으로 귀결 지어지어있다.

 홍콩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쯤에 해당하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서는 집안으로 들어가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화려했던 연예생활도 마무리지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낸 듯하다.

 장국영도 연예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남자. 남자로의 야망이 연예계에 처음 발을 디딜 때 목표였던 '최정상 점령'의 꿈을 이루고는 더 큰 사업가로의 야망으로 전환했다고나 할까.

 장국영의 아버지 사업은, 그 동안 아버지 혼자 꾸려나가다가 장국영 누님(홍콩에서는 유명한 사회사업가로 알려져 있다)이 일부를 물려받고 있는데, 누님이 아버지의 사업을 계승받는데 자극을 받고 은퇴시기를 앞당겼다는 게 거의 정설로 현지에선 굳어지고 있다.

 

섹스어필의 장국영, 스트립쇼(?)

 

 장국영의 무대는 시종 정(靜)과 동(動)이 적절히 조화된 탄력 있는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그 특유의 미성으로, 속삭이는 듯한 노래로 장내를 숙연하게 하여 그의 노래에 몰입하다보면 곧이어 현란한 조명을 받으며 스무명이 넘는 댄싱팀이 출연, 그들과 함께 어울려 화려하고 격정에 찬 댄스 스테이지를 연출하는 등 잠시도 무대에서 한눈을 팔지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stand up][愛的兇手][奔向未來日子][當年情] 등 그의 대표곡과 함께 격정의 노래들이 끝나며 무대는 다시 지하로 스며든다. 그 무대와 함께 무대밑으로 퇴장하는 장국영은 격렬한 몸놀림과 열창에 몹시 무더운 표정을 지으며 마치 스트립쇼라도 펼쳐 보일 듯 자신의 상의를 하나씩 하나씩 벗어나가기 시작했다. 재킷의 소매 하나 하나를 벗고는 안에 받쳐입은 스웨터를 벗어 던지고, 스웨터속에 입었던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 헤치며, 조금씩 조금씩 상반신의 맨살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드디어는 어깨부분이 노출되고 상반신 전체가 노출되는 순간, 가라앉는 무대와 함께 그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이 광경을 숨 죽인채 지켜보던 관중들은 기성과 환호와 탄식을 지르며 흥분의 도가니였다.

 장내는 홍콩의 팬들이 대다수였지만 간간히 서양쪽의 얼굴도 보이고 일본, 싱가폴, 대만은 물론 여기저기에 국내의 장국영 인기를 입증이라도 하듯 한국의 팬들도 눈에 띄었다.

 23일간 계속되는 장국영 고별 콘서트는 2만석에 달하는 홍콩체육관을 매일 만원사례로 만들었는데, 컴퓨터에 의해 발매되는 예매 티켓이 단 한 장의 여유도 없이 완전 매진되기는 이 콘서트가 홍콩에서도 처음이라고 한다.

 장국영의 고별 콘서트는 캐주얼회사인 '보시니(Bossini)에서 단독후원을 하고있는데 대관료라든가 진행비, 홍보비등 콘서트에 관계되는 모든 경비를 보시니측에서 부담하고, 장국영은 입장수입의 전액을 갖는다. 홍콩의 매스컴들은 장국영이 이 고별 콘서트로 100억원(한화) 이상의 수입이 확실하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리프트 스테이지를 타고 다시 장국영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의상도 더 화려하게 바꿔입고 검정색 선글라스까지 쓰고 그의 출세곡이기도 한 [無心睡眠(잠 못 이루는 밤)]을 부르며, 장내는 다시 '레슬리' '레슬리'의 연호로 가득찼다.

 노래가 끝나자 장국영은 자신의 무대보다 50센티미터쯤 아래편에 위치한 오케스트라석으로 다가간다.

 "매일밤 이 시간이면 여러분과 인사를 합니다. 특히 이 무대를 위해 지난 6개월동안 피땀어린 고생을 같이해준 무용단에게 감사합니다. 저하고는 벌써 여덟 번이나 함께 무대를 꾸몄는데 나에게 댄스를 가르쳐줬고 긴 기간동안 많은 정이 쌓여 지금은 남매나 다름없는 이들입니다. 우리 오케스트라의 리더인 마이클 라이를 특별히 소개합니다. 이 분은 내게 과연 음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고 내 노래의 대부분을 써 주신분입니다."

 스무명이 넘는 오케스트라를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하며 특히 리더이자 피아니스트인 마이클 라이에 대해선 10분 이상의 걸쳐 자신의 데뷔 당시의 이야기부터 그동안의 고마웠던점, 에피소드등으로 정담을 나누었다.

