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인터뷰 <나에 관한 모든 것>

 

 

 

 가정 환경

 

- 먼저, 저는 당신의 가정환경부터 묻겠습니다.

 우리 집은 홍콩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다. 아버지는 매우 유명한 재단사였는데, 말론 브란도등의 옷은 우리 아버지가 만드신 옷이다. 이러한 시기가 있었기에, 그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중국대륙에서 온 후로, 홍콩을 그다지 믿지 않아서, 번 돈을 전부 대륙으로 가지고 갔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중, 모든 재산을 탕진했다.

 

- 당신의 아버지는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나는 아버지에 대한 별다른 인상이 없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매우 바쁘셨기 때문에, 센트럴(홍콩지명)의 회사 부근에 아파트를 빌려서 머무르셨고, 나의 형제자매 모두 외할머니집에서 자라났다.

 

- 그렇다면, 어렸을 때 당신을 돌봐 준 사람은 외할머니인가요?

 외할머니는 연세가 많이 드셨기 때문에, 나를 돌봐준 사람은 '六姐'라고 불렀던 보모이다. 어렸을 때, 나를 가장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녀인 셈이다.

 

- 六姐'은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여성이다. 그녀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모든 사랑을 바치는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그녀는 그런 식이며, 특별히 나를 유달리 귀여워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六姐'와 같은 이러한 여성을 아직까지 다시 만나보지 못했다.

 

- 그녀의 말년은?

  나이가 들은 후에 줄곧 혼자서 내가 그녀에게 사준 집에서 살았다. 90년에, 그녀는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 당신의 어렸을 때의 기억 속에서, 인상이 가장 깊었던 장면은 무엇입니까?

  6살 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서, 매일 의자 위에 앉아 계셨고, 단지 주무실 때에만 침대로 돌아오셨다. 그날(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집에 돌아와서, 외할머니께서 의자에 앉아서 돌아가신 것을 발견했다. 그 장면은 현재까지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4세                                                    5세                                                               6세

 

- 당신의 형제자매는?

   나는 10형제자매 중 막내이다, 그렇지만, 셋째 형·넷째 누나·아홉째형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실제론 7형제자매이다. 나와 죽은 아홉째형은 생일이 같아서, 줄곧 형이 다시 환생해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러나, 형제자매가 많지만, 나와 다른 사람은 나이 차가 매우 커서, 함께 논 적이 없다. 게다가 아버지는 아이들이 자기주변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어머니 또한 매우 바쁘셨다. 어린 시절은 정말 즐겁지 않았다. 만약 나에게 무슨 즐거웠던 일을 기억해 내라고 한다면, 내 머리 속에서는 어떤 것도 생각해 낼 수가 없다.

 

- 당신은 어떤 아이였습니까?

  조금은 이상한 아이였다. 아이 같지 않고, 또 말도 별로 하지 않고,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우리집은 결코 특별히 큰 가정은 아니였지만, 손님이 왔을 때, 어떤 사람도 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천성적으로 이러한 성격인지는 모르겠다. 줄곧 매우 외로웠고, 감명을 토로할 대상도 없었으며, 언제 이런 성격이 형성되었는지는 모르겠다.

 

- 이웃의 아이들과 함께 논 적이 없습니까?

  나의 부모님은 매우 엄하셨다. 이웃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들을, 부모님은 절대 우리들이 놀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당시 홍콩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무슨 놀이를 하느냐에 따라 그 집안수준을 알 수 있었고, 부모님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수준 낮은 가정의 아이들로 보기를 원치 않으셨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관하여...

 

- 보아하니, 당신은 부모님에 대하여, 좋았던 기억이 없었던 거 같은데요?

  역시 연분이 별로 그다지 깊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는 단 한번 만난 적이 있다. 음력설날 때에  집으로 돌아와 5일 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그중 3일은 술에 취한 채 잠들었는데, 그것이 함께 산 유일한 기억이다. 그래서 나는 일반 가정의 그런 친밀한 정과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는, 이러한 관계와 부모와의 친밀한 정을 말하는 것보다는 다만 친구들과의 일반적인 관계에 대해 말하는 편이 낫다.

 

- 당신의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나요?

  89년, 내가 가수를 은퇴하던 그 해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은퇴기념순회콘서트를 하고있어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정말 연분이 깊지 않은 것 같다.

 

-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주:장국영의 어머니는 98년 10월 18일에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비교하면, 어머니의 인상은 비교적 깊다. 88년에 어머니께서 내가 사는 곳에 오셔서, 반년 정도 함께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말해야 되나..........난 혼자 사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또한 어머니와 나는 이전에는 모자간의 친밀한 관계가 없었는데, 갑자기 한 순간에 함께 살게 되니, 역시 바로 그러한 감정을 받을 수 없었다. 나는 줄곧 이전의 거리를 줄일려고 노력하였고, 또한 되도록 정신적 측면에서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시도하였으나, 결국에 난 여전히 어머니에게  단지 돈과 물질적인 것들만 만족시킬 수 있었다. 어머니는 결코 기쁘지 않으셨던 것 같았다.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해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했고, 비록 그녀는 여전히 아버지를 매우 사랑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그녀를 이해하지 않으셨고,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이외에는, 누구도 그녀를 위해서 뭘 한다 해도, 그녀를 기쁘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에 나는 어떻게든 어머니에 기운을 북돋아 줄려고 했지만, 어떻게 하던지 어머니 마음속의 상처를 달래줄 방법이 없었다.

 

- 그러나, 아버지와 비교해서, 당신은 어머니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예를 들면 내가 유학했을 때이다. 나는 줄곧 내가 영국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지지해준 사람은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삼촌으로부터 진상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여러 번 요구하셔서, 내가 영국에 유학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래서, 비록 나의 교육은 완벽하게 끝난 건 아니지만, 현재의 이러한 기초를 세워준 것은,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 당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양한 일들이 떠오르지 않았나요?

  실제로, 원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시는 어떠한 것도 생각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정말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다양한 기억의 장면들이 아니라, 어머니가 존재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출생, 기뻤던 일, 슬펐던 일, 다양한 일들, 자세히 생각해보면 모든 어머니로부터 얻은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게 매우 감사드린다.

 

- 당신은 어머님이 살아 계실 때, 더 효도했어야 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잠시 침묵 후에).....내 스스로 이야기를 한다면,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온 힘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또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물어본다면, 그녀 역시 반드시 나에게 만족하신다고 하실 것이다. 나는 조금은 보수적이 사람이라, 인(因)과 연(緣)이라는 것을 매우 믿는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비로소 서로의 존재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들이 서로 이것을 느꼈을 때, 이미 늦었었다. 그래서 이 생애의 '최고의 콤비'는 실현할 수 없었지만, 어머니와 나 사이의 숙명은 변화시킬 수 없었다.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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