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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1-05-31 21:05
진숙분의 "娛圈見證錄" - Leslie에 관하여.. 첫번째 (명보주간-1696기)
 글쓴이 : 1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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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숙분의 "娛圈見證錄" Leslie에 관하여..첫번째 (명보주간 1696기)
- 娛圈見證錄은 진숙분이 매주 명보주간에 자신이 겪었던 연예계의 일들을 기고하는 코너입니다.


哥哥의 첫번째 눈물


- 그의 노래가 상을 탄다는 잘못 전해진 소식 때문에..

  잘생긴 외모에 빨간색 부츠를 신고 춤을 추는 가수가 TV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았을 당시의 인상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尖東香滿樓에서 그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날 저녁은 李香琴(가유희사에서 장국영 어머니로 나오는 배우)씨가 나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자리였는데, 난 그녀에게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있는 장국영을 나에게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덕분에 그날 저녁에 나는 그와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그가 이미 寶麗金과 계약이 완료되어서 현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를 다시 만났고, 우린 뜻이 잘 맞아 순조롭게 華星의 계약서에 싸인을 하게 되었다.

  山口百惠의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장국영이 山口百惠처럼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랬고, 더욱의 그녀의 "Last Song For You"곡을 리메이크한 "風繼續吹"를 화성과의 계약 후 첫번째로 발매할 앨범의 추천곡으로 정하게 되었다. 음반의 판매량은 좋은 편이어서, 이 곡이 그 해 10대경가금곡중의 한곡으로 선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경가측에서는 시상식에 장국영이 꼭 참석해주기를 바란다고 전했고, 난 너무 순진한 나머지 이 소식을 그대로 믿고 장국영에게 잘못 전해주어 그에게 한순간의 기쁨과 한순간의 허탈감을 동시에 맛보게 해버렸다.

  사실 그 해에 그가 상을 탈 것이라는 사실은 조금도 의외의 일이 아니었다. 이 음반의 판매량은 아주 좋았고, 이 곡의 방송횟수도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시상식내의 긴장된 장면을 연출해내기 위해, 막 뜨기 시작하는 연예인에게 이러한 난처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짜 정보를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때문에, 하필이면 경험도 없고 정치적인 의식도 매우 낮았고 사람을 쉽게 믿기까지 하던 내가 그들의 속임수에 걸려버려 간접적으로 악당역을 하고 만 것이다. 당연히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었다. show는 끝났고 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시상식이 있기 훨씬 전부터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海城에서 열리는 羅文(#라문은 홍콩의 존경받는 원로가수로 cable guide에 실린 인터뷰에서 레슬리가 마주치기만 해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던, 레슬리가 매우 존경하던 연예인입니다.)의 공연 때문에, 모두 함께 그의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장의 불이 꺼지고, 레슬리는 내 옆에 앉아 울었다. 나와 함께 있던 몇몇의 친구들이 그를 위로했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다음 앨범을 더욱 잘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 솔직한 성격으로 고생을 하다.

  장국영의 성격은 매우 솔직하다. 뻔히 알면서도 눈뜨고 손해를 본다. 매번 인터뷰를 받을 때마다 내뱉은 한두마디의 직선전인 말들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었다. 많은 신문들의 부정적인 헤드라인은 막 뜨기 시작하는 연예인에게 당연히 불이익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난 그가 해야할 인터뷰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기자를 선별해서 그와 인터뷰를 하게 했고, 오랜 기간 동안 그가 받는 모든 인터뷰는 나를 거쳐서 정해졌다. 항상 난 그와 함께 인터뷰장에 있었으며, 기자가 그의 말뜻을 오해하지 않도록 그의 답변을 보충하는데 많은 시간을 써야했다. 李純恩이 그때 나를 가리켜 장국영의 "매니저"라는 표현을 썼는데(당시에는 아직까지 "매니저"라는 개념이 없었고, 단지 이순은이 나를 지칭한 것뿐이었다), 난 이것까지 생각치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다.

  음반을 제작하는 것 외에도 난 외국가수를 홍콩으로 초청해 공연을 하게 하는 일도 해야했고, 매염방이 일본에서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해서 업무량이 많아져 화성측에서는 연예인관리부서를 만들게 되었다. 蘇孝良(화성의 대표)은 李進(DJ로 연예계에 진출해서 화성에서 7년간 일했으며, 현재에는 영황오락에서 기획자로 활동중)에게 매염방과 화성에 새로 들어오는 연예인들의 일을 봐달라고 부탁했고, 나 역시 장국영과 매염방이 외국시장에 진출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첫번째 일은 홍콩가수들을 대만으로 데리고 가 국어음반을 발매하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대만의 독립레코드사인 滾石(락레코드)과 합작하기로 결정했다.(왜냐하면 락레코드는 홍콩의 화성과 비슷했다. 그들은 꿈이 있었으며, 매우 적극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좋아하는 음반사로, 돈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직원들의 태도는 매우 열성적이었다.)

  예전에는 외지에서 온 가수들이 자신의 나라가 아닌 타지에서 활동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대만에서 홍콩가수들의 지명도는 그다지 높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방송국 PD들의 권세가 매우 컸고, 그 지역의 매스컴들 또한 자신들의 연예인들을 보호하려 했기때문에 우린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홍보기간에는 식사도 못할 정도로 바빴으며(대부분은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는데, 모든 홍보촬영과 인터뷰를 마치고 빨리 돌아가기 위해선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했다), 어느해 단오절인던가.. 난 장국영이 tv에 출연해서 노래를 불러야만하는 스케줄을 잡게 되었는데, 그 장소가 타이베이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인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 바로 홍콩으로 돌아가야 했기때문에 음반사측에서는 현지직원을 파견해 우리들과 동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해보니 길이 막혀있어서 한참을 걸어서야 약속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국영은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는데(현지 가수들은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심지어는 샌들까지 신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이 그곳에 도착했을때,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짐까지 들고 있어서 정말로 고생스러웠다.

- 청산에게 감격하다.

  결국엔 도착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장국영의 순서가 돌아오지 않았다. 음반사에서 파견된 그 직원은 PD에게 감히 재촉하지도 못하고 우리를 기다리게 내버려두었다. 당시의 대스타인 청산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우리들이 다급해 하는 모습을 보고는 직접 우리들 곁으로 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우리가 바로 비행기를 타러 가야한다는 걸 알고는 바로 PD에게 가서 우리의 순서를 앞당겨달라고 말을 해주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더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우리는 더이상 연락을 하진 않았는데, 나는 그 역시 우리가 누군지는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그때 우리를 도와주고도 자신의 수고가 사소한 것이라며 겸손해 하는 청산의 태도에 매우 감격했다. 만일 당신이 가는 길이 익숙치 않아서 궁지에 빠지게 되었을때 갑자기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나게 된다면, 그 일은 잊기 어려울 것이다. 그 일이 있은지 이미 1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난 그가 홍콩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할때마다 그때의 "고마움"에 대한 감사로서, 항상 화환을 보내 그를 축하해주었다. 만일 그가 이번호 "명보주간"을 볼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화환을 보낸 팬에 대한 의심이 풀렸을 것이다.

translated by Ke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