 마이클 라이는 장국영으로 본다면 자신의 음악에 관한 은인인 셈이다. 무명이었던 장국영을 실질적으로 픽업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악단장으로 있던 홍콩 ATV에 출연을 시킨것도 그였고, 화려한 장국영의 무대 뒤에서 항상 그의 음악적 기초를 지탱해줬기 때문이다.

 

- 콘서트 현장에서 만난 팬

 콘서트장에서 시종 열정적으로 환호하는 여자 팬 트리오를 만났다. 콘서트 현장에서는 열광적으로 손을 흔들고 괴성을 지르며 눈물까지 흘려대던 그녀들이, 막상 취재차 인터뷰를 요청하자 새침

떼기 숙녀로 돌변하여 기자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한다는 그녀들은 같은 직장의 동료 사이로 왼쪽부터 Miss Kathy Yong, Miss Wenny Fan, Miss Sonny Lee. 한결 같이 나이는 밝히질 않았다.

Kathy Yong

 "레슬리의 노래는 정말 매혹적이지요. 그의 노래에 열중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예요."

Wenny Fan

 "콘서트를 통해서나 텔레비젼을 통해서 보면 항상 스테이지 매너가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Sonny Lee

 "멋있고, 잘 생겼고, 노래 잘하고, 게다가 섹시하고...레슬리가 은퇴한다니까 정말 죽고싶을 정도예요."

 

은퇴는 오직 저의 뜻입니다

 

 

 다시 장국영의 노래는 계속되고, 300평에 가까운 정방형무대를 사방의 청중을 위해 장국영은 어느 한쪽의 방향도 소홀히 하지 않은채 악수하며 손짓하며 노래를 했다.

 'The Way We Were'-, Babra Streisand의 노래로 잘 알려진 이 노래를 장국영이 불렀을 때 이제야 그의 마지막 무대라는 것을 의식한 관중들은 아쉬움속에서 여기저기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팬 여러분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이 무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의 은퇴결정은 아무에게도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오직 저의 뜻이며 오늘같이 제일 많은 박수속에서 떠나고 싶습니다. 앞으로 아주 평범하게 살고 싶으며 미래에는 사업가로 나설 계획입니다. 물론 제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영화와 피아노도 더 공부하고, 형편이 된다면 제 취향에 맞는 커피숍도 하나 갖고 싶습니다."

 그의 고별사였다. 숨을 죽이고 장국영의 이야기를 듣던 2만여 관중들은 일제히 '재회(再會)' 재회...'를 외치며 그의 퇴장을 만류하는 가운데 장국영은 '이제 떠나갑니다'라는 공손한 인사를 하며 처음 출연하던대로 리프트 스테이지를 통해 무대밑으로 사라졌다. 장내는 완전한 어둠속에 마이클 라이 악단의 장국영 히트송 잔잔히 흐르고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이 때 2만명의 관중이 일제히 '레슬리'를 외쳐댔다. 누구의 지휘도 없이, 꼭 같은 목소리로 '레슬리' '레슬리'를 외쳐대길 수분-. 칠흑같은 어두움속의 무대 중앙에 위치한 리프트 스테이지는 마치 기적이라도 재현하듯이 무대에서 3m 이상을 치솟았다. 물론 그 무대에는 장국영을 싣고, 앵콜의 무대는 감동의 순간으로 이어졌다. 솟아오른 무대 사이로 강렬한 조명이 비춰지며 그는 마치 어느 신(神)의 강림과도 같은 신비스런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카네이션 한송이를 은퇴선물로

 

앵콜송은 세곡이 더 이어졌다. 그 중에서도 진정한 그의 마지막 노래는 이 콘서트를 위해 만들어 졌다는 [바람이 있을때]로, 이날의 감동을 영원히 기억하기에 충분한 노래였다.

 바람이 있을때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은퇴곡이었단{My Way]를 연상시키는 노래로 강약이 적절히 조화되어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인상 깊은 곡이었다.

 이곡의 크라이막스-. 무대 사방에서 지금까지 출연했단 20여명의 댄싱팀이 갑자기 왕자와 공주로 분장을 하고 나타났다. 양손에 빨간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장국영은 2만여 관중으로 둘러싸인 무대 주위를 일일이 돌며 환호하는 관중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정성스레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손을 내미는 팬들에게 악수를 하고 꽃 한송이씩을 나누어주고 노래를 끝내가며 다시 리프트 스테이지를 따라서 은퇴를 상징하듯 무대 밑으로 사라졌을 때는 아쉬움을 간직한 전 관중의 기립박수만이 남아있었다. 이때의 시간이 밤 11시. 장국영의 고별 콘서트가 끝난 시간이었다.

 

- 콘서트현장의 안전요원들

 우리말로 하면 신분증쯤에 해당되는 '工作證'을 패용하고 정문에 도열해 있는 안전요원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 초반의 남,녀로 이 행사의 단독협찬회사인 '보시니'의 짙은 감색옷을 통일되게 입고 있었는데, 비교적 부드럽게 관중을 통제하는 편이었고 사전에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콘서트현장인 홍콩체육관의 출입문 다섯곳 외에도 무대주변, 장내의 통로등 곳곳에 줄잡아 100명 이상의 인원이 안전관리 및 안내의 일을 하고 있었다.

 

멋있는 은퇴가 그를 더 스타로 만들었다.

 

 장국영의 고별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계획된 무대였다. 넓은 무대를 이용하여 팬들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연출한것도 그렇고, 무대의 조명, 무대 장치, 백밴드, 백댄싱까지 관중들의 흥미유발을 철저히 계산하여 세시간에 가까운 콘서트를 흥분과 감동으로 유도시킨 것이었다. 심지어는 단순해 보이는 옷한벌 벗는 일까지도 시간과 행동이 철저히 계산되어 다음 행동과 상관 관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무대 사방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입퇴장하는 무용단도 정확히 계산되고 절제된 가운데 한가지 한가지의 행동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노래 위주의 국내 콘서트에 익숙해있는 우리 입장에서 여러모로 본받을 점이었다.

 관중들의 매너 또한 본받을 만 했다. 노래가 끝나거나 시작할 때면 열광적으로 환호를 하다가도 노래중이라든가 장국영이 이야기를 할 때는 전혀 소리내는 법 없이 경청하고 필요할 때만 박수를 치는 등 콘서트를 즐기면서도 전체의 분위기를 위해 자제할줄 아는 좋은 매너였다.

 홍콩과 동남아는 물론 국내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장국영은 이제 은퇴의 길로 들어섰다.

 인기의 절정에서 은퇴를 함으로 더 인기가 치솟고, 치솟는 인기만큼이나 아쉬움을 주고 있는 장국영..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1년 후쯤 캐나다의 어느 도시에서 [Leslie Cheung Coffe Shop]이라는 상호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은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새로운 장국영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 장국영 영상집 있어요

국내 콘서트 현장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국내의 모습하고 다르다면 판매하는 사람들이나 사는 사람들이 모두 적극적이라는 점. 활짝 웃으며 판매하고 있는 이 친구가 들고 있는 영상집은 장국영 은퇴를 기념하는 영상집으로 두 번째쯤에 해당되는 것으로, 첫 번째 나왔던 영상집은 나온 지 사흘만에 완전 매진이 됐고, 이 영상집은 그 수에 만들어진 것이다. 판매하는 청년의 뒤에 붙여놓은 것은 '장국영 은퇴기념 세트'로 이 청년의 왼손에 들고 있는 종이 가방 속에 담겨있다. 장국영 캘린더,브로마이드,사진들로 채워져 있는데 한세트에 우리 돈으로 12,500원쯤 되며 영상집은 9,000원쯤 된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지금부터 3년전, 나는 가장 좋은 노래 가장 좋은 뮤직 비디오, 가장 좋은 콘서트를 내 능력껏 다해서 만족을 줄 수 있는 1,000일을 친구들에게 바치겠다고 신문지상에서 발표했었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정성을 다해 친구들에게 진정 만족을 주도록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 '89년이 저물고 난 뒤 돌이켜보니 나의 그 약손은 지켜지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나의 가수 활동은 불만스러운 나날들뿐이었단다. 지난 13년 간 나는 수많은 노래들을 불렀고 또 많은 출연을 했지만 그 노래와 모습들이 친구들에게 인상깊게 남았는지는 모르겠구나.

 지금 무대를 떠나기 전날 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황홀했던 어제 일들이 천만가지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지니 지금의 심정은 그저 착잡하기만 하구나.

 그동안 친구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관심이 없었다면 나의 기억들이 이렇듯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친구들에게 고별을 고하고 나니 슬픈 마음을 떨칠 수가 없구나.

 언젠가는 새로워진 나의 모습으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번 무대에 서고싶다. 그때는 지금의 내가 아닐꺼라는 생각을 하니 지금의 내가 더욱 아쉬워지지.

 시간은 흘러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라지만 나에게는 이제 중요하지 않단다. 왜냐하면 이미 내가 분명하게 남아있는 이 순간이 가장 좋기 때문이지.

 지금 이 순간 노래에 바친 나의 모든 것을 너에게 바친다.

 

 너의 영원한 기쁨을 빌며...

 

*장국영은 은퇴를 위해 이 인사말을 준비하고 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다분히 감상적이기도 한 이 인사장은 장국영의 심정을 솔직히 표현한 것으로 그의 친필로 되어있다. 자신의 팬들을 '친구'로 표현하고 있는데 원본을 요약 번역하여 소개한 것이다. (편집자 주)

 


- 90년 2월호 스크린

독자요청 홍콩특파현지취재 장국영 고별콘서트 현장

LESLIE FINAL ENCOUNTERS

"안녕, 안녕, 저를 기억하시렵니까?

 

 

<영웅본색><천녀유혼>으로 한국 소녀팬들이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장국영이 모든 연예계 활동으로부터 은퇴를 선언하는 마지막 무대에 섰다. 작년 12월 21일부터 금년 1월 22일까지 한달간 하루도 쉬지않고 매일 밤 8시 홍콩체육관에서 계속된 장국영의 고별콘서트. 눈물을 보이며 '바이 바이'를 고한 그 현장을 상세하게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뉴 월드 호텔에 걸린 고별 콘서트 대형 프랜카드

 

 

 홍콩의 거리는 관광객들과 홍콩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그 중에서도 호텔들이 집중적으로 모여있는 침사추이 거리. 뉴 월드호텔에 걸린 두 개의 대형 플랭카드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하나는 1월 26일 첫상영을 앞둔 영화<배트맨>의 포스터였고 나머지 하나는 장국영(Leslie Cheung)의 고별 콘서트(Leslie Final Encounters)의 포스터. 이렇듯 이 둘은 홍콩 연예계의 두 커다란 이슈였다.

 장국영의 고별 콘서트 티켓은 홍콩 시내 곳곳에 있는 탐 리 음악사(Tom Lee Music Co.)와 콘서트장인 홍콩체육관에서 판매하고 있다. 티켓에는 200불, 150불, 100불(홍콩달러)짜리 3가지가 있는데 기자가 티켓을 사러 구룡에 있는 탐 리 음악사에 갔을 때 이미 200불짜리 좌석티켓은 다 매진된 상태였고 토요일(13일)과 마지막 날(22일)은 모든 티켓이 매진이었다.

 장국영의 고별 콘서트는 작년 12월 21일부터 금년 1월 22일까지 매일 밤 8시 하루도 쉬지 않고 한달간 계속되었다. 장소는 구룡역 옆에 위치한 홍콩체육관(Hong Kong Coliseum).(우리나로 치면 잠실체조경기장과 같은 곳이다).

 구룡역에서 지하도를 따라 한 10분정도 걸어서 닿는 홍콩체육관 안팎에는 수십명의 안내원들이 출구와 지정된 좌석으로 안내를 하고 있었으며 공연장 입구에서는 포스터, 장국영의 기념 포토앨범등을 팔고 있기도 했다. 주 중인 목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맨 윗좌석까지 거의 다 찬 상태였고 이는 다음 날도 같았다.

 

화려한 무대장치, 대형화면 그리고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

 

 무대는 중앙에 정사각형으로 설치되어져 있는데 이를 두 개의 삼각형으로 나누어 한편에는 밴드석이그리고 나머지 한편에는 메인 스테이지로 되어져 있다. 그러나 장국영이 사방을 다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어느 면에서도 무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져있다. 특히 무대 중앙 천장에는 4개의 대형 화면이 설치되어져있어 맨 윗좌석에 있는 관중일지라도 그의 근접한 정면 모습을 항상 볼수가 있도록 배려되어져 있었다.

 드디어 불이 꺼지고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레슬리의 등장.(체육관을 향해 오면서 호루라기장사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알고보니 홍콩 관중들은 괴성을 지르는 대신 호루라기를 사용하였다.) 검은 망토를 두른 레슬리가 무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스테이지와 함께 등장하며 부른 첫 곡은 <Loving You. 위니종정>. 마침 이날 밤 자신의 콘서트에 와준 모든 관중들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을 하는 듯했는데 관중들은 한 곡 한곡이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호루라기로 열심히 환호를 했다.

 망토를 벗은 보라색 자켓 차림으로 서너곡을 연달아 부른 레슬리는 관중들에게 '오늘 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기를 바란다'는 첫인사말을 건넸다.

 다음은 <Against The Cold Night><Black Is The Night 흑색우야><Hot열랄랄>등의 곡들을 여자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순서. 매우 오래 연습을 한 듯 노래와 춤, 조명 등이 잘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이날 밴드의 지휘자는 마이클이었는데 레슬리와 그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레슬리가 부른 팝송인 <American Pie>를 마이클이 편곡해주면서였다고. 그 당시의 얘기를 하며 마이클이 작곡한 노래 <Not Afraid of Lonely><I Do>등을 마이클이 연주하는 피아노 위에 앉아서 불렀다.

 

열광의 도가니속, 와이셔츠를 벗어제치다.

 

 

 계속 마이클 메들리가 이어지면서 레슬리가 관중석으로 내려왔다. 무대에서의 레슬리와의 마지막 만남을 고대하던 관중들은 레슬리와 악수를 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예상보다 매우 질서정연했는데 가끔은 극성팬들이 그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거나 악수한 손을 놓지않아 안전요원들이 이를 제지해야 했다. 사방을 다 돌고 무대 위로 올라온 장국영은 손이 아픈 시늉을 하며 엄살을(?) 떨기도 했지만 앞으로 다가온 관중들은 거의 빠짐없이 악수를 해주는 그의 모습이 매우 성실해 보였다. 이 부분에서 그가 부른 노래들은 <Blue Worries><Sa Yu Na Ra소녀심사><Fickle Love><Monica>로 빠른 템포의 곡들이다. <Monica>를 끝으로 조명이 어두워지며 조용한 곡들을 주로한 솔루트 메들리(Salute Medley)가 이어졌다. <Childhood><As Years Go By><Wish We'd be Together>등 노래가 끝나자 매우 땀을 많이 흘린 듯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을 마신 레슬리가 스탠드마이크을 들고 무대 중앙으로 나섰다. <Admiration><Thinking of You상니>를 부르며 그는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르기 시작,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며 로맨틱한 분위기에 사로잡힌다는 노래가사를 음미하듯 그는 풀어제친 와이셔츠 속으로 자신의 손을 집어넣으면서까지 분위기에 도취된 듯했다. 이 부분은 콘서트중 관중들이 가장 열광했던 씬(?)이기도 하다. 내려가는 스테이지에 몸을 싣고 사라지면서 급기야 그는 와이셔츠를 허리까지 벗어버렸다.

 

다양한 연출로 관객들의 연이은 탄성

 

 그의 두번째 등장의 첫 곡은 빠른 댄스뮤직<Breakaway>. 철로 된 장식들이 요란한 가죽옷에 검은 선글래스를 쓰고서 십여명의 남녀 무용수들 틈 속에 나타난 레슬리는 다이내믹한 율동을 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계속 빠른 비트(beat)의 음악이 이어지면서 레슬리는 밴드 스탭들을 소개했다. 이번 콘서트의 밴드는 베이스 기타, 드럼, 신서싸이저, 리드 기타 20여명으로 이루어져있었고 3명의 여성과 남성으로 구성된 백보컬이 노래의 화음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Without Restrain>을 부르며 계속된 이 밴드 스탭들의 소개는 모든 스탭들의 소개가 끝나자 레슬리를 포함 갑자기 약 30초간 음악과 행동을 정지하고 있어 관중들에게 환성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출한 쇼진행감독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다음곡은 우리에게도 낯익은 <Sleepless Night무심수면-잠못이루는밤>. 사방을 돌며 노래가 끝나자 무대의 4곳에서 관중석을 향해 조명등이 날아가 다시한번 관중들의 환성이 터져나왔다.

 

"안녕, 안녕, 저를 기억하시렵니까"

 

 조명이 꺼진 사이 금실로 수놓아진듯한 화려한 의상으로 나타난 레슬리는 <천녀유혼>의 주제가를 포함 조용한 노래들을 불렀다. 관중들은 잠시 전 날라들어와 주운 조명등을 박자에 맞추어 흔들며 노래의시작과 끝을 뜨거운 박수로 맞아주었다. 빠른 템포의 곡인 <Miss You Much>를 8명의 남성 무용수들과 함께 부른 레슬리는 다시 조용한 노래 <Will You Remember Me유령개시>를 부르면서 스타로서의 자신의 지난 날들을 이야기했다. 처음에 자신의 이름이 바비(Bobby)였는데 어린애같고 우스운 이름이어서 레슬리로 바꾸었으며 은퇴 후에 커피샵을 할까 생각 중이라고. 또 지금짜기 자신의 매니저로 따뜻하게 보살펴준 플로렌스 챈을 관중들에게 소개하며 감사하다는 말도 했다. 그는 플로렌스를 마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만약 플로렌스가 진짜 어머니였다면 그녀의 체구가 너무 작기 때문에 아기였을때 우유얻어먹기가 힘들었을거라는 농담도 하며.

 다음 곡은 지금까지 여러팬들의 사랑과 보살핌에 감사하다는 내용의 <Thanks for Accomparing me>. 이 곡을 부르면서 목소리가 울먹이던 레슬리는 노래를 마치자 관중들이 건네 준 꽃다발들을 들고서 무대를 다시 한번 돌고 난 후 <Will you Remember me>의 연주와 함께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환상적인 화이널 스테이지, 연기와 함께 사라지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깜깜한 공연장에 "앙콜"과 "레슬리"를 외치는 소리가 점점 높아지자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며 앙콜무대가 시작되었다. 앙콜무대의 첫 곡은 <Star명성>, 위아래 흰색인 양복을 입고 레슬리가 무대위로 나타나기 시작하자 천정에 불이 켜져 마치 하늘에 수많은 별들을 뿌려놓은 듯 했다. 스테이지의 조명도 같이 푸르고 노란 빛의 조명이어서 매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는데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과 같이 자신도 영원히 팬들의 마음 속에 남아있기를 바란다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다. 눈물을 흘리며 그는 자신이 은퇴를 하는 이유를 관중들에게 말했다. "지금 나의 스타로서의 명성은 탑입니다. 최고일 때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 별과 같이 여러분의 머리 속에 오래토록 남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결국 흘러내리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듯 눈물을 보였다.

 눈물을 흘리며 <The Way We Were><The Wind Blows Again>등 두 곡을 부른 레슬리는 흰색 옷들을 입고 등장한 무용수들과 함께 관중들에게 붉은 카네이션을 던지며 무대를 마지막으로 돌고 난 후 연기와 함께 무대 밑으로 사라졌다.

 

완벽한 무대진행과 쇼연출, 다양한 기념품들

 

 공연히 끝난 후 관중들은 매우 질서정연하게 퇴장했다. 완벽한 무대진행과 쇼연출, 질서를 잘 지키는 관중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 무대인만큼 혼신을 다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레슬리의 무대 매너, 이러한 것들이 공연을 본 후의 소감이었다. 옆에 앉아서 공연을 본 홍콩의 두 남녀 대학생들도 공연이 "훌륭했다(excellent)"고 평했는데 자신들은 레슬리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의 마지막 고별무대를 보기위해 왔다고 말했다. 그의 은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레슬리 개인을 위해서 최고정상인 지금 은퇴하여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같다고 말하기도.

 공연장 밖의 지하도에서는 그의 고별콘서트를 기념하는 사진들과 열쇠고리 등을 파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는데 대부분 십대 청소년들이었다. 사진의 경우 자신들이 공연장에서 찍은 것을 파는 것이었는데 사진 3장에 우리나라 돈으로 2천원 정도에 팔리고 있었다. 이번 레슬리의 고별콘서트는 의류회사인 보시니(Bossini)의 후원이기도 한데 보시니에서는 그의 고별콘서트 포스터가 새겨진 티셔츠를 판매하고 있었다. 점원 아가씨에게 레슬리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레슬리는 십대 청소년이 좋아하는 스타라며 자신은 알란탐과 아니타 무이(매염방)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점원의 나이는 22살이라고 했다).

 홍콩에 가기 전부터 레슬리와의 인터뷰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현지에 가서도 이는 불가능했다. 공연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하루에 30~40여곡을 불러야하고 공연에만 신경을 쓰고싶기 때문에 모든 인터뷰를 사절한다는 것이 레슬리의 전속회사나 매니저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결국 레터 인터뷰만이 가능했다.

 

- Letter Interview

- 고별 콘서트가 끝난 후 가장 먼저하고 싶은 일은?

  "너무나도 피곤하기 때문에 외국에 가서 쉬고 싶다."

- 은퇴 후 미국에 가서 영화공부를 할 계획이라고 들었는데.

  "그렇다. 아마 뉴욕으로 갈 것 같다."

- 당신의 마지막 영화인 <천녀유혼2>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지막 영화로서 이 영화에 만족하는가.

  "매우 훌륭한 영화이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 영화는 <천녀유혼2>가 아니라 <아비정전>이다."(레슬리의 매니저에게 영화<아비정전>에 관해 문의하자 아직 출연히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줄거리나 역할에 대해 말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만약 출연한다면 콘서트가 끝난 후 촬영이 시작될 것이라고)

- 한국에서 초콜릿 CF가 매우 성공적이었는데 이에 대한 소감은?

  "한국에서 CF광고를 찍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매우 기쁘며 함께 일한 스탭들이 훌륭히 해냈다고 생각한다."

- 캐나다로 이민 갈 계획인가?

  "아직 결정 안했다."

- 지난 번 서울에 왔을때 매니저인 플로렌스 챈이 한국영화에 출연하지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그 이후 취소되었다. 왜인가.

  "스케줄이 너무 타이트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 고별콘서트에 대한 소감은.

  "이번 고별콘서트는 내게 매우 큰 의미이며 모든 순간이 보물과도 같다."

- 은퇴이유를 다시한번 이야기해주겠는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라고 느꼈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 결혼을 하기 위해 은퇴하는 것이라는 소문도 도는데.

  "아니다. 사실이 결코 아니다."

- 스크린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만사형통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 All the best to screen readers & Happy 1990 "

 


- 90년 2월호 로드쇼

 

DIRECT DOCUMENT from HONG KONG

홍콩현지 특별취재 현장 콘서트 라이브

 

33살의 장국영. 그는 이제 우리곁을 떠나고 없다. 영웅본색으로 우리에게 다가와서 홍콩고별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떠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레슬리를 잊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귀공자처럼 수줍게 미소짓던 그 얼굴은 신화처럼 우리마음속에 머물것이기 때문이다. 굿바이 레슬리.

 

 

SPECIAL EDITION

" 마지막 콘서트를 여러분께 바칩니다! "

 

장국영, 은퇴후 전격결혼!

最後的離別, 張國榮

 

그것은 안타까움과 격정과 열광과 눈물의 도가니였었다. 그의 나이와 똑같은 숫자인 33회의 콘서트는 결정되었다. 지난 12월 21일부터 1월 23일까지 열린 장국영의 고별 콘서트. 본지취재에 의하면 그는 은퇴후 결혼할 것이 확실함이 밝혀졌다. 그의 애인에 관해서는 여러설이 일고 있지만 미국시민권을 가진 여인이며 친구의 동생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은퇴결심도 이여인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재산을 정리해 미국으로 이민가서 유학생활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영원한 라스트 콘서트를 본지는 다큐멘터리형식으로 보도하여 직접보지 못한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해 본다.

 

 

 12월 21일은 장국영에게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이날이 바로 그가 13년의 화려한 연예생활을 청산하는 고별콘서트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의 콘서트가 열린 곳은 구룡의 침사초이에 위치한 바다가 보이는 대형 체육관에서 열렸다. 1만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홍콩체육관은 연일 입추의 여지가 없이 맨끝자리까지 그의 팬으로 가득찼고 콘서트의 규모와 무대, 조명등은 장내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무대는 사방의 팬들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중앙에 위치한 콜롯세움의 원형이었고 멀리있는 팬들을 위해서 중앙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1만 2천 관중과 함께 호흡

 

 콘서트장밖에는 미처 예매하지 못한 관객들이 그의 마지막 무대를 지켜보려고 애썼으며 회전등과 호루라기등이 불티나듯이 팔렸다. 우리의 콘서트장은 열광한 팬들의 소리지르기 시합이지만 홍콩의 관객은 육성대신 '삐'소리가 나는 호르라기와 야광회전등을 흔든다고 한다.

 드디어 그가 모습을 나타낸 시간은 저녁 8시. 지하의 분장실과 직접 연결된 자동장치에 의해 무대위로 솟아오른 장국영의 모습은 까만우단양복에 빨간조끼를 입은 귀공자 그대로였다. 관객들이 일제히 호루라기를 불어 장국영을 환호하며 레슬리를 외치는 열광팬들속에서 그는 첫번째 노래 <너를 위해>를 매혹적인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이 노래는 그의 첫번째콘서트에서 처음으로 부른 노래이기때문에 마지막콘서트의 첫곡으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3곡의 노래를 마친 장국영은 자신의 콘서트에 온 관객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장국영 - 여러분 안녕하세요. 해피뉴이어! 박수소리가 큰 것을 보니 여러분이 모두 건강하신 것 같군요.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노래한 것을 이번 마지막 콘서트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로 여러분에게 보답하겠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팬들이 13년동안 나와 함께 성장했으니 이 마지막 콘서트를 여러분께 바칩니다.

 마지막이라는 뉘앙스와는 달리 담담하게 얘기하는 장국영의 모습이다. 무대장치는 중앙무대에 자동으로 오르내리는 오케스트라석과 사방에 화살표로 승강기비슷한 무대를 꾸며 멀리 있는 관객과 가까이 진행할 수 있도록 꾸며졌고 그가 운동장만한 무대를 사방으로 옮겨다닐 때마다 바닥조명이 따라다녀 어디서든지 그의 위치를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장국영 - 반년전부터 사실 이 콘서트를 준비해왔습니다. 나의 매니저에게는 최근에 발표했었죠. 이번 콘서트는 33세라는 내나이에 맞춰 33회로 결정했습니다. 이 콘서트표를 구하기위해 동분서주한 팬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콘서트는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늑하고 가족같은 분위기가 중요하기 않을까요?

 관객들은 호루라기 소리고 그의 말에 수긍을 표시하였다. 1만2천명의 관중과 혼자인 장국영은 그렇게 의사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3시간 50분동안 40곡 불러

 

 그는 하루에 한번 공연하는 콘서트에서 총 40여곡의 노래를 직접 부르고 중간의 멘트는 사전원고없이 즉흥적으로 대처해나갔다. 마지막이기때문에 보다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엿보인다.

 그는 또한 이 무대를 위해 직접 의상을 선택하고 가능한한 심플하게 무대를 꾸몄다고 한다.

 30분쯤 지나자 그의 첫데뷔때부터 곡을 주었고 가수생활에 은사이기도 한 작곡자 마이클리가 직접 치는 피아노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즉석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장국영 - 마이클은 내가 맨 처음 노래했을 때 선생님. 그는 나의 딩동선생님!

마이클리 - 언제 상탄 것이 제일 기쁜가.

장국영 - 1978년에 인도에서 열린 가요제에서 아시아최고신인상을 탄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마이클리 - 지금까지 발행한 앨범중 어느것이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인가?

장국영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모니카>이죠. 이 노래로 여러분에게 내가 알려졌고 가까와졌기때문에 가장 좋아하지요.

마이클리 - 맨처음 장국영의 콘서트가 열린 곳도 바로 이곳 체육관이니 당신의 마지막콘서트에서도 내가 지휘를 해주는 것이 당연히 나의 의무라 생각하네.

 은사와 가수의 대화라기보다는 마치 아버지와 아끼는 아들의 대화처럼 포근하고 관객은 그런 흐뭇한 광경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다시 세곡의 노래를 마치자 장국영은 '관중들과 더 가까이 하고 싶으니 악수할 팬들은 앞으로 나오세요"라고 말하자 수백명의 팬들이 그의 무대를 둘러쌓았다. 그는 정말 일일이 사방을 다니며 악수를 해주었고 그의 안수선물이 끝나기까지는 노래를 다섯곡이나 불러야 할만큼 오랜시간이었다. 그러나 팬들에 대한 진정한 서비스를 하는 장국영의 모습이다. 악수를 마치고는,

장국영 - 어휴! 손을 잡아당겨서 떨어질 뻔 했네요. 어때요. 만족하셨나요?

관중 - (일제히) 네!

 

대포에서 쏟아진 야광봉선물

 

 

 콘서트의 1시간쯤 지날동안 그는 무려 7번 의상에 변화를 주었는데 옷 갈아입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래를 부르면서 교묘하게 웃옷을 벗어던지자 관객들은 까무라치기 일보직전. 게다가 섹시한 그의 춤까지 곁들이며 알몸(?)이 사라지자 극성팬들은 '레슬리'를 외친다.

 또 한가지 이 콘서트의 하일라이트는 모든 조명이 꺼지고 칠흙같은 암흑이 되는 순간 대포에서 야광봉(프라스틱으로 만든 것)이 튀어나와 관중에게 퍼부어졌다.

장국영 - 어때요. 제 조그만한 선물입니다.

 손에 손에 야광봉을 든 관중들은 그의 노래에 맞춰 손을 흔들어 환상적인 우주세계에 파묻힌 느낌이었다.

 무려 세시간이 경과하자 그의 무대는 끝나는 듯 싶었다. 그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아래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만이천의 관중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레슬리를 외쳤다.

 3분쯤 지나자 다시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들려오면서 하얀 연미복을 입은 장국영이 다시 나타나 <영에서부터 시작>이라는 잔잔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눈물을 닦느라 노래를 잇지 못하였고 그런 장국영의 모습을 보면서 통곡을 터뜨리는 팬이 보였다.

장국영 - 나는 울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를 축복해 주시고 울지말아주십시요.

 

눈물속에 마지막 아듀!

 

 

 그러나 안타까움과 애절한 분위기는 이미 실내를 압도했고 그는 마지막선물로 아테네여신의 복장을 한 무희들이 들고나온 빨간 카네이션을 관객들에게 던져주며 작별을 했다. 이렇게 3시간 40분에 걸친 그의 라스트콘서트는 많은 팬들의 가슴속에 아쉬움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본지는 콘서트를 끝낸 장국영과 짧은 인터뷰를 하는 행운을 얻었는데, 그의 매니저 진숙분은 목소리보호를 위해 일체의 인터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 구체적인 은퇴를 계획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지난해 동경음악제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였다. 3년전에 한 약속을 이제는 실현해야할 때라고 결정했다.

- 은퇴를 하는 이유는 ? 소문에 결혼할 여인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 사귀는 여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콘서트때문에 자주 못 만났지만 은퇴한 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결혼할 계획이다. 톱스타라는 위치는 무척 고독하고 외롭다. 이제 나는 은퇴를 하고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다.

- 지금도 당신은 은퇴에는 변함이 없는가? 팬들의 쇼크가 심할텐데...

  처음에 내말을 매니저도 믿지 않았다. 서극과 종초홍도 내말을 믿지 않았다. 다만 내 성격을 알고 있는 오우삼감독과 유일한 내 카운셀러인 매염방만이 나의 말을 믿어줬다. 지금도 은퇴하는 내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 은퇴후의 계획은?

  우선 한달정도 여행을 하며 쉴 예정이다. 여자친구와 함께 갈 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국에서 감독수업을 닦은 후 한편만 연출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캐나다나 미국으로 이민갈 예정이다.

- 한국의 팬들에게 인사를 한다면.

  '두유 리멤버 미?(Do You Remember me?)' 영원히 나를